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예쁘게 가꾸어 놓은 정원을 지나며 나를 찾아본다.
수줍었던 나의 20대 마냥,
얼굴을 아래로 향하고 있는 저 하얀 꽃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쪼로롱 모여있는 다섯 송이 하얀 아이들을 보니,
대학교 4년 내내 붙어 다녔던 best friends 5 총사가 생각난다. 누군가의 아내, 엄마가 되어 열심히 일하고 있는 그녀들
수경아, 은영아, 소연아, 영아야~
"씩씩하게 잘 살고 있지?"
"근데, 우리 언제 만나냐? 올해가 가기 전에는 한 번 봐야지?"
눈부시게 아름다운 30대 마냥,
화사하면서 가시가 달려 있는 장미. '장미'를 보며 '장미'라는 이름 말고 다른 이름을 떠 올릴 수 있을까?
10년 전 사진을 볼 때마다, '이때 왜 이렇게 이뻤지?' 자뻑을 해본다. 풍성한 머리숱, 광채 나는 얼굴 빛, 때 묻지 않은 미소. 초보 엄마 시절 한 살배기 첫째를 키우느라 쌩얼로 다니던 그때가 아이 웃음 보며 견디던 그때가 어찌 그리 예뻤을까.
그렇게 이쁜 시절을 왜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될까?
그러네. 그때 예쁘긴 했는데 나한테 가시가 있었네.
나는 한 가지 색으로 표현할 수 없는 40대다.
신비로운 빛을 내뿜고 있는 저 꽃의 이름은 뭘까?
파란색? 남색? 한 가지 색으로 설명할 수 없으니 '근사한 파란색'이라 불러 본다. '근사한 40대'를 살고 있다고 주문을 거는 나와 닮았다.
무심한 듯 잎사귀와 함께 흐트러져 있어 자칫하면 지나칠 뻔했는데, 꽃송이 하나와 눈을 마주치니 영롱한 빛깔에 눈을 떼지 못하겠다. '나도 아직은 가만 보고 있으면 꽤 괜찮은데'
이 시절이 조금만 천천히 지나가면 좋겠다.
살아보지 않아 잘 모르는 50대가 되면,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보라색 꽃과 같지 않을까?
40대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조금 더 깊이가 느껴진다. 자세히 보니 세 개의 조그만 잎사귀에 안에 노란색 수술이 6개씩 있다. 작은 꿈 6개를 안고 살고 있나보다.
잎사귀가 더욱 무성한 것이, 얼마 안 있으면 내 키를 훌쩍 넘게 될 아이들이 떠오른다.
살아보지 않아 더욱 잘 모르는 60대가 되면,
정열의 붉은 꽃과 같이 내 맘대로 살 수 있을까?
아이들도 다 컸을 테고 남편 성격도 조금은 죽어(?) 있을 테고. 이제 내 세상이다 하는 날이 오겠지.
감사하게도 내가 일하는 동안 시부모님께서 아이들을 돌봐주신다. 그런데 나는 손주들 안 봐줄 거다.
'얘들아 미안해~, 엄마는 따로 하고 싶은 게 있었어'
빨간색 비키니를 입고
빨간색 매니큐어 칠하고
카리브해의 섬 쿠바, 어느 해변에 있고 싶다.
워킹맘 아침 출근길을 함께 했던 아파트 단지 한켠, 두 평 남짓한 공간에 우리의 인생이 담겨 있었다.
며칠 동안 알아채지 못했던 길에서 나는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지금 어떤 꽃으로 살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