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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워킹맘 Jul 11. 2019

새벽 6시 30분 며느리 집으로 출근하는 시아버지

병원, 알람 그리고 미역국


7월 어느 날, 병원에서 맞은 생신

아버님 병실에서 바라보는 노을 풍경은 멋있었다. 카메라를 들이대 찍고 싶었지만 남편이 눈치 없다 뭐라 할까 봐 찍지는 못했지만


퇴근 후 케이크를 사 들고 아버님을 뵈러 병원에 갔다. 아픈 사람 가든 찬 병원에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고 뭐라 하시지만 손주들 보며 내내 웃으시는 모습 보니 오길 잘했다. 촛불은 켜지 않고 작은 소리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할머니 생일 축하합니다.”


1인실 병실에 처음 와봐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기만 한 둘째를 보며 시어머니는 울음을 참고 계셨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시어머니 생신을 병원에서 보냈다. 이 순간을 사진으로 남길까 잠시 생각했지만, 가슴에 이미 담긴 이 장면은 찍을 필요가 없었다.



그날 아침, 6시 20분 알람 소리

10분 만에 아침 출근 준비를 마치고 출근 전 서둘러 시댁으로 갔다. 텅 빈 시댁. 아버님이 병원에 가시고 4일째 집이 비어 있다. 어제 끓인 미역국을 작은 냄비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 두고 돌아 나오다 전화벨 소리에 깜짝 놀랐다. 소리를 쫓아가 보니 아버님 방에서 전화기 알람이 울리고 있었다.

‘오전 6시 20분, 이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나 우리 집에 오셨구나.’


맞벌이 부부인 남편과 나는 새벽 6시 40분에는 집을 나선서야 한다. 두 아이들은 한참 꿈나라에 있을 시간. 자고 있는 아이들을 챙겨 주시려 아버님은 5년 동안 어김없이 6시 30분에 우리 집으로 출근하셨다. 둘째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다. ‘아이들 이제 다 컸으니 새벽에 집에 오시지 않아도 된다’ 말씀드렸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 같이 출근하신 아버님이다.

정신없이 입원하느라 전화기를 두고 가신 덕분에 알람 소리를 처음 들어본 새벽, 기분이 이상했다.



전 날 저녁, 시어머니 미역국

근사한 생신상은 못 차려 드리는 며느리이지만, 미역국은 끓여 드리고 싶었다. 그렇게 몇 해 전부터 시부모님 생신 날 미역국(만)을 끓이고 있다.

퇴근하여 가방을 내려놓고 한숨 돌리는 시간,


 

아이들이 학원 오기 전 소중한 시간이다. 남은 저녁 시간 스케줄을 머릿속에 그리며 최적의 동선을 짜 본다. 미역국에 넣을 국거리 고기를 사러 먼저 집 앞 슈퍼에 가야겠다. 고기 사러 갈 생각 하다 왠지 모를 서글픔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띠 띠 띠'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도어록 소리에 얼른 눈물을 훔친다.


"엄마, 울었어?"
눈이 빨간 엄마가 신기해서 실실 웃으며 물어보는 첫째. 둘째 아들 녀석은 전혀 눈치를 못 챈다.


"아니~ 엄마가 왜 울어?" (이때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야 속아 넘어감)


주말에만 요리하는 워킹맘이지만 10년 넘은 시간이 쌓이니 요리 내공이 꽤 생겼다. 30분 뚝딱 아이들 저녁 준비하면서 미역국도 같이 끓인다. 미역국은 요리 초보자에게도 안성맞춤이다. 좋은 고기를 넣고 간만 딱 맞추어 푹 끓이기만 하면 절대 맛이 없을 수 없다. 정직한 맛을 가진 미역국이 좋다.




5년 전, 며느리 집으로 출근하는 시아버지

“어미야, 돈 아깝게 뭐 하러 두 집에서 따로 사니, 그냥 같이 살면 안 될까?”

“어머니, 이제 저도 제 살림을 해 보고 싶어요. 아이들도 이제 많이 컸고요. 저는 따로 살았으면 좋겠어요.”


첫째가 학교 갈 나이가 된 7살 되던 해, 난 이사를 가기로 결심했다. 합가를 원하신 시어머니와 이러한 대화를 3번 정도 더 했지만, 결국 두 집을 따로 얻어 이사를 했다.


이사를 결심하기 전까지 난 시댁에서 얹혀살았다. 연년생 둘째가 태어나며 이사 오신 시댁이 원래 진짜 우리 집과 거리가 있다 보니 출퇴근 길마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다닐 수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시댁에 있게 되었고, 난 시댁으로 퇴근하고 다음날 회사로 출근하였다. 시댁과 우리 집을 완전히 합한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생활. 시댁에 있던 내 짐은 스킨, 로션과 칫솔, 몇 개의 여벌 옷이 전부였다. 이렇게 6년이었다.


솔직히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라는 말은 핑계였다. 나의 집을 갖고 싶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누구나 꿈꿨던 그런 집 말이다. 나는 시댁과 유령 같은 우리 집 사이를 오간 메뚜기 생활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대신 시아버지의 새벽 6시 30분 출근이 시작되었다.





난 작년과 똑같이 미역국을 끓였지만, 미역국 때문에 시아버지의 새벽 알람 소리를 처음 들었고 그날, 아버님이 입원한 병실에서 시어머니의 생신을 보냈다.


이제 시아버지는 우리 집으로 출근하지 않는다. 시간을 5년 전으로 돌려 합가를 했다면, 시아버지가 오래도록 건강하셨을까 생각도 해보았다.

병원, 알람. 미역국’ 전혀 어울리지 않는 3개의 단어가 보이지 않은 끈으로 엮여 있던 이틀의 시간을 보내니 이 모든 것이 운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하는 엄마가 되면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누구에게 아이를 맡길지 고민하게 된다.


나처럼 시부모님이 돌봐 주거나 여동생처럼 친정 엄마가 돌봐 주면 아이들은 조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난다. 참 복이 많은 경우이다. 유치원 방과 후 등 시설이나 돌봄 이모님께 맡길 때보다 가족이니 안심하게 된다. 갑자기 잡힌 회식에도 집에 전화 한 통 드리고 참석할 수 있는 여유도 가져 볼 수 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편찮으시면 그간 잘못한 일들이 한꺼번에 시리즈로 떠오르며 괴롭게 된다.


‘아이들 맡기고 내 하고 싶은 일만 했었나?’
‘나도 모르게 짜증을 부리지는 않았나?’
‘며느리가 눈치도 없이 아프신 것도 모르고 있었다니.’


나와 아이들이 좀 힘들어도 차라리 유치원에 맡길 것을 그랬나 후회도 해본다.


지금 이 아침에도 딸의 집으로 아들의 집으로 며느리의 집으로 새벽같이 출근하시는 부모님들이 계시다. 


죄송한 옛날 기억에 머물러 있지 말고, 오늘 퇴근해서 한마디 더 이야기 네고, 이야기 들어 들여야겠다. 과거는 운명이라 받아들인다 쳐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가 바꿀 수 있는 시간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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