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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니 Apr 06. 2020

링커 투혼! 그것은 '방송작가'

이지니의 <닥치는 대로 경험했어요>

방청객에 이어 오늘은 방송작가 경험담을 나누려 합니다. 먼저 각의 경험은 2~3년 이상의 오랜(?) 것이 아닙니다. 하고픈 일이라서 도전했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그만둔 것들의 이야기라 좋은 기억보다는 그렇지 않은 게 대부분입니다. 힘들어도 그 일이 좋았다면 지금까지 하고 있겠지요? ^^; 그러니, 심각하게 말고, 한여름에 즐기는 냉커피처럼 시원하게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


자, 그럼 출발!     


(물론 여전히 작가로 활약하는 동창들이 있어요. 누구보다 그 일을 즐겁게 해내고 있지요. ^^





<10년의 첫사랑과 굿바이>

   

드디어,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작가가 됐다. 이름도 찬란한, 막.내.작.가! 열정 페이의 최고봉인 이 타이틀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리라! 나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감사하게도 케이블 개그 프로그램에서 일하게 됐다. 이제는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개그맨들과 한솥밥을 먹은 거다, 냠냠. 그래, 이름을 밝히련다.     


바리바리 양세바리 양세형

<플레이어>의 이용진, 이진호 등...   

  

이들은 오직 꿈 하나를 갖고 무대에 섰고, 나 역시 꿈을 안고 대본을 썼다. 아, 원래 막내 작가는 대본을 쓸 짬밥이 안 된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메인 작가님이 너무 바쁘셔서 내게 맡기셨다. 눈알이 빨개질 만큼 머리가 터질 만큼 고된 작업이었지만 생각해보니, 너무나 값진 경험이었음을. (이 자릴 빌려 감사합니다, 메인 작가님!)     


대부분 스튜디오 촬영이지만, 가끔 야외도 있다. 그날의 장소는 대학로! 야외 촬영은 구성과 대본 외에도 신경 쓸 게 한두 개가 아니다. 이제 갓 스무 살이 좀 넘은 아가(응?) 지니는 도망칠 수 없는 현실에 꺼이 울었다는 슬픈 이야기가. ㅎㅎ 그래도 닥치면 하게 된다는 말! 그때 처음으로, 제대로, 뼈저리게 느낀 말! 그러니, 청년 여러분 겁먹지 마세요! 됩니다, 닥치면!

     

대학로 하면 뭐가 떠오르나? 그래, 발랄한 비둘기 녀석들이다. 촬영하는지는 어떻게 알고 날아온 녀석들이 저마다 앵글에 잡히겠다고 모여든다. “지니 씨, 이쪽에 와서 얘들 좀 다른 데로 유인해 봐!” 피디가 하라고 하면 해야 한다. 현장에서도 피디가 답이고 진리다. 메인 작가도 서브 작가도 아닌 고작 막내인 내게 권리란 없단 말이다.


작가로서의 혹독한(?) 첫 테이프를 끊고 드디어 공중파 교양 프로그램으로 옮겼다. 작가의 꽃은 누가 대본이라고 했나? 확실히 하자, 작가의 꽃은 섭외다! 길지 않은 작가 생활을 하면서 내가 전화를 건 공공 기관, 개인 사업체만 천여 통은 족히 넘을 듯하다. 100㎏이 넘는 건장한 남자 5명을 섭외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물론 대부분은 방송을 위해 흔쾌히 승낙하신다.      


하.지.만. 피를 말리게 하는 곳도 적지 않음을 밝힌다. 분명히 촬영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날에 번복하는 경우는 정말이지 왕뚜껑이 열린다. 그래도 뭐 별수 있나, 한 시간 내로 다른 곳을 다시 섭외해야지! 말이 되냐고? 방송국에서는 안 되는 일이 없다. 안 되면 되게 해야 한다. 어느 촬영이든 마찬가지일 텐데, 촬영 시간은 예측 불허다.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촬영할게요!”라고 해도 자로 잰 듯이 딱 제시간에 시작해서 제시간에 마칠 순 없다. 그런데 작가를 가장 난감하게 하는 것 중 하나는,     


“아니, 작가 양반! 2시간이면 된다며?”     


