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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녹 Jun 08. 2024

[시] 보다

[시] 이창동



진짜 보는 것은 정말 알고 싶어서 관심을 갖고 이해하고 싶어서 대화하고 싶어서 보는 것이다.


시를 쓰려면 열심히 보아야 한다. 미자 씨는 시가 쓰고 싶다. 엉뚱하고 꽃을 사랑하는 미자 씨는 시가 써지지 않아 속상하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미자 씨가 진짜 보기까지의 여정을 보게 된다. 마침내 그녀는 세상을, 희진을 진정으로 보며 시를 쓴다.



시는 아름다움을 찾는 일이에요.

영화 내내 미자 씨는 아름다움을 찾는다. 손자 종욱이 성폭행 가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학부형 모임에서 미자 씨는 중간에 식당을 나가버리더니 식당 밖에 핀 꽃을 열심히 바라본다. 나무를 열심히 올려다보며 무슨 말을 건네는지 바라본다. 멋쟁이 옷을 입고 문화센터로 시를 배우러 다닌다. 어릴 적 언니가 자신을 예뻐하며 부르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녀는 시가 쓰고 싶고 시는 아름다움을 찾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자 씨가 살아가는 세상은 그녀 생각대로 아름답지만은 않다. 종욱은 범죄를 저지르고 피해자인 여학생(희진)은 자살을 했다. 가해 학생들의 부모와 학교는 그들의 미래를 운운하며 이 사건을 은폐하려 한다. 종욱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은 채 일상을 이어간다. 그 와중에 미자 씨는 알츠하이머 초기 진단을 받는다. 위자료 500만 원은 구할 곳이 없고 가정부 일을 하러 가는 강노인은 성행위를 요구한다.



이런 세상 속에서 그녀는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시상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바라본다. 그 여정 속에서 미자 씨는 알게 된다.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아름다움만이 시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그녀는 진짜 바라본다. 희진의 장례 미사에서 그녀의 사진을 훔쳐와 식탁에 놓고 바라본다. 희진이 뛰어내린 그 강가에서 흰 모자가 바람에 날려 강물로 떨어지고, 갑작스레 쏟아지는 소나기에 흠뻑 젖은 채 빈 메모장에는 빗방울만 적신다. 미자 씨는 희진이 되어 그녀의 시선으로 세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본다. 그렇게 그녀는 시를 쓴다.



살구는 스스로 땅에 몸을 던진다.

깨어지고 발핀다.

다음 생을 위해.


미자 씨가 살구를 보며 너무나도 좋아했던 것처럼 나도 그녀가 살구를 보고 적었던 저 짧은 메모가 너무나도 좋았다. 스스로 몸을 던져 깨어지고 밟혀 다음생을 준비하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길에 떨어진 살구를 보고 알았다는 사실이 마음에 깊게 베었다. 어쩌면 우리는 살면서 너무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두 눈을 가린 채 달려가고 있는지도, 그래서 서로에게 자꾸만 부딪히고 상처가 나는지도 모른다.


나는 열심히 걷는다. 빠르게 지나쳤으면 보지 못했을 무언가를 오늘도 마주치고 바라보고 잠시라도 간직한다. 시상은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찾으러 다녀야 한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돌아다니고 보고 또 본다. 그러다 보면 내 앞에 당신도 보고 또 볼 테고, 그렇게 보다 보면 정말 알고 싶어 지고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이렇게 멈추고 바라보려 하는 시점에 이 영화를 마주쳐 보게 되어 감사하다. 이렇게 세상도, 영화도, 끝내 스스로도 보고 또 보아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길 간절히 바라본다.





(이 영화가 내가 간절히 원하는 꿈들의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을 줘서 매우 소중하다. 이런 영화를 한 번 보고 글을 쓴다는 사실이 조심스러워 간결하게 마무리해 본다. 다시 한번 바라보고 또 보아 시로 쓸 수 있길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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