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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녹 Jul 06. 2024

[화란] 희망을 위해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화란] 김창훈



화란; ‘네덜란드’의 음역어.

        ; 재앙과 난리를 통틀어 이르는 말.


제목의 의미를 찾아봤다. 영문제목으로 ‘Hopeless'를 사용했길래 ‘화란’이라는 단어보다 훨씬 와닿는다 싶었는데, 의미를 찾아보니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영화의 전반이 재앙과 난리에 가까운 주인공의 삶을 그리고 있는 동시에 주인공은 이상세계인 ‘네덜란드’를 꿈꾸고 있었기에. 희망을 위해 절망하는 그들의 모습 속에 모순이 자리잡고 있었기에.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연규가 네덜란드를 가고 싶어 하는 것 자체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제목을 먼저 떠올리고 끼워 맞춘 듯한 느낌이 들긴 했으나 나쁜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리뷰를 쓰려고 하니 자꾸만 ‘나쁘지는 않았다. 나쁜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다.’라는 문장이 떠오른다. 사실 영화 전반적으로 ‘좋다’라고 말하기는 어려웠으나, 그렇다고 ‘나쁘다’라고 말하기도 싫은 그런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영화 내내 인물의 상황이나 설정 등이 어색하게 느껴지거나 과하다고 느껴질 때가 종종 있었는데 결론적으로 나쁘지 않았다고 느낀 이유는 어떤 적정 선을 넘을 듯 말 듯하면서도 끝내 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하게 암울하고 희망이 없는 주인공들의 상황에 영화를 보면서도, 보고 난 후에도 같이 울적해지는 이상한 느낌을 느끼게 되지만 그렇기에 이 영화가 주목할 만한 영화이지 않을까. 제목에서부터 ‘정말 우울한 이야기를 할 거야.’ 선언하고 시작했다 말해도 과언이 아니며 우리는 그들의 상황에 빠져들었기에 현실에서도 그 무력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강가에서 치건이 연규에게 자신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좋으면서도 싫어서 기억에 남는다. 연규가 되어 그의 이야기를 들을 땐 어색함이 먼저 다가왔다. 하지만 치건이 되어 연규에게 자신을 죽이게 하는 그 순간에 그 이야기가 큰 힘이 되었고, 추후 중범이 나무 상자에 들어 있는 낚시 바늘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더욱더 깊은 울림이 되어 돌아왔다.


사실 이 영화는 연규가 치건을 죽이고, 하얀과 오토바이를 타고 떠나는 씬이 있기에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 길에 사람들은 ‘송중기(치건)를 왜 죽인 거야?’라고들 말했다. 나는 그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하고 싶다.

연규는 자기 자신을 죽인 것이라고.    


연규의 상황을 보면 치건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애초에 뜬금없이 치건이 연규를 보살핀 이유는 그가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어렸던 자기 자신을 보살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치건이 연규를 보살핀다고 치건의 상황이 더 나은 것도 아니다. 결국 치건은 연규가 자신처럼 되는 것이 싫었을 것이며, 자신의 끝없이 희망 없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이 연규에게 중범과 같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미래가 싫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연규는 어쩌면 너무나도 선명한 미래의 자신을 죽이고 희망을 찾아 나섰고, 과거의 치건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절망에 빠지는 영화들을 보고 나면 나 또한 얼마간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된다. 그렇게 깊게 침잠하다 보면 어느 순간 햇살이 따듯하게 내리는 해변가에 누워 있는 지점에 다다른다. 그럼 왠지 모르게 전보다 마음이 두둑하고 보송해지는 기분이다. 나는 이게 상대적인 비교로 인한 우월감에서 비롯된 감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과 나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느끼고 있는 그 감정이 내 안에도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희망이 생긴다. 그럼에도 살아나가기에, 나 또한 그들과 같기에 그렇게 조금씩 희망을 모아 나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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