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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니 Apr 03. 2020

방청객 아르바이트에서 빛을 보다

꿈과 연관이 있다면 뭐든 한다

방청객 아르바이트에서 빛을 보다

<꿈과 연관이 있다면 뭐든 한다!>


나는 호응을 잘한다. 그 말은 다시 말해 OVER를 잘한다는 뜻이다. 어떤 일에 내가 막 웃고 손뼉 치면, (황당한 듯) “되게 좋아한다” “뭐가 그렇게 좋아?”라는 말을 가끔 듣는다. 아니, 웃겨서 웃는다는데 그게 죄인가?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이 재밌다는데, 무섭다는데, 감동했다는데 그래서 내가 좀 표현하겠다는데 그리 잘못됐나? 나름의 이 고충을 한국계 미국인 언니에게 터놓으니,

     

“아, 음.. 지니! 유노? 넌 말이야, 네 안에 외쿡인 피가 흘러. 흥이 많은 거야. 네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어. 유노? 난 그런 네가 정말 좋아. 아이 럽 유 쏘 머취!”  

   

그래, 유난히 뿜뿜하는 내 흥이 죄다. 여하튼 호응이 좋은 나는 방청객 아르바이트처럼 잘 어울리는 것도 없다. 그런데 내가 이 일을 택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방송작가, 난 방송작가 꿈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10년 동안 이 꿈을 놓은 적이 없다. 엄마랑 아빠는 제발 좀 개그우먼이 되어 달라고 하셨지만, 난 대놓고 웃기는 거 진짜 못 한다. 쉽게 말해 멍석 깔아주면 숨고 싶다.


내가 부모님 앞에서 늘 재롱 부리니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잘하는 줄 착각하신다. 환장하겠다. ^^;; 무엇보다 내가 똘끼가 좀 있으나, 정말 친하지 않으면 이 똘끼도 숨어버린다. 쉽게 말해, 많이 친하거나, 덜 친해도 나와 비슷한 코드를 가진 사람 앞이거나...


방송작가의 꿈을 키우니, 방송국에서 일하는 작가 언니들의 모습이 궁금했다. 학연 지연을 동원해도 일터를 구경시켜 줄 이는 없고... 오호라! 그래서 내가 택한 건, 방청객이었다. 역시 나의 예상은 맞. 았. 다.     


매일 아침 8시? (시간은 기억 안 남) 2호선 당산역 1번 출구 앞 맥도널드에서 나를 태울 차를 기다렸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꽤 많았지만, 각자 mp3 듣기에 바빴을 뿐. 나도 보아의 ‘No.1’을 듣느라 옆에 누가 서 있는지 무관심이었으니. 45인승 관광차가 오면 우린 마치 짠 듯이 질서를 지키며 차에 올랐다. 목적지 따위는 묻지 않았다. 뭐, 여의도 아니면 탄현 혹은 일산일 테니까.

     

자자, 이제부터 기약 없는 기다림의 연속이다. 녹화가 들어가기 전, 우리는 한없이, 원 없이 기다려야 한다. 녹화가 시작되면? 역시나 시간과의 사투다. 금방 끝나는 건 2시간 이내에도 마무리되지만, 길면 4시간 5시간까지 간다. (그래, 아주 지구 끝까지 기다려 보자!)   

  

“녹화 시간이 길면 좀 어때, 그만큼 페이를 많이 주겠지!”라고 생각하는가? 아이고, 길에서 만 원 줍는 소리 하지 마시라! 지금은 모르겠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한 프로그램 당 얼마의 페이를 받았다. 녹화 시간이 길든 말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오랜 기다림에 녹초가 되어, 배고픔에 허기진 배는 각자의 몫일뿐) 녹화가 시작되면 다른 방청객들은 연예인을 보느라 초롱초롱, 나는 대사를 쓴 종이를 들고 있는 작가 언니들을 보느라 초롱초롱!


“자, 무조건 호응은 크게! 알죠? 그래야 NG 없이 갑니다!”


의 호응이 빛을 바랄 때다.      


(손바닥에 핏대 세우며 박수) “와!!!”      


상황에 따라 기쁨과 슬픔, 놀라움, 아쉬움을 만들어내느라 목이 쉬는 줄도 모른다. 어느 날, 나의 이 투철한 정신이 방청객 담당 언니의 눈에 제대로 꽂혔다. 지니 씨, 호응을 참 잘하는데, 계속 와 줄 수 있어요?”  


