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니 자기계발서 <꽂히는 글쓰기의 잔기술>
모든 주제가 글감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한 재료는 ‘글감’을 찾는 것이다. 글은 쓰고 싶은데 어떠한 주제로 써야 할지 막막해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 사실 우리 주변에 널린 것이 글감인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글쓰기보다 더 중요한 것! 글감 보는 눈을 키워야 한다.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열린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글감 보는 눈도 키울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세계 지도를 보면 가슴이 콩닥콩닥 거렸다. 운동회 날이 되면 하늘 위로 펄럭이는 만국기에 혼자 감격해 눈물을 흘린 적도 있고, 4년에 한 번 열리는 올림픽 개막식은 빠짐없이 볼 정도로 ‘세상’ 그리고 ‘세계’라는 키워드에 관심이 많았다. 내 눈이 바라보는 세계는 나와 거리가 먼 이야기가 아닌, 가까운 이웃과 같았다. 2003년 초겨울,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외라는 곳을 갔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많게는 1년에 두세 번 나갈 정도로 지구 밖으로의 행진을 즐겼다. 2005년 가을에 처음으로 중국으로 건너가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언어뿐만 아니라 문화, 중국인의 성향, 중국인과의 관계에 더 깊이 배울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내·외향적인 모습이 있다. 나 역시 사색(思索)을 좋아하고 영화감상, 쇼핑 등 혼자 노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외향의 모습 또한 감출 수 없기에 새로운 곳에서도 쉽게 적응하고 처음 만난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금방 친해진다. 아마도 마음을 열어두고 대하기 때문일 터다. 나의 열린 마인드는 중국인 및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제대로 빛을 바랐다. 한국 사람보다 외국인을 대하는 게 훨씬 편할 정도다. 아무래도 한국 사람끼리는 먼저 나이와 직업을 묻고 거기에 맞는 대우를 받거나 해주는 경향이 있는 반면에, 외국인들은 특별한 호칭이 없기 때문에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고 금방 친해질 수 있어 그런 듯싶다.
2010년 여름에 상하이에서 1년 정도 거주한 적이 있다. 기숙사가 아닌, 따로 집을 구해서 살았는데 그때 살던 집주인이 상하이 토박이였다. 우리말의 ‘서울깍쟁이’가 있듯이 ‘상하이 깍쟁이’ 역시 중국에서 유명할 정도로 대하기가 만만치 않다. 상하이 깍쟁이들을 조심하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갔던 터라 걱정했는데, 예상대로 첫인상이 장난이 아니었다. 순간 깊은 한숨이 나왔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역시나 그들은 내가 이사를 온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나의 중국인 친구가 되어주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어느 정도 조심할 필요는 있지만 그 말이 100% 맞는 듯 맹신해서도 안 된다. 나는 미리 듣고 간 안 좋은 이야기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물론 어느 정도 조심하려고 했지만, 진심은 통한다고 믿었다. 엄마에게 한국 화장품이나 음식을 우편으로 받으면 집주인 아저씨와 아주머니에게 선물로 드렸다. 그리고 생활하면서 궁금한 게 있을 때마다 딸처럼 들러붙어 묻곤 했다. 내가 열린 마음으로 그들을 대하니 그들도 나를 편안하게 대해주었다.
책 읽기 역시 마찬가지다. 책을 읽을 때 한쪽 눈으로만 보려는 건 않는지 돌아봐야 한다. 책 안에는 무수한 주제, 글감, 아이디어가 숨어 있다. 우리에게 떠 먹여 주려고 발버둥을 쳐도 열린 마음으로 읽지 않는다면 도루묵이 되기 십상이다. 내가 만약 중국인들을 의심하고 안 좋은 소리에만 집중했다면 진짜 중국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 내 마음 안에는 이왕 하는 중국 생활이니만큼 성공적으로 하고 싶었다. 마음을 열고 그들을 바라보니 귀로만 듣던 안 좋은 이야기들은 이미 나와 거리가 먼 존재가 되었다. 책은 우리가 삶을 살아갈 때 느끼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넘어 내 머리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부분까지도 알려 준다.
책에서 글감을 찾기 위한 방법 중 또 하나는 책 읽는 자세다. 자세만 봐도 독서의 목적이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나는 책을 읽을 때 지저분하게 읽는 편이다. 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절대 침을 발라 넘겨서도 안 되고, 접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으며, 펜으로 끄적이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지니야, 네 방에 책이 진짜 많구나! 나 좀 빌려줘.”
“응, 그래. 대신 지켜야 할 사항이 있어.”
“지켜야 할 사항?”
“걱정 마, 별거 아니야.”
친구가 책이라도 한 권 빌려갈 때면 우리나라 헌법은 명함도 못 내밀만큼 나만의 엄청난 조항을 만들어 빌려가는 이들을 간 떨리게 했다. 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이 태도가 얼마나 상대방을 피곤하게 하는지, 쓸데없는 짓인지를 깨달았다. 책을 깨끗하게 보려고 할수록 읽고 있는 내 마음은 오히려 굳게 닫혀있어 책이 퍼주려는 것을 얻지 못한 채 지나치기 일쑤였다. 책 ‘외모’에 신경을 쓰니 정작 내용에는 집중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책에서 쏟아내려는 글감과 주제를 인식하지 못했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책은 지저분하게 봐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 후로 책을 접는 것은 물론 읽을 때마다 떠오르는 아이디를 해당 페이지에 적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글귀나 내 마음을 울리는 문체를 발견할 때면 가차 없이 밑줄을 그었다. 책 읽기에 부여했던 조항을 모조리 없앤 것이다. 마음을 열고 독서를 하니 차원이 다른 책 읽기로 변했다. 책 속의 저자가 하는 이야기는 내용뿐만 아니라 그 외의 아이디어까지 볼 수 있었고, 해당 주제와는 상관이 없는 글귀나 단어가 매직아이처럼 내 눈에 꽂혀 또 다른 주제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명심하기를 바라는 또 한 가지가 있다. 책을 읽을 때 이미 ‘그 책’을 골랐다면 부정의 시각으로 보지 않았으면 한다. ‘비판’과 ‘비난’이 서로 다른 뜻을 지닌 것처럼 책을 비난하며 부정의 시각으로 읽는다면 아이디어는커녕 안 읽은 것만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생각했을까?’라며 생각의 꼬리를 물었을 때 새로운 글감과 주제가 만들어지는 것이지, 무조건적인 비판의 화살은 오히려 곧 자신에게 꽂힐 화살이 될 뿐이다. 결국 손해를 보는 쪽은 책이 아니라 본인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종교 사상가이자 철학자인 ‘마틴 부버’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을 살아가며 나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열린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열린 마음이야말로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재산이다.”
책에서 글감을 찾기 전, 우리들의 마음 문이 활짝 열렸는지 아니면 아예 굳게 닫혔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아무도 열 수 없게 닫아놓는다면 책이 당신에게 퍼주려는 그 어떠한 것도 담지 못할 것이다. ‘주고받는다’라는 의미의 ‘Give&Take’라는 말처럼 당신의 관점을 열어야 책 역시도 당신에게 많은 것을 부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