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어느 오후, 카페에서 친구 두 명을 만났습니다. P 양과 K 양은 한 달 전에 함께 일본 오사카와 교토로 여행을 다녀왔지요. 나 역시 2008년에 다녀왔던 지역이기에 그들의 느낌이 더욱 궁금했습니다.
“여행은 어땠어? 좋았지?”내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P 양은 커피숍 바닥이 꺼지듯 한숨을 내쉬며“그냥 한국이랑 비슷하던데? 거리는 깨끗한 줄 알았더니 곳곳에 쓰레기도 보이고, 사람은 또 왜 그렇게 많니? 제대로 구경을 못하겠더라. 돈가스 덮밥도 느끼해서 죽는 줄 알았어.”그 말을 들은 K 양은 오히려 환히 웃으며 “힘들기도 했지. 교토로 가는 날에 비가 너무 많이 내리는 거야. 우산을 써도 옷이 다 젖을 정도였어. 게다가 버스까지 늦게 와서 이미 기분이 상한 상태였지. 근데 제복을 입은 기사님이 밝게 인사해 주시고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친절히 안내해 주셔서 마음까지 녹더라고. 우리 둘 다 일본어를 못해서 길을 몇 번 헤매기도 했지만, 손짓 발짓해 가며 알려주는 사람들 덕분에 잘 찾아갈 수 있었어. 신기하게도 지하철 플랫폼에 세면대가 있더라. 언제 지하철에서 손을 씻을까 싶어 세면대로 갔다가 지하철 놓쳤잖아. 하하. 내가 사진 보여줄 테니까 네가 갔을 때와 비교해서 봐.”두 사람의 차이가 느껴지나요? 아마 같은 날, 같은 장소로 여행을 갔다고 밝히지 않았다면 함께 여행을 갔으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거예요. P 양은 부정의 시각으로 무미건조함을 보여 별일 아닌 이야기를 전했고, K 양은 부정의 요소를 넣었지만 결국 긍정의 이야기로 마무리를 지으며 자신만의 ‘별일’을 만들었으니까요. 생각의 차이는 확연히 다른 결과를 보여줍니다.
글도 마찬가지예요. 부정으로 나열된 글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부정의 기운만을 전합니다. 그렇다고 특별한 구석도 반전도 없으면서요. 물론 영화 <식스 센스>(The Sixth Sense)에 나오는 것처럼 소름이 돋을만한 반전을 보여 준다면 좋겠지만, 내가 겪은 ‘무언가’에 애정을 담는다면 그 이야기는 특별하게 들릴 수밖에 없겠죠. 별일이 아닌 일을 ‘별일’처럼 쓰는 글은 노래 가사도 예외는 아닐 거예요. 며칠 전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가수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 한 곡을 듣게 됐어요. 제목은 <별일 없이 산다>입니다. 아래에 적힌 가사 일부를 함께 음미해 보아요.
네가 들으면 십중팔구 / 불쾌해질 얘기를 들려주마
오늘 밤 절대로 두 다리 / 쭉 뻗고 잠들진 못할 거다
그게 뭐냐면 /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 나는 별일 없이 산다 / 이렇다 할 고민 없다
이번 건 네가 절대로 / 믿고 싶지가 않을 거다
그것만은 사실이 아니길 / 엄청 바랄 거다
가사를 처음 봤을 때는 제목처럼 정말 별것 없는 내용이라고 생각했어요. 한마디로 ‘뭐 이런 게 다 있어?’였죠. 연이어 들여다보니 속내가 비치더라고요.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여자는 남자가 자신과의 이별을 슬퍼하며 질질 짜길 바랐지만, 오히려 남자는 말 그대로 별일 없이 지낸다고 말해요. 별것 아닌 글자를 노래 가사로 만들어 놓으니 ‘별것’처럼 보였습니다.
글을 쓰기 전에당신의 눈앞에 놓인 주제를 특별하게 대해보세요. 생각의 한 끗 차이가 엄청난 결과를 만드는 것처럼 남들 눈에는 평범해 보이는 주제가 ‘별일’처럼 새롭게 탄생할 거예요.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죠. 혹자는 말합니다. ‘인생이 뭐 별거냐’고. 하지만 당신의 인생을 별일도 아닌 그저 그런 삶으로 만드느냐, 아니면 남들이 닮고 싶은 ‘별일’의 인생을 사느냐는 전적으로 당신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