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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니 Oct 04. 2022

가수 '서태지' 콘서트 갔다가 들것에 실렸다.

진정한 덕질을 해 보신 분, 계세요?

연예인 가수 '서태지'를 좋아해서 재수까지 한 나예요 _ 진정한 덕질을 해 보신 분, 계세요?






진장한 덕질의 힘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심취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찾아보는 행위를 ‘덕질’이라고 한다. 이 단어가 생긴 지 오래되지 않아서인지 현재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등재되지 않았다.



나도 어릴 적에 덕질이란 걸 해 봤다. 대상은 가수 서태지(오빠)였다. 정확히 말하면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이 3집 앨범 타이틀곡인 <발해를 꿈꾸며>를 들고나온 1994년 8월부터다. 내가 생각하는 팬의 기준은 그(그녀)가 텔레비전에 나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채널을 돌리지 않는 건 기본이다. 화면에서 사라질 때까지 온전히 그에게 집중해야 하며, 신문이나 잡지에 사진이나 기사가 실리면 이날을 위해 그동안 모은 용돈으로 그것들을 사들이거나 친구가 구매한 잡지를 얻어낸다. 물론 콘서트에 가서 목이 쉴세라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 또한 중요한 임무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1996년 1월 31일에 은퇴했다. 말 그대로 박수 칠 때 떠났다. 감사하게도(?) 그들은 내 생일 전날 은퇴를 하신 바람에 날짜를 잊고 싶어도 뇌리에 박혔다. ‘태지 오빠를 좋아하기 시작한 지 겨우 1년 반밖에 안 됐는데….’ 나는 그날 식탁에서 밥을 먹다가 ‘은퇴 속보’가 뜬 것을 보고 밥인지 눈물인지 콧물인지 모를 이물질이 입속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무생채를 씹고 있었지만, 혀를 설레게 하는 미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청년으로 살겠다던 그는 4년 4개월 만에 복귀를 선언했다. 개구리 왕눈이가 되도록 몇 날 며칠을 울게 만들어놓을 때는 언제고…. 은퇴를 번복했지만 그게 뭐가 중요할쏘냐. 우리 태지 오빠가 돌아온다는데….



그해 여름, 귀국을 축하해주려 생전 처음 김포공항엘 갔다. 수많은 경찰, 그보다 더 많은 팬. 노란 손수건을 흔들며 얼굴을 비춰주길 기다렸다. 너무 좋으면 눈물이 나는 경험을 한 적이 있으신지? 난 이날 처음으로 경험했다. 은퇴 이후 태지 오빠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리워서 눈물이 멈출 생각을 안 했다. (TV에서 연예인이 너무 좋아 우는 사람을 보고 우리 부모님이 그렇게나 욕을 하셨는데, 당신의 딸이 ‘그런 애 중 하나’였다는 걸 이 지면으로 십수 년 만에 아시겠지요) 이때부터 나의 뛰어난(?) 열혈 방청객 기질이 드러났는지, 눈물 콧물 흘리며 열렬히 환영하는 내 모습에 놀란 모 기자는 다음 날 아침 스포츠 신문 1면에 내 얼굴을 만천하에 공개해 주셨다. 방송 3사 뉴스의 머리기사를 장식할 만큼 대단한 귀국을 마친 그는 이전까진 경쾌하고 발랄하며 때로는 간드러진 음악으로 내 귀를 녹였다면, 이번에는 록(ROCK)을 들고 돌아왔다. 개그맨 최양락을 연상케 하는 머리칼을 휘날리며.



