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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니 Jul 01. 2020

새벽 기상부터 지옥철 출근까지의 기록 에세이

집 근처 센트럴파크역 --> 독산역 사무실

새벽 기상부터 지옥철 출근까지의 기록 에세이 (feat. 성향존중)






새벽, 그녀가 차린 밥상




잠들기 전, 알람이 정확히 오전 6시 15분으로 설정되어 있는지 확인한다. 6시 20분이면 지각할 수 있으니 안 되고, 6시 10분이면 5분을 더 잘 수 있으니 억울해서 안 된다. 하루를 토닥이는 잔잔한 피아노 연주 소리에 곤히 잠에 빠진다. 꿈에서 꽃을 든 오빠를 만났는지 입을 벌린 채 실실 웃고 아주 가관이다.

다음 날 새벽 6시 15분 0초, 스웨덴 어느 시골 마을 축제에서 들어봄직한 나팔 소리에 잠이 깬다. 내 사랑 알람, 역시 정확하다! 어린이집에 가기 싫은 아이처럼 침대 위를 헤엄치며 “1분만” “1분만”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로봇이 친구하자 할 정도로 절도 있게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향한다. 앗,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니 뚝딱뚝딱 화려한 칼질을 선보이는 그녀가 보인다.






작년에 환갑을 넘긴 울 엄마. 여태껏 노처녀 딸을 부양하느라 오늘도 계란볶음밥에 눈물을 덮으신 건 아닌지. 노릇하게 구운 스팸을 송송 썰어 밥 위에 올린 후 코스트코에서 제일 맛있다는 토마토케첩을 뿌려 마무리하신다. 홍삼이든, 사슴뿔이든 밥이 최고의 보약이라며 이날 이때까지 아침밥 한 번을 거르신 적 없는 내 어머니. 이 나이가 되도록 잘 얻어먹어서 죄송하지만...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냠냠.







1분 1초도 허락할 수 없다!




밥그릇에 담긴 밥알들을 보아하니 어림잡아 열다섯 번의 숟가락질이면 되겠다. 숟가락 위에 고이 밥을 떠서 시원한 물김치와 함께 목구멍 탐험을 시작한다. 자자, 얼른 잡수시라.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 곧 6시 50분이다. 8시 30분까지 독산역 사무실에 도착하려면 7시 12분에 출발하는 열차를 타야 한다. 6시 58분에 켜지는 집 앞 신호등을 건너야 한다는 소리다.

엘리베이터 사용량이 가장 많은 시간이다. 이 밤의 끝을 잡듯 긴장의 끈을 놓치면 안 된다. 자칫 휴대폰이나 카드 지갑을 두고 나왔다간 지각을 면치 못할 수 있으니 조심할 것! 엘베를 기다리는 시간만큼은 단 1분의 느긋함도 허락할 수 없단 말이다. 띵! 기다리던 엘베님이 오시어 13층에 있던 나를 1층으로 안전하게 모신다.







밖으로 나와 가방 안에 있는 검은색 이어폰을 꺼낸다. 긴 줄 끝을 잡고 휴대폰에 연결한다. 첫 곡은 아이유의 <밤편지>다. 윤동주 시인이 살아서 '짠~'하고 등장할 듯한 서정적인 향이 풍기는 곡. 근데 이게 영... 귓속은 잔잔한데 눈앞은 참새 다섯 마리가 토론을 하는지 엄청나게 짹짹거린다. 아이유와의 접선이 흔들린다. 그래도 뭐, 별수 있나? 그들이 사는 세상인 것을.





32분만큼은 편안함을 누려라 ♬




인천지하철 센트럴파크역에 도착했다. 다행히 7시 10분이다. 2분 후면 부평역으로 나를 데려갈 열차가 온다. 신난다. 재미난다. 하나 둘 셋~ 가만, 이 자리가 내리자마자 에스컬레이터가 있다던 3-3이 맞지? 아니면 큰일이다. 앞뒤로 사람들이 몰리면 48분 급행열차를 놓칠지 모른다.