어머나! 내게도 이런 칭찬을 들을 날이 오는구나...

    

“네! 매일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너무 억지로 웃느라 편두통이 자주 생겼다. 그런 적 있나? 일부러 웃느라 힘들었던 적... 그렇게 호응을 잘하는 나인데, 역시나 억지로 하면 병 된다. 나란 사람은 억지로 못 한다. 일부러 그런 척을 못 한다. 그러니 “너 되게 좋아한다?” “뭐가 그리 좋아?” 등의 말 좀 하지 마세요... 난 진짜 좋아서, 웃겨서, 놀라서, 대단해서 그러는 거니까.

     

이 일을 경험한 뒤로, TV 속 방청객을 쉽게 보지 않는다. 웃겨서 웃고, 놀라워서 놀랄 수 있지만 그것도 업으로 하면 결코 만만한 게 아니기에... 여하튼 녹화가 끝나면 대다수의 방청객은 연예인에게 달려간다. 사인을 받기 위해서다. 사실 이렇게 좋은 기회가 어디 있으랴. 그럼, 나는? 방송작가를 꿈꾸는 이지니는? 난 뒤를 돌아 작가 언니들에게 돌진한다! 그리고 아주 착하게, 얌전하게, 다소곳하게 묻는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방송작가를 꿈꾸는 대학생입니다. 오늘 방송 정말 재밌었어요! 그런데... 혹시 가지고 계신 큐카드 저 주시면 안 될까요? 매일 보고 있으면 꿈에 한 발 더 다가가는 듯할 것 같아서요. 헤헤”     


“어머, 그래요? 보통 연예인들 사인받느라 정신없는데, 큐카드 달라고 한 사람은 처음이네요. 므흣”     


“아, 헤헤...” ( 같은 애 나도 첨 봐, 그러니까 빨리 큐카드! 커몬!)     


그렇게 해서 나는 몇 군데의 큐카드를 소장하며 꿈과 더욱 가까워졌다. 페이를 보고 했다면 이 일은 절대 못 한다. 최저 시급은커녕 차비 빼고 허기진 배를 달랠 정도의 간식을 사면 마이너스니까. 호기심 때문이라면 한두 번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난, 꿈과 연관이 있기에 여러 번 해도 견딜 수 있었다. 실제로 방송작가가 된 후에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 여한(?) 없다. (큐카드 작성법, 방송 구성 작성법 등)     


아, 생방송에도 참여한 적이 있다. SBS <잘 먹고 잘 사는 법>이란 프로그램이다. 시작 1초 전까지 진장을 늦출 수 없고, 방송 중에도 침 한 번 크게 삼키는 것이 조심스러웠던. 정말 추억 돋는다. 아, 옛날이여!


짧은 에피소드를 담자면, 가수 성시경의 데뷔 초를 기억한다. 당시 SBS <좋은 친구들>이란 프로그램(아, 옛날 사람 -_-)에 나왔는데 나도 거기 방청객으로 있었다. VCR이 나갈 때, 앞 줄에 앉은 방청객들과 몇 마디 나누기도 했다. 물론 성시경 님은 나 따위 기억조차 못 할 테지만 (인생이 뭐 그런 거 아니겠...) 말이다.

    

배우면 배우, 개그맨이면 개그면, 가수면 가수. 정말 많은 연예인을 실제로 봤는데, 그중 가장 기억나는 연예인은 지금은 배우로 활동하는 장나라 님이다. 인형이 살아서 움직이는 걸 눈으로 목격한 기억. 여하튼 방청객의 추억은 아련하다.


다시 할 생각이 있느냐고?


만약 내가 여의도 근처에 살면, KBS1 <아침마당> 생방송은 참여하고 싶다. 이젠 그럴 나이(까진 아닌가? ㅎㅎ;;) 아침마당은 유용한 정보를 많이 알려줘서 책 같은 TV라고 자부하기에 기회가 닿으면 꼭 방청객으로... 아니, 출연자로 서고 싶다. (그날이, 올까요? 정말요?) 꿈이 소중했기에, 돈이 되든 안 되든 연관된 일 또한 내게는 소중했다. 지난 일을 회상하니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럼, 지니의 방청객 경험담을 마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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