08. 넉넉한 바람
동락이는 어릴 때부터 좀처럼 제대로 눈을 뜬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언제나 아득한 눈으로 졸음을 참아보려 애를 쓰거나, 오는 졸음을 그냥 받아들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라미는 고양이답게 주변에 민감하게 반응하곤 했는데 동락이는 든든한 라미에게 기대 졸고 또 졸았다. 라미가 눈을 뜨고 주변을 살필 때 동락이도 아주 조금 희미하게 눈을 뜨려고는 했다. 하지만 초점이 나가 뿌연 눈을 잠시 마주치는가 싶으면 금세 숲 속의 잠자는 고양이 역할에 충실해지곤 했다. 점심을 먹고 노곤한 햇살 아래 갇힌 것만 같은 동락이는 항상 잠이 쏟아지는 모양이었다. 아마도 동락이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은 본인의 눈꺼풀이었으리라.
이런 동락이 어느 날 라미를 떠났다. 뉘엿뉘엿 해가 지는 저녁 잠든 아이를 둘러업고 집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엄마 같은 라미를 잠든 아이 같은 동락이가 떠났다. 무거운 눈꺼풀을 지고 살아갈 동락이가 어떤 고개를 넘게 될지 걱정이었다.
몇 달 뒤 처음 마주했던 꽃밭 근처에서 영영 떠난 줄 알았던 동락이 나타났다. 이마 가운데 노란 점과 등에 그려진 작은 날개, 엉덩이에 하트 모양의 노란 털. 그리고 무엇보다 게슴츠레한 눈 그대로 몸만 커진 모습이 너무나 반가워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웃음을 멈출 수 없었던 건 말랑하고 희미한 동락이가 엉뚱하게도 나무 위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삼각형 모양의 실루엣이 마치 부엉이 같았다. 보는 사람만 아슬아슬하게 나무에 앉아 대낮부터 졸고 있는 동락이는 여전히 사랑스럽고 느긋했다. 바람 따라 이리저리 파란 하늘을 흐르다 나뭇가지에 걸려버린 하얗고 가벼운 연처럼, 나무에 걸려 긴 꼬리를 살랑 거리며 그저 그곳에 머무는 동락이는 한겨울 가지만 남은 나무 위에 목련처럼 살포시 피어있었다.
나는 동락이를 볼 때마다 늘 부러움을 느끼곤 했다. 낡고 울퉁불퉁한 길 위에 태어난 고양이가 뭐가 그렇게 여유로운지. 따땃한 햇빛 아래에서 졸다가 일어나 밥을 먹고, 주위를 어슬렁 거리다가도 금세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아 쏟아지는 졸음을 온몸으로 느끼는 그 여유. 닮고 싶었다. 탐나는 것이었다. 그것이 동락이를 빛나게 했다.
지금껏 나는 끊임없이 여유를 갈망했다. 여유로운 삶을 꿈꿨고, 언젠가는 여유로워질 것이라 기대하고 다짐하며 살아왔다. 그것을 얻기 위해 부단히 달렸다. 그러다 문득 그 시간이 영영 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평생 여유의 뒷모습만 쫓다 이 짧은 인생이 끝나버리지는 않을까 조바심이 났다. 모순적이게도 조바심과 여유라는 것은 정반대를 향해 달리는 평행선과 같아서 조바심이 날수록 여유로움과는 등지고 뛰어가는 꼴이 되어버렸다.
동락이에게는 여유가 보였다. 알람을 맞추지 않은 주말 아침, 창가로 소리 없이 들어와 나를 간질이는 햇살과같이 만져지지 않지만 분명 느껴지는, 그런 여유가 동락이에게는 있었다. 지금 이 순간 투명하지만 분명히 희망이 물결치며 떠오르는 해를 소유할 수 없듯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비추고 있지만 어떤 이는 명확히 느끼고, 다른 어떤 이는 고개 숙여 어둠만을 응시하는 것과 같이. '여유로움‘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나에게도 동락이와 동일한 여유가 주어졌는지도 모른다. 그저 고개를 들어 바라보면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차를 타고 달리고 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창문을 열어본다. 손을 뻗는다. 선선하고 시원한 바람. 손을 쥐었다 펴길 반복해도 절대 잡히지 않는 것. 그러나 분명히 느껴진다. 동락이는 아마도 그렇게 넉넉하고 차분한 바람이 그저 그 동그란 몸을 스쳐 지나가길, 그 보드라운 털에 느긋한 빗질을 해 결을 남기길 기다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주말 오전, 너그러운 햇살이 조용히 떨어지는 차가운 공기 사이로 묵직하고 단단한 카메라를 쥐고 걷는다. 아직은 아리한 공기 중에 희미하지만 분명한 봄내음을 느낀다. 여유를 아는 고양이들 앞에 앉아 그들의 여유를 담는다. 그렇게 나는 그들에게서 여유를 얻어간다.
그들과 함께 지금 이 순간을 누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