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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녹 Jun 22. 2024

[인사이드 아웃 2] 모두 온전히 느끼며 살아 나가길

[인사이드 아웃 2] 켈시 만



제주도에서 호우주의보가 발령된 날. 몰아치는 비바람을 뚫고 영화관까지 걸어갔다. 몇 명 없는 영화관 한가운데에서 인사이드 아웃 2를 보았다. 제주에서 영화를 보러 간 것만으로도 특별한 기분이었는데 휘몰아치는 비바람에 쫄딱 젖은 그 순간처럼 혼란스럽던 최근의 나를 따듯하게 안아주는 영화를 볼 수 있어 행운이었다.



라일리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등장하는 새로운 감정들, 불안, 당황, 따분, 부럽이는 여전히 지금까지 내 안에 살아 숨 쉬고 있기에 그 친구들이 굉장히 친근하면서도 속상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어떤 감정들은 너무 공감이 돼서 짜증이 나기도 하는데 아마 그건 불안이가 등장한 것이라 상상해 본다. 불안이의 말대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거나, 다양한 나쁜 상황을 예상해 보며 계획을 세워야 한다. 하지만 영화 초반에서와 같이 불안이가 모든 것을 컨트롤하며 나 자신을 놓아주지 않게 된다면 다른 감정(기쁨, 슬픔, 화남 등)을 느끼지 못하며 항상 불안에 휩싸여 매사 부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의 나를 뒤돌아보면 속상하지만 불안이가 감정 컨트롤 본부를 지휘하고 있던 순간이 많지 않았나 싶다. 최악의 상항을 떠올리며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스스로를 고통 속에 빠뜨려 갉아먹기도 했다. 하지만 기쁨이의 말대로 아직 그런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최고의 상황이 실제로 일어나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항상 잊지 않고 싶다.


초반에는 기쁨이가 대장이 되어 모든 걸 컨트롤한다는 사실이 그리 좋게 보이지는 않았다. 불안이가 등장하여 그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왜 수많은 감정 중에 누군가가 대장이 되어야 하는 걸까 생각했다. 영화의 후반부에 가면 나오지만 특정 감정이 독단적으로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결정할 수는 없다. 복잡하고 복합적인 감정과 경험 속에서 우리는 자아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고 그 자아는 다양한 모습을 가지게 된다. 우리는 입체적인 존재이며 모든 시공간에서 일정한 감정을 유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영화가 거의 끝나갈 무렵 라일리는 혼동의 시간을 지나 한 단계 더 성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때 그녀의 자아는 기쁨이를 부른다. 지금 이 순간 기쁨을 느끼고 있다고. 어렸을 때는 내 안의 다양한 감정들을 스스로 조절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물론 어른이 된 지금도 그렇다. 가끔은 너무 기뻐 환희에 차오르는 순간이 있고, 어떨 때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을 수 없어 소리를 지르기도 하며, 어느 순간에는 가슴이 찢어지게 아파 나도 모르게 슬픔의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한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다양한 경험이 쌓이며 자아를 찾아가고 조금씩 스스로 감정을 부르고, 잠시 감정을 억누르기도 하며 그들을 조절하는 진짜 대장이 되어가는 것 아닐까?

솔직히 나는 아직도 그들의 대장이 되진 못 한 것 같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감정들에 휩싸여 어쩔 줄 모를 때도 있다. 그게 불안이기도, 슬픔이기도, 당황이기도 하다. 그럴 때는 이런 내가 부끄럽고 한심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왕이면 기쁨이가 자주 등장해 주는 것이, 기쁨이가 대장이 되어주는 것이 좋은 건가 싶기도 하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그들을 내 마음대로 부르고, 억누르며 자유롭게 내 감정을 조절하지는 못 할 예정이다. 그렇게 된다면 매일 기쁘고, 매일 추억 할머니를 소환하며 살아갈지도 모르는데 그게 과연 좋기만 할지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느끼는 이 감정들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충분히 느끼며 살아간다면 그것이 진정 주도적으로 살아나가는 방법 아닐까.



영화의 엔딩크레디트가 끝까지 오르고 영화관을 나서 밖으로 나오자 차분히 떨어지는 빗방울 사이로 저녁의 햇살이 차분히 내려앉았다.

빙판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보고 라일리가 느꼈을 그 기쁨의 감정. 나도 기쁨이를 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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