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니 에세이 <아무도 널 탓하지 않아>
“엄마는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간절했던 순간이 언제였어요?”
“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갑작스런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엄마의 간절한 순간이 언제였는지 궁금했어요. 아닌 밤중에 홍두깨인 냥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내 질문에 당황한 엄마. 그리고는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진 채 “네가 아주 어릴 때… 그 때지 뭐…”
내 첫 번째 저서인 《꽂히는 글쓰기의 잔기술》에 적혀 있지만 나는 태어나고 두 달이 지나지 않아 큰 병을 앓았어요. 나중에 알게 된 병명은 폐렴. 물론 지금이야 초기에 발견이 되면 고칠 수 있지만, 1980년대 초․중반만 해도 불치병에 가까웠대요. 병원에서 1년을 넘게 살았으니 나의 백일과 돌잔치는 남의 나라 이야기였죠. 그럼에도 엄마는 막내딸의 첫 생일인데 사진이라도 남기고 싶으셨대요.
“죄송한 말씀이지만, 사진을 찍어 놓으면 나중에 부모님 마음만 더 아플 뿐입니다. 찍지 마세요.”라며 의사 선생님이 말렸다고 해요. 아마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오래 버티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 여긴 모양이에요. 그래서 내게는 그 흔한 백일 사진과 돌 사진 한 장이 없죠. 돌잡이는 또 어느 나라 말이죠? 내게는 꿈도 못 꿀 일이었던 거예요.
병세는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급기야 병원에서는 더는 손을 쓸 수 없으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대요. 부모님은 어떻게든 나를 살리려 수도권에 있는 큰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대답은 모두 “고칠 수 없습니다.”였대요. 숨을 쉴 때마다 배보다 더 커져만 가는 배꼽, 앙상한 뼈만 남아 원숭이 같은 모습, 작은 아가의 온몸은 이미 주사 바늘 자국으로 가득했어요.
나를 안고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그때부터 새벽마다 교회에 가서 기도했다고 해요. 등 뒤에는 나를 업고 말이죠. 더는 사람이 할 수 없다면 신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신 거예요. 1년 365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를 업고 기도하러 가셨대요. 엄마의 간절한 기도가 하늘에 닿은 걸까요? 나는 기적으로 살아났어요. 지금은 일 년에 감기 한 번 쉽게 걸리지 않을 정도로 건강해요.
“당시 너를 살리려고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몰라. 가는 병원마다 더 이상 고칠 수 없다는 말만 하는데 어떡해.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또 빌었어. 그때 몸무게가 40kg 겨우 넘었을 거야. (참고로 엄마 키는 162cm) 뱃가죽이 등에 붙을 정도였으니까. 아빠는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지렁이가 좋다고 해서 온 동네 하수구 뚜껑을 다 열고 찾으러 다니셨어. 젊은 부부가 안쓰러웠는지 주위에서 다들 그만하라고, 그러다 우리가 먼저 죽겠다고 했지만 오직 너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 그런데 하늘이 감동했는지 기적으로 네가 살아난 거야. 가끔 TV를 보면 과학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일이라고 하잖아? 네가 딱 그랬어. 의사 선생님들조차 포기했으니 말다했잖아.”
당시 엄마의 힘의 원천은 뭘까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간절함과 절실함 때문은 아닐는지. 물론 이 법칙은 생명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녜요.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일 앞에서도 마찬가지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희망이라면 엄마의 간절함처럼 현실 불가능해 보이는 일마저 가능케 할 거예요. 어떠한 상황에서도 뿌리 깊은 나무처럼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간절함. 그런 마음이라면 눈앞에 무슨 일이 닥친다고 한들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죠.
중학교 때부터 방송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약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다른 꿈에 한눈을 팔지 않았죠. 서울예술대학교 극작과 03학번으로 입학한 나는 동아리 역시 학교 방송국 제작부에 들어갔어요.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는 왕복 5시간이 넘었지만 매일 아침 8시마다 라디오 제작을 맡아 열의를 다했어요. 시간이 지나 졸업을 앞둔 어느 날, 내 안에 품은 꿈을 이제는 꺼내야 할 때가 됐음을 느꼈어요. 졸업하기 전부터 방송국에 있는 선배들의 손길을 받는 몇몇 동기를 보니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나를 끌어줄 선배는 보이지 않았지만요.
다른 분야처럼 공모전이라도 있다면 지원하겠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어요. 게다가 당시에는 구인구직 인터넷 사이트가 활발하지 않아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죠. 반복되는 걱정으로 입맛을 잃은 지 오래. 그렇다고 방에만 있을 수는 없겠더라고요. 이대로 있다가는 손대면 톡하고 사라지는 비눗방울처럼 10년 동안 꿈꿔온 일은 구경도 못한 채 떠나보내야 할 것만 같았어요.
이때 나를 찾아온 생각!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한데 모아 해당 작가의 이메일 주소를 모으기 시작했어요. 그 중 영향력 있는 프로그램의 작가 정보를 얻은 후 그에게 메일을 보냈어요. 어디서 나온 배짱인지는 모르지만 이왕 연락할 거라면 경력이 많고, 유능한 작가를 뵙고 싶었어요. 방송작가를 하려는 이유, 하고 싶은 프로그램 등을 구구절절 적었어요. 떨리는 마음으로 보내기 버튼을 눌렀습니다.
세상에! 메일을 보낸 지 열흘이 채 지나지 않을 무렵 답장이 왔어요. 맨 아래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어요. <아래 번호 보이죠? 내 번호니까 메일 확인하자마자 전화주세요. 미팅 날짜를 잡아 봅시다.> 그렇게 나는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에서 일할 수 있는 특권을 얻었답니다.
누구보다 절실한 마음을 가지고 임하느냐는 중요해요. 꿈에 닿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간절함의 크기를 키우는 거니까요. 여기서 호기심이 발동한 아무개는 ‘간절함이 현실을 이긴다고? 그렇다면 그런 척이라도 해볼까?’라는 생각할지 몰라요. 하지만 꿈은 용케도 진실과 거짓을 구별해 내요. 즉, 덜 간절해 보이는 일에는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 않죠. 꿈을 향한 마음이 진짜라면 자신도 모르게 더 생각하고, 행동하며, 눈빛과 마음가짐마저 바뀌거든요. 거짓이 들통 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죠. 주어진 환경이나 과거는 중요치 않아요. 그 일 앞에 얼마나 간절한지가 관건이에요.
바라는 일, 해야만 하는 일을 떠올려 봐요. 그리고 심장에 손을 가져다 대요. 뜨겁게 뛰고 있나요? 눈빛이 달라졌나요? 그럼 곧 도착할 거예요. 당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