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어떻게 글을 써야 할까요?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는 순간 우리는 이 문제 앞에서 고민합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의외로 답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데도 말이죠. 바로 ‘나’ 자신이 답이기 때문이에요.
지금까지 살면서 겪은 이야기, 특히 고난과 좌절, 그리고 실패라 불리는 수많은 실수를 통과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글감'입니다. 나 역시 수많은 시련을 겪었어요. 답답한 현실에 가슴을 쳐서 멍이 든 적도 여러 번이죠.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들이 지금은 글을 쓰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불행 중 다행스럽게도 내 인생은 시작하자마자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병원에서 더는 손쓸 수 없대요
나는 태어나고 두 달이 지나지 않아 큰 병을 앓았어요. 나중에 알게 된 병명은 ‘폐렴’. 물론 지금이야 초기에 발견이 되면 고칠 수 있지만, 1980년대 초·중반만 해도 불치병에 가까웠죠. 병원에서 1년을 넘게 살았으니 나의 ‘백일’과 ‘돌’ 잔치는 남의 나라 이야기였습니다. 그럼에도 엄마는 막내딸의 첫 생일인데 사진이라도 남기고 싶어 카메라를 들고 병실로 갔지만, “죄송한 말씀이지만, 사진을 찍어 놓으면 나중에 부모님 마음만 더 아플 뿐입니다. 찍지 마세요.”라며 의사 선생님이 말렸다고 해요. 아마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오래 버티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 여긴 모양입니다. 그래서 내게는 그 흔한 백일 사진과 돌 사진 한 장이 없어요. ‘돌잡이’는 또 어느 나라 말이죠? 내게는 꿈도 못 꿀 일이었습니다. 나의 투병으로 언니는 시골 외할머니 댁으로 보내진 지 오래였고, 엄마는 가뜩이나 약한 체력에 10kg이나 더 빠져 쓰러지는 일이 잦았으며, 아빠는 지렁이를 먹이면 나을 거라는 주변 사람들 말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동네 하수구를 다 뒤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병세는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급기야 병원에서 손을 쓸 수 없으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대요. 부모님은 어떻게든 나를 살리려 수도권에 있는 큰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역시나 같은 답변만 들을 뿐이었다고... 숨을 쉴 때마다 배보다 더 커져만 가는 배꼽, 앙상한 뼈만 남아 원숭이 같은 모습, 작은 아가의 온몸은 이미 주삿바늘 자국으로 가득했습니다.
나를 안고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그때부터 새벽마다 교회에 가서 기도하셨대요. 등 뒤에는 나를 업고 말이죠. 더는 사람이 할 수 없다면 신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신 거예요. 세찬 비바람이 불어도, 무릎까지 눈이 쌓인 날에도 늘 나를 엎고 기도를 하셨대요. 엄마의 간절한 기도가 하늘에 닿은 걸까요? 그 후로 약 2년이라는 시간을 지나, 나는 기적으로 살아났어요. 지금은 일 년에 감기 한 번 쉽게 걸리지 않을 정도로 건강합니다. 너무 어릴 적 일이라 기억이 나진 않지만, 자라오면서 늘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나는 특별한 사람이야. 그때 내가 죽지 않은 이유는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야. 반드시 그 일을 찾아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뿜어내며 살아야지!’
마음을 움직이는 글은 내 이야기에서 만들어집니다. 그것도 ‘긍정’ 이 아닌, ‘부정’의 키워드에서 말이에요. 당신이 가지고 있는 부정의 키워드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위로와 희망이 됩니다. 바로 그 이야기를 전하세요. 당시에는 가슴 찢어질 듯 아픈 상처와 슬픔도 다른 이에게는 살아갈 이유가 되기 때문이에요. 인간은 이 세상에 일어날 수 있는 전부를 겪을 수 없다죠. 아니, 그럴 만한 시간도 없고요. 그래서 타인의 실수를 배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한 번 태어나 장애물 하나 없이 곧은길로 가는 인생을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이 건강이든, 사랑이든, 직업이든 반드시 눈앞에 장애물을 만나죠. 먼저 그 이야기를 풀면 됩니다. 단, 시작은 부정이되 반드시 긍정으로 끝내야 해요. 서론, 본론을 넘어 결론까지 암울한 이야기로만 가득 채운다면 독자에게 감동은커녕 시련에 빠뜨릴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