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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니 Jun 04. 2020

그때의 내가 듣고 싶었던 말

이지니 산문집 <삶을 돌아보는 산문집>


겨울에는 추위를 예상이라도 하지, 봄바람이 이리도 날카롭다니. 퇴근길, 고슴도치처럼 몸을 한껏 움츠리고 빠른 걸음으로 역으로 향했다. 멀리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두 소녀가 전단지를 주고 있었다. ‘아, 이런 날씨에 패딩 점퍼도 없이.’ 나보다 앞서가던 중년 남성이 한 소녀가 내민 전단지를 휑하니 지나쳤다. “한번 찾….” 내뱉은 말과 내민 손이 여간 민망한지 소녀는 자신의 친구에게 서러운 듯 짠한 미소를 보냈다.      



역으로 들어서는 그 찰나의 시간. 소녀의 모습에서 20대의 나를 봤다. 2002년, 겨울바람이 살결을 파고드는 어느 날에 나도 전단지를 돌렸다. “돈가스 먹으러 오세요! 정말 맛있어요!” 나를 스치는 수많은 사람을 향해 손과 말을 뻗었다. 설령 내가 건넨 전단지가 어딘가에 버려지더라도 받아주는 이들이 고마웠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소녀가 맞닿을 때 나는 얼른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추운데 고생이 많아요.”    


 

가끔은 별것 아닌 말 한마디가 맘속에 스며든다. 이 작은 울림이 파장을 일으켜 인생의 어느 순간, 어느 시점에 닿을 때 다시 깨운다. 삶의 위로나 격려는, 어쩌면 너무 작아 보이지 않는 ‘어느 한마디’에서 흐르는지 모른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이라면 상대에게는 더욱 그러하리라. 어쩌면 그때의 난, 이 말이 듣고 싶었나 보다.      



 “추운데 고생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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