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녹 Jun 01. 2024

[고양이들의 아파트] 고양이는 떠났을까.

[고양이들의 아파트] 정재은

[부드럽지만 단단한 치즈]에 등장하는 라미와 동락, 동구의 사진을 모아 엽서책(1,2,Cheese)을 만들고, 짧은 글을 쓰며 [고양이들의 아파트]라는 다큐멘터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이 없어 표기식 사진작가님의 사진집(고양이들의 아파트, 정재은, 2022)을 빌려서 한참을 넘겨 보곤 했다. 그러다 최근에 2024씨네페미니즘학교에서 '확장하는 돌봄, 공존에 관한 물음'이라는 주제로 열린 강좌를 진행하여 마침내 이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다.



길고양이를 좋아하고 그들을 사진에 담기 좋아하는 것을 넘어, 유난히 이 영화에 눈길이 간 이유는 아파트라는 대표적인 주거 형태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써 고양이를 조명했기 때문이었다.

아파트 단지, 특히 둔촌 주공과 같이 몇 천 세대가 함께 살아온, 하나의 동네에 버금가는 대규모 단지는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소유물을 넘어 하나의 공간으로써 작용한다. 그곳은 어떤 시간을 담은 세계로써 유년시절부터의 추억이 담긴 고향이 되기도 하며 누군가 어릴 때부터 자라온 시절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하나의 공간에는 세월이 담긴다. 40년이라는 시간이 담긴 공간을 재건축 하는 것에는 단순히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는 물리적인 개념뿐 아니라 사회, 문화, 역사적인 개념이 녹아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을 때의 모습에서 시작해 하나 둘 이 곳을 떠나 비어가는 아파트, 모두가 떠나고 하나씩 철거되는 건물들, 마지막으로 모든 것이 무너지고 사라져 터만 남았을 때의 모습까지가 담긴 이 영화가 매우 소중하게 느껴진다.


어떤 이들에게 재건축, 재개발은 낡은 집을 떠나 더 좋은 집을 얻을 수 있는 것, 투자할 가치가 있는 호재 등 물리적인 이익이나 금전적 이득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얻는 행위만은 아니라는 것을 이 영화를 보며 생각해본다. 그 과정 속에 얼마나 많은 갈등이 존재하며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지 우리는 돌아봐야한다. 우리의 이익을 취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이 희생되어야 하는지 생각해본다.



어떤 이들은 고양이들을 버리고 떠날 수 없었다. 40년이라는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보금자리였던 공간에는 그 긴 시간만큼 사람만이 아니라 수많은 생물들이 함께 살아왔다. 나무들과 새들, 그리고 고양이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에서는 이사짐 사다리들이 짐을 싣고 오르내리는 모습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상황을 도무지 알 수 없어 덩그러니 살아가는 고양이들이 등장한다. 사람들은 떠나는데 고양이들은 남아있다. 계속 그렇게 그곳에 있다가는 커다란 중장비들, 무너지는 건물 잔해에 깔려 죽을 수도 있는데 고양이들은 계속 그 자리로 돌아간다. 이런 그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였던 걸까? 대화를 할 수 없으니 아무리 떠나라고 소리쳐도 소용 없다.



그렇다면 그냥 이들을 놓고 가버리는 게 맞을까? 둔촌주공냥이 모임의 사람들은 아니라고 답한다. 우리와 함께 살아온 존재였기에, 그저 그렇게 떠나버릴 가벼운 존재들이 아니기에 그들은 최선을 다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각자가 생각하는 돌봄의 방식이 다르기에 갈등이 존재했다. 속 시원하게 고양이들이 대답해주지 않으니 그들의 마음을 알 수가 없는 인간들은 각자의 시선에서 고양이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리고 영화는 그 모습을 그저 보여준다. 그 갈등들이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나아가 수 백마리의 고양이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이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는지 알 수 없다. 그저 이렇게 저렇게 시도해보고, 다치고, 주저 앉았다 다시 일어나 노력하는 사람들과 폐허가 된 단지 안에서 아슬랑거리는 고양이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사라진 그곳을 담아낸다.


그 모습을 보는 나는 생각한다. 이렇게 마음대로 무언가를 짓고 없애는 일이 과연 정말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는가. 이 속에서 고통받는 수많은 것들을 그저 못 본 척 무시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일말의 죄책감 없이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무시무시한 일을 벌이는 우리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하지 않는가.

영화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진짜 지금은 물어보고싶어요. 여기서 살고 싶냐고.' 적어도 우린 끊임없이 서로에게 물어야한다.








이전 11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토끼와 편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