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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니 Jun 05. 2020

추억을 소장하는 이유

이지니 산문집 <삶을 돌아보는 산문집>


11월이 되면 26년 만에 이사를 한다. 8월 말까지는 집을 비워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날 때마다 짐을 정리해야 한다. 오늘이 그 첫날이다. 점심 식사 후 책장부터 시작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책이 많다. 역시 뿌듯하다. 그중 고등학교 영어 교과서 세 권, 중국 어학연수 시절의 교재, 초등학교 때 엄마가 사주신 한자(漢字) 만화, 최불암 시리즈. 아, 나를 또 자극하는구나. ‘추억 꺼내기’가 취미인 나라서 의미가 있는 물건은 되도록 버리지 않는데, 이거 큰일이다. 너무 모셔두는 것도 궁상맞은 것 같아 새롭게 시작하려는 내게 이 무슨 벌인가.      



오래 숙성된 포도주가 더 비싸고, 묵은지가 더욱 맛있는 이유는 시간의 힘이다. 더욱이 오랜 물건에는 그때의 냄새와 모습이 더해진다. 이것이 내가 추억을 소장하고픈 이유다. 여전히 내 맘은 교복을 입은 열일곱 소녀인데, 이제는 이놈의 '나잇값' 때문에 안 그런 척도 마다하지 않는다. 물리적 나이에 굴복해야 하는 게 씁쓸하지만, 그렇기에 그 시절이 더욱 애틋한 거겠지. 그나저나, 이 책들을 어찌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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