그의 화려한 귀국과 함께 나의 본격적인 덕질이 시작됐다. 24시간 공부해도 모자랄 고3 수험생 신분에 수업을 빠지고 음악 프로그램에서 진행하는 사전 녹화를 방청하러 갔다. 앨범이 나오기 전부터 레코드 가게 사장님께 예약한 뒤 대형 사진을 얻어냈다. 그의 콘서트 입장권을 손에 쥐기 위해 입장권을 판매하는 해당 은행 앞에 텐트를 치고 쪽잠을 청했다. 스탠딩 콘서트(standing concert)라 먼저 입장해야 유리했기에, 하루 3끼를 통으로 거르고 줄을 서다 빈혈로 쓰러졌다. 콘서트 관계자들이 들것에 실어서 휴게실로 옮기고 정신 차린 나에게 빵과 우유를 줬다. (눈물 젖은 빵 맛은 잊어도 들것에 실린 후 먹은 빵 맛은 죽어도 못 잊는다) 그의 노래에 맞춰 목을 빙글빙글 돌리다 목디스크가 생겼다. 그것도 모자라 좋아하는 떡볶이를 마다하고 돈을 모아, 이미 십수 년이 지난 터라 구하기 힘든 그의 콘서트 비디오테이프와 사진을 정가보다 몇 배나 비싸게 주고 샀다. 이 모든 노력은 고스란히 ‘대입 재수’로 이어졌다.



부모님에게는 죄송하지만 내 행동에 후회는 없다. 뭐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하니 억울하지도 않다. 오히려 내게 ‘그 시절에만 할 수 있는 경험’을 맛보게 해준 태지 오빠에게 고마웠다. (아직도 제정신이 아니란 걸 스스로 증명) 수많은 팬 중 그저 나는 한 사람일 뿐이고 오빠가 영원히 내 존재를 모른다고 해도 괜찮다. 진정한 팬이란 ‘그(그녀)’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줘야 한다는데, 나도 그의 가정에 축복을 빌어줄 거다. 하하.





무엇에 미쳐본 적이 있다는 건 미래가 건강하다는 의미



학생 신분으로, 그것도 대학 입시를 한 번 더 준비해야 하는 막대한 임무 앞에서 했던 저런 짓(?)은 누구라도 쉽게 이해하지 못할 듯하다. 그러나 지난 일을 후회해서 무엇하리.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후회로만 남을 일은 또 아니다. 무언가에 미쳐본 적이 있다는 건 ‘열정’이 있다는 뜻이고, 다른 분야에서도 열정을 발휘할 확률이 높다는 의미다. 내가 두 번째로 미친 일이 ‘글쓰기’이기 때문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평생 글을 쓰겠다’라고 다짐한 날부터 지금까지 나는 ‘쓰기’에 미쳐 있다. 누가 들으면 잠도 안 자고 글만 쓰는 줄 알겠지만 그건 아니고, 약 10년 동안 한 번도 메모장에서 손을 뗀 적이 없고 5년 동안 단 하루도 한글 문서를 열지 않은 날이 없다. 아무리 바쁘고 피곤해도 하루에 열 줄이라도 쓰려고 했다. 노력이라면 노력인 이 행위 덕분에 2017년부터 매년 한 권의 책을 출간할 수 있었다. 어릴 때는 가수 서태지에게 미쳤지만, 지금의 대상은 글쓰기인 셈이다.



매일 아침, 오늘은 어떤 글감으로 글을 쓸지 생각한다. 글감이나 아이디어가 머릿속에 스치기라도 하면 잠을 자려고 누웠다가도 벌떡 일어나 메모한다. 티브이를 보거나 책을 읽을 때 중요한 내용이다 싶으면 메모한다. 글쓰기를 사랑한다면 이 정도 덕질은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쓰는 행위 자체가 재미있다. 메모장을 채울 때마다, 메모장에 쌓인 글을 제대로 된 한 편의 글로 완성할 때마다 희열을 느낀다.  



내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어린 시절의 ‘서태지를 향한 덕질’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재수까지 할 만큼 무언가에 빠져 열정을 다해 실행하고 즐겼고, 그건 정말 멋진 경험이었다. 훗날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 잘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만났을 때 예전의 그 신나는 기분을 다시 맛보기 위한 노력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 노력은 예전보다 몇 배 더 큰 보상으로 돌아올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당신의 자녀나 주위 친구가 무언가에 심하게 빠졌다면, ‘아, 저 정도의 열정이라면 훗날 자신의 길을 만났을 때 포기하지 않겠구나, 끝까지 나아가겠구나’라고 좋게 생각해주시길. 그때의 우리 엄마가 내게 그랬듯이. (단, ‘나쁜 짓’에 빠지는 것은 제외)




글 : 에세이 《말 안 하면 노는 줄 알아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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