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껏 취해요

이지니 에세이 <아무도 널 탓하지 않아>

by 이지니


내 생애 가장 격렬하게 술에 취한 건 대학교 1학년 때예요. 가뜩이나 선. 후배 규율이 엄격한 데다가 방송국 동아리까지 들어갔으니 말 다했죠. 여름 방학 때 선배들 졸업 작품을 돕기 위해 팀을 짰어요. 나는 다큐멘터리 팀에 속해 대천 해수욕장에서 촬영을 했죠. 하루 종일 땡볕 아래에서 작업했기에 더운 여름을 날려버릴 한방이 필요했던 선배는 나를 포함한 1학년 네 명을 모았어요.


“얘들아, 너희 동기애가 어떤지 한 번 보고 싶어, 이거 다 마실 때까지 일어서면 안 된다!”


선배는 우리 앞에 하얗고 맑은 소주 10병을 놓았어요. 그리고는 천사 같은 얼굴로 독한 말을 내뱉었죠. 결국 10병을 마셨어요. 남자 둘, 여자 둘이서… 술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고, 몸에도 안 받는 탓에 다른 동기들이 더 많이 마셨지만 내 생애 이렇게 들이부은 적은 처음이었어요. 필름이 끊긴다는 말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실감했으니까요.

다음 날 오후가 돼서야 정신을 찾은 나는 어디서 잃어버린 줄도 모르는 운동화 행방을 찾아 나섰어요. 촬영을 마무리하고 짐을 정리하면서까지 찾지 못해 욕실용 슬리퍼를 신고 서울로 왔어요. 지금 생각해도 무슨 정신으로 그걸 신고 왔는지 모르겠어요.


“지니야, 너 어제 새벽에 모래 위에서 헤엄치던데, 일부러 그런 거야?”


아, 술은 사람을 제대로 망가뜨립니다. 처음으로 내 주사(酒邪)를 알게 되면서 술과 더욱 멀리했어요. 적당히 취했을 때의 느낌이 좋아 술을 마신다는 말을 들었어요. 적당해서 나쁠 건 없지만 어차피 영원한 이별을 고했기에 미련은 없네요. 그렇다면 꿈에 취해보는 건 어떨까요?




내 생애 가장 먼저 취한 꿈은 방송작가였어요. 나는 방송국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관심이 많았죠. 노래를 못하니 가수는 안 되고, 내 얼굴에 불만은 크게 없지만 배우감은 아니니 더욱 무리예요. 그렇다고 대놓고 웃기는 건 생각만 해도 경련이 일어나듯 무섭기에 개그우먼도 안 돼요. 그런데 방송국을 좋아하다니. 지금이야 라디오나 TV 프로그램 PD나 작가들이 안 불러 줘서 문제지, 언제든 준비가 되어 있답니다. (잠들어 있던 내 안의 내가 깨어난 걸까요?) 여하튼 마음껏 연예인을 볼 수 있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과정에 일원이 된다는 사실이 굉장한 매력으로 다가왔어요. 방송국은 이미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밥 먹듯이 오갔던 곳이라 낯설지 않았어요. 오죽하면 경비원 아저씨가 다 아셨을까요. “아이고, 또 너니? 오늘은 H.O.T 오빠들 안 왔어.”라고 하시며 말이에요.


방송작가가 되기 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얼까 생각했어요. 오호라, 방청객! 생각과 행동이 거의 동시에 진행되는 나는 곧장 방청객 아르바이트를 하려 정보를 수집했어요. 그 결과 매일 지정된 시간에 당산역 1번 출구 앞으로 집합했죠. 비용은 대부분 한 프로그램으로 계산이 돼요. 이미 10년이나 지났기에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이 일이 아니면 안 된다는 사람만 지원하면 좋겠어요. 비용이 적으니 돈을 벌려는 마음으로는 하지 말란 얘기예요. 다행히 나는 그 이유가 아니었기에 한두 번 체험하다가 뒤돌아가는 이들보다 오래 할 수 있었어요. 심지어 어디서도 배울 수 없는 기막힌 호응으로 방청객 담당 언니의 러브콜까지 받아 맨 앞 중앙 자리에 앉았다지요.

가야 하는 길에 필요한 과정이라면 그 일이 뭐든 문제 되지 않았어요. 술에 심하게 취하면 이성(理性)을 잃게 되듯, 꿈에 심하게 취해도 정상은 아닌 듯해요. 눈앞의 현실을 탓하지도, 한탄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슬퍼하지도 않게 되니 말이에요. 설령 안 좋은 생각이 들어도 이내 마음을 다잡게 되니까요.




2005년, 중국 하얼빈(哈尔滨)에 있을 때가 생각이 나요.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중국어를 제대로 배우고 오자라는 신념으로 주위에 있는 한국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았어요. 수업 시간에는 하하 호호 웃으며 지내다가도 수업 종이 울리면 중국인 친구들을 만나러 가거나, 내 방으로 돌아와 중국 드라마나 영화를 봤어요. 친구들은 이런 내 맘을 모른 채 자꾸만 유혹했죠. 물론 달콤한 말에 흔들린 적도 있지만요.


"숙소 근처에 찜질방 생긴 거 알아?"

"주말에 볼링장 갈 건데 같이 가자."

두 번째 인연이기에 더욱 간절했고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남들 놀 때 다 놀고, 타국에서 외롭다는 이유로 한국인과 어울리면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에요. 결과는 오래지 않아 증명됐어요. 학원과 기숙사 근처에 있는 상점 아주머니, 아저씨들 중 나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으니 말이에요. 그날에 배운 내용을 바로 활용하지 않으면 머릿속에서 지워질 걸 알았기에 밖으로 나가 그들을 귀찮게 했어요.

"찐티엔 티엔치 전머양?" (오늘 날씨 어때요?)

"쩌 띠엔 지디엔 꽌먼?" (이 가게는 몇 시에 문을 닫죠?)


대화 분위기는 이게 아닌데, 난 꼭 이 말을 해야만 했어요. 그날 배운 문장은 바로 당일에 소화해야 하니까요. 교과서에 있는 대화체가 아닌, 중국 현지인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어감과 말투로 들으니 새롭게 다가왔어요. 중국어를 배울수록, 중국인을 알아갈수록, 중국문화와 마주할수록 꿈에 더 가까워지는 듯했어요. 자연스레 내 안의 편견이 점점 희미해져 갔어요.

술이 아닌 꿈에 취해보니 취할 만해요. 꿈에 원 없이 취했기에 그날의 이야기를 활자로 풀어낼 수 있는지 몰라요. '뵈는 게 없다'라는 말처럼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마주하게 된 순간 정상인이 아니게 돼요. 실제로 중국어 하나만을 잘하고 싶어 갔지만,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경험을 안고 돌아왔어요. 이 경험은 오롯이 나만의 소유물이 되어 언제 어디서든 소환하고 싶을 때 아낌없이 꺼내죠. 그래서인지 자연스레 얻은 별명이 있어요. 선한 또라이. 또라이도 여러 종류가 있잖아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안 좋은 뜻이 아닌, 긍정의 기운을 뿜어내는 선한 또라이라는 거예요. 나는 이 말이 정말 좋아요.

이전 07화비밀 같지 않은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