“아, 죄송해요... 피디님이 한 시간 정도 더 필요할 것 같다고 하시네요...”     


“뭐라고? 이거 말이랑 다르잖아요! 장난해?”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섭외 당시 말씀드렸듯이 촬영하다 보면 시간이 들쑥날쑥해서요. 최대한 빨리 끝내도록 할게요...”     


방송작가는 분명 내가 10년간 품은 최고의 드림이었다! 그 누가 뭐라 해도 기필코, 반드시 이뤄야 했던 나의 길이었다. 좋은 날도 분명 있었지만, 몸과 마음이 시들다 못해 병들어 갈수록 링거를 맞는 날이 잦아질수록 더는 버텨낼 자신이 없었다.     


‘정말 내가 바라던 일이 맞나?’     


문뜩 개그맨 정형돈이 어느 강연에서 한 말이 스친다.  

   

“개그맨으로 성공한 후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꿈을 이루니 너무너무 행복하시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개그맨이 되려고 발버둥칠 때가 나름대로 성공한 지금보다 더 행복했다는 거예요. 확고한 목표가 있으니 어떤 상황이 닥쳐도 이겨낼 힘이 있었고, 돈이 없어 덜 먹어도 좋았죠...”


방송작가로 오래 일하지 않았고, 성공하지 못했기에 난 거기까지의 감정은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나 역시 현장을 누비며 방송을 준비하던 때보다 방송작가를 늘 마음에 품었던 때가 훨씬 더 행복했기 때문이다. 여하튼, 힘들어도 보람이 있고 즐겁다면, 이유를 막론하고 어떻게든 버텼을 거다. 하지만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배신감에 휩싸였다.        


‘내가 어떻게 지킨 꿈인데...’     


새벽 2시에 여의도로 오라고 한 모 피디 (우리 집은 인천이다), 섭외하면서 들은 온갖 욕들, 담배를 권유하던 몇몇 작가들, 같이 자막 넣자며 불러놓고 혼자서 집으로 가버린 모 피디, 복도에서 대본을 던지며 내게 모진 말을 한 모 피디 등...


역시 꿈은 꿈으로 둬야 했나? ^^;;;     


아니다. 오히려 시작을 안 했다면 지금까지도 방송작가가 되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을 나다. 하고픈 일이 있다면 일단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 백만 번 맞는 말이다. 해봐야 진짜 내게 맞는지 힘들어도 견딜 만한지, 그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쭉 함께하고픈 꿈인지 더욱 명확히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방송작가는 나의 첫사랑이다. 정말 정말 정말... 간절히 바랐던 꿈이었다.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는다더니, 역시나 나와 멀어졌구나. 그래도 감사한 분들이 있다.


방송작가가 되고 싶다 말하니 선뜻 내 손을 잡아주신 신 교수님, 간절함에 메일을 띄우니 함께 일하자고 화답해주신 김 작가님, 같은 동네에 사는 이유로 종종 본인의 차로 출퇴근시켜준 윤 작가님, 나 때문에 방송 사고가 났을 텐데 그 자릴 채워준 한 작가님... 다들 어떻게 지내시려나?


참! 그래도 한때 2주에 한 번씩 만나 대본을 전해드리며 소소한 얘기를 나누던 방송인 현영 씨와 붐 씨... (다른 두 분도 계셨음) 특히 붐 씨의 개그가 수년이 지난 지금 더욱 탄탄해진 듯해서 괜스레 뿌듯하다. 그리고, 섭외가 이뤄지지 않을 때 혹은 급하게 섭외가 필요할 때 흔쾌히 도와준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 방송국에서 일한다며 자랑스러워하시던 두 분께 이제는 죄송한 마음이지만 진짜 내 길을 찾았고, 그 길 위를 잘 걷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사랑합니다! (역시, 마무리는 훈훈하게 +_+)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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