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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니 Sep 10. 2020

유튜브 먹방 채널에 밤을 맡길 줄이야

유튜브 먹방 채널에 밤을 맡길 줄이야





작년에 회사 다닐 때다.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지친 몸을 간신히 가누어 자리에 앉았다. 휴대폰 볼 힘도 없던 나는 옆으로 살짝 고개를 돌렸다. 30대 초반의 남성이 휴대폰 회면 속으로 들어갈 만큼의 몰입이 느껴져서다. '뭐,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있겠지' 싶었다. 그런데 사람 심리가 그렇잖나. 괜스레 별것 아닌 타인의 카톡 내용이나 인터넷 쇼핑 목록에 눈이 가는 그런 것. 그리하여 내 눈은 30대 초반의 남성 휴대폰으로 향했다. 이런, 난 또 뭐라고. 그가 동공에 힘을 주며 몰입하던 그것은 다름 아닌 '먹방(먹는 방송)' 채널이었다. 당시 내가 생각하는 '시간 아깝고 쓸데없는 짓' 중 하나가 먹방 시청인데, 음.



순간 '아, 저거 볼 시간 있으면 책이라도 한 줄 읽지'라며 같잖은 마음의 훈계를 두었다. 이 청년뿐 아니라, 지하철 안에 있으면 먹방 영상을 보는 이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기에, 꼰대 아닌 꼰대를 부리며 '요즘 젊은이들은 시간을 쓸 줄 몰라'라며 괜한 걱정을 드리웠다. (나와 몇 살 차이 안 나는 것 같은데, 진정 꼰대 of 꼰대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올봄부터인가? 무슨 바람이 불어 유튜브 먹방에 눈을 빼앗겼다. 한두 편만 보고 그만하려 했는데 지금도 주 2~3회는 먹방 채널에 손을 올린다. 그제야 알았다. 당시 30대 초반의 청년이 먹방에 마음을 뺏긴 이유를. '대리 만족'. 그래, 이거다. 난 입이 짧다. 배 속에서 거지들이 배고프다며 시위할 때도 음식물을 몇 번 넣어주면 이내 잠잠해진다. 위(胃)에서 그만 들어오라 문을 닫는다. 영업 종료 시간이 일러도 너무 이르다. 배고픔을 자주 느끼지만, 먹는 양은 내 나이 대 여성들에 비해 적다.




그래서일까. 나 대신 맛있게 먹어주는 영상 속 그들이 고맙다. 심지어 매운 음식이라면 두 손 두 발 드는 나인데, 영상 속 A 양은 전 세계 매운 양념은 있는 대로 가져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잘도 비벼 먹는다. B 군은 어떠한가. 앉은자리에서 짜장면 다섯 그릇은 기본인 대식가며 먹는 모습도 복스럽다. 내가 좋아하는 면 요리, 떡볶이를 그가 먹을 때면 휴지를 챙겨야 한다. 입술 틈으로 흐르는 침샘을 닦기 위해서다.









가끔 한두 편 시청할 때마다 꼰대 아닌 꼰대 생각을 하던 나를 떠올리며 피식 웃는다. '말'이야말로 함부로 하면 안 되지만, '생각'도 단정 지을 수 없다. 오늘의 생각이 내일이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라고? 설마. 아니라고 단정 짓지 마시라니까. 사람 일 모른다, 정말로. 남편의 생각은 작년의 나와 같아서 이런 나를 이해 못 한다. 밤늦은 시간에 그런 거 보면 힘들다고 그만 보란다. 그래, 오늘은 여기까지.




나 대신 맛있게 먹 야식이님,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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