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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녹 Jun 29. 2024

[글로리아 벨] 홀로, 자유롭게,

[글로리아 벨] 세바스찬 렐리오



세상은 결국 혼자 살아가는 것이다.


글로리아를 보면서 떠오른 하나의 문장. 결국 우리는 혼자이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이 인생철학에 대해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순간이 많았다. 아무도 나 대신 내 인생을 살아줄 수 없으니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거나 기대고 싶어 하지 말라. 인생은 원래 외로운 것이다. 한때 사랑했었던(We were in love.) 전남편과의 사랑도 이제는 오래된 추억거리이며, 사랑하는 아들과 딸도 각자의 인생을 살기 바쁘다. 아무리 가깝고 친한 직장 동료여도 그의 퇴사를 막아주거나 같이 퇴사를 하진 못 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각자의 인생을 살아간다. 가족도, 친구도, 한 때 가족이었던 사람도 모두 글로리아의, 나의 외로움을 함께 해주진 못 한다. 새롭게 만난 운명 같은 남자, 아놀드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글로리아를 무척 사랑한다고 말하고, 끊임없이 전화를 하며 집착하는 모습까지 보이지만 결국 그에게 우선순위는 전처와 자신의 딸들이다.


외로운 글로리아가 마음을 열고 아놀드에게 다가설 때마다 그는 딸, 혹은 전처와 관련된 일로 훌쩍 사라져 버린다. 그녀를 혼자 내버려 두고 없어진다. 홀로 남겨진 그녀는 더욱 외롭다. 혼자일 때보다 더 사무치게 외롭다. 이상하게 어떤 이와 함께할 때 더 외로운 순간들이 있다. 아마도 그건 내 안에 생겨난 기대 때문이리라. 당신이 항상 내 곁에 있어주리라는 내적인 고대. 언제든 내 손을 잡아주리라는 어린아이 같은 근거 없는 소망. 하지만 그런 사람은 없다. 오직 나 자신만이 나에게 그렇게 해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자꾸만 누군가에게 기대하고 기대고 싶어 몸이 근질거린다.


글로리아도 그랬다. 최악의 상황에 처했을 때 전화 한 통에 달려와줄 엄마가 있고, 본인을 걱정하고 사랑해 주는 자식들이 있고, 친절한 친구들이 있지만 그녀는 외로웠고, 기댈 누군가를 끊임없이 갈망했다. 그녀의 윗집에서 들려오는 고함소리, 불특정한 누군가를 원망하는 욕설과 세상을 책망하는 외침. 그 소리로 인해 불안을 느끼는 글로리아의 모습은 외로움과 투쟁하며 방황하는 그녀의 삶, 나의 삶과 닮았다. 나를 향한 화살이 아닌 걸 알면서도 전이되는 불편함, 끝내 나의 잘못 없이도 화살의 끝이 나를 향하게 되는 공포. 우리는 그런 혼란스러운 외로움 속에서 오늘도 살아간다. 그리고 그 누구도 나서서 그것을 처리해주지 않는다.


마침내 글로리아는 혼자가 된다. 세상은 결국 혼자 살아가는 것이다. 화려한 음악 속에서 마음껏 춤을 추는 그녀는 온전히 혼자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나는 자유로우며 아름답다. 그녀가 더 이상 남자를 만나지 않고 싱글이기 때문에 자유롭고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게 남자든, 친구든, 자녀든 어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그 마음을 자기 자신이 스스로 채워주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최근에 읽은 아니 에르노의 글 [젊은 남자]에 나오는 마지막 구절이 떠오른다.


20세기 마지막 가을이었다. 나는 세 번째 밀레니엄 속으로 홀로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어 행복한 나를 발견했다.

아니 에르노. (2023). 젊은 남자. 레모.


마침내 그녀가, 내가 남은 우리의 인생 속으로 홀로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어 행복한 나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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