시발점인 국제업무지구역 다음이라 부평역까지는 편히 앉아서 간다. 도착 전까지 무엇을 할까? 책을 읽을까? 아니야. 집에서도 잘 안 읽는데 무슨 연기를 할 셈이야. 게임을 할까? 내가 아는 게임은 DDR과 테트리스가 전부인 걸. 그래, 어젯밤 친구랑 수다 떠느라 새벽에 잠들었으니 눈이나 좀 붙이자. 그나저나 잠결에 오뚝이처럼 이리 기울고 저리 기울 수 있다. 자칫하면 죄 없는 옆 사람 어깨를 건드릴 수 있으니 왼쪽 봉을 붙잡자. (봉댄스 아님 주의)

32부 후, 경쾌한 음악이 울리며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순으로 방송이 나온다. 나 무슨 종로 파고다 어학원인 줄? 자자, 정신 차리고! 침 닦고! 문 앞에 가서 기다리자. 문이 열리는 순간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벌떼처럼 몰려들 테니까.

우르르르르르~~~~~







내 몸이 공중 부양을




환승지로 향한다. 평소에 운동 좀 할 걸. 계단 스무 개를 넘기자 공포 영화에서 들을 법한 괴기한 숨소리가 난다. 이제 설 곳은 1-2다. 숨을 다 고르기도 전에 용산행 특급 열차가 씩씩하게 들어온다. 문이 열리자마자 문에서 가장 가까운 데 서서 손잡이를 잡는다. 목적지는 구로역. 자, 여기서 문제! 출퇴근길의 장관 하면 떠오르는 곳은? 정답은 신도림역이다. 즉, 구로역에서 내리지 못하면 끝장이다. 왜 못 내릴 생각부터 하냐고? 가만있자. 이 질문을 하는 걸 보니 지옥철 경험을 책에서도 안 해본 사람이로군. 음... 어떻게 설명을 해야 잘했다고 소문이 날까?

분명 두 발로 서 있는데, 하나둘씩 들어오는 사람들로 내 다리가 서서히 공중으로 뜬다. 왼손에 들고 있는 휴대폰을 오른손으로 옮기는 것도 버겁다. 과장하지 말라고? 아이고야, 나도 내 말이 거짓이면 좋겠다. 백과사전 두께만큼의 간격을 두고 동성끼리 맞대고 있으면 조인성, 원빈과의 만남보다 7.8배는 더 부끄럽고 민망하다는 걸 모른다면 말을 마시라.







오늘도 미션 완료!




아싸, 구로역이다! “잠깐만요, 여기 내려요!” 다행히 신도림역까지 가지 않았다. 오늘도 임무 완수다. 이제, 하나 남았다. 약 25개의 계단을 오르고, 다시 25개의 계단을 내려오면 드디어 마지막인 천안행 열차에 몸을 실을 수 있다. 이 코스도 방금 전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아직 좋아하긴 이르다. 신도림역 풍경과 맞먹는 가산디지털단지역이 있으니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파도처럼 밀려들어 나까지 내리게 되면 지각은 따 놓은 당상이니까. 이때, 곧은 자태로 등장하는 천안행. 이번에는 몇 번에 서야 하지? 그래, 어디든 상관없다. 더는 환승하지 않아도 되니까. 시크하고 도도한 눈빛을 들고 탑승한다. 아무도 내게 관심 없지만, 그래도 내 줏대는 내가 지킨다.

8시 15분 드디어 독산역에 도착했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의 주인공 '톰 크루즈'도 울고 갈 만큼의 미션을 완수하니 뿌듯하다. 우쭈쭈, 우리 지니 정말 기특하구나! 기분 좋으니 1층에 있는 편의점 CU에서 시원한 옥수수수염차와 키커 초콜릿을 상으로 줘야지.







내 성향이에요 :)




벌써 2년이 지난 출근길 풍경이다. 머릿속 기억 창고가 더 녹슬기 전에 기록한다. 근데 나... 어지간히 계획적이다. 울 엄마를 비롯해 지인들이 그러더라.


“지하철 환승 자리 번호는 그렇다고 해도, 횡단보도 건너는 시간까지 정해 놓으면 안 피곤해?”

내 대답은 늘 하나였다.

“아니, 전혀. 이렇게 안 하면 오히려 더 불편해!”

그렇다. 자로 잰 듯한 시간을 짜야 마음이 편하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신호등이 켜질지, 언제 지하철이 올지, 어디서 환승을 더 빠르고 편리하게 할지 알 수 없다. 으, 생각만 해도 싫다. 남들이 뭐라 해도, 이동할 때는 칼 같은 시간표가 세상 제일 편하다. 내가 틀린 게 아니다. 성향이 다를 뿐이다. 크큭. 이젠, 출퇴근하지 않으니 릴랙스 해졌지만.


그대들의 성향은 어떤가요? 나와 같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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