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TV 광고를 보던 남편이 엄청 크게 웃으며 둘째한테 한마디를 던졌다.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혼자 낄낄대며 한참을 웃는 남편. ‘뭐지 이 사람. 이렇게 크게 웃는 사람이었어?’
남편을 웃게 만든 건 갱년기 남자와 여자의 기운을 올려 준다는 홍삼 선전이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도 이 광고 이야기를 들었었다. 나와 동갑인 협력 업체 분과 식사를 하는데, 정말 재미있게 본 광고가 있다며 ‘우정호(friendship)’ 이야기를 꺼낸적이 있었다.
궁금해서 광고까지 검색해 본 나. 1편 2편이 있군
-. 남자와 여자는 결혼을 하면서 한 배를 타게 된다. Friendship, 우정이라는 배
-. 아내와 남편은 굳게 맹세했다. Brothers, 형제가 되기로
의리로 살아가는 갱년기 부부를 겨냥한 카피는 고객님(우리 남편, 협력 업체분)의 마음을 훔치는 데 성공한 듯하다.
나와 남편은 이런 광고의 주요 타깃 층이 되어버린11년 차 맞벌이 부부다. 연애할 때의 풋풋함, 신혼 시절의 애틋함, 이런 건 쌈 싸서 먹은 지오래
부부가 오래 살다 보면 사랑이 아닌 정으로 살고, 더 나가면 우정으로 산다고 하던데. 농담이 더 이상 농담이 아니라는 사실이 한켠으론 씁쓸하다.독립하여 가정을 꾸려 아이들도 낳았으니 이젠 우리는 한 배를 탄 것은 맞다.그런데 우리 부부는 정말 광고 내용처럼 형제가 된 것일까? 적어도 나는 그 선전을 보고 웃지는 않았는데. 너무나 크게 웃어서 나를 당황하게 한 그 남자는 나를 정녕 형제로 생각하는 것인가? 남편의 웃음 뒤에는 분명 말로 쓰기 민망한 19금 부부생활이 깔려 있을 테이다. 하지만 덜 생물학적(?)인 나에게 남편의 박장대소는 (Sex를 떠나)부부가 오래 생활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게끔 하였다.
그는 같은 회사, 같은 팀의 1년 후배로 입사했다. 그의 목소리가 멋있어서 일수도 있고 결혼할 때가 되어 만나 그럴 수도 있고, 우리는 사내 비밀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하였다.
"박 대리 밑으로 다 일어나~" 나를 기준으로 서열 놀이를 하는 팀 회식 때, 나는 항상 앉아 있었고 그는 일어나야 했다. 사회생활의 시작은 그렇게 내가 먼저 내디뎠다. 하지만 팀장은 입사순이 아니다.회사 생활을 먼저 했다고 해서, 팀장을 먼저 시켜 주지 않는다. 후배인 남편은 나보다 먼저 팀장이 되었다.30대 후반에 팀장이 된 남편은 그렇게 나보다 잘 나가는 사람이 되었다. 남편이 나보다 후배라는 사실은 가끔 있는 선배들과의 술자리에서 오가는 농담거리가 되었을 뿐이다.
나와 남편은 후배에서 남편, 팀장 그리고 사업(부동산 투자) 파트너까지 다양한 관계로 얽혀 있다. 그는 분명 회사일과 가정 일을 넘나들며 나의 깊숙한 곳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다.
워킹맘인 나는 회사 일도 잘하고 아이들도 잘 키우고 싶지만 무엇보다 나의 주체적인 삶(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삶)을 꿈꾼다. 내가 그리는 그삶은 그의 한 마디에 힘을 얻기도 하고 아무렇지 않게뱉은 그의 말에 무너지기도 한다. 가장 기댈 수 있으면서도 가장 기대고 싶지 않은 아이러니한 관계. '이런, 남편과 나는 형제인가, 부부인가를 생각하다 복잡한 곳까지 와버렸군'
한 회사만 18년 다닌 직장인이 되니 처음 만나는 사람뿐 아니라 후배들도 노하우에 대해 궁금해한다. 여러 가지 질문 중단연 어려운 질문은 남편에 대한 질문이다.
“워킹맘 생활을 오래하시는데 남편이 어떤 도움을 주셨어요?”
“남편과의 가사 분담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은가요?”
모든 질문의 근본은 비슷하다.
워킹맘에게 남편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나는 이에 대한 답을 아직 완벽하게 찾지 못했다. 아니 영원히 찾지 못할 수도.그나마 나의 기준을 세울 수 있었던 몇개의 사건 덕분에 이정도라도 적을 수 있게 되었다.
둘째가 5살쯤 되었던 뜨거운 여름, 남편과 나는 크게 싸우고 6개월 동안 서로 말을 안 한 적이 있다.주말에 집에서 가까운 임진각 놀이 공원을 찾았었다. 첫째 6살, 둘째 5살. 한참 엄마를 찾을 나이다. 잠시 화장실을 가느라 자리를 비운 사이, 아이들이 엄마가 안 온다고 칭얼거렸나 보다. 애들이 떼를 부리고 엄마만 찾는다며 잔뜩 화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는 남편을 보고 가뜩이나 날도 더운 날 나도 뚜껑이 열려 버렸다. 그동안 유독 아이들이 떼를 부리는 것을 잘 받아주지 못하는 남편이 마땅치 않던 참에 폭발한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아이들의 떼를 받아주기만 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나는 아이들을 너무 어른처럼 대하는 남편을 이해할 수 없었다. 눈에 보이지 않던 불만이 쌓이다 그렇게 폭발했고, 서로 말을 걸지 않는 6개월을 보냈다.6개월까지 끌고갈 문제는 아니였는데, 그때는 friendship을 타지 않아 그랬나 보다.
부부가 살다 보면 이런 큰 싸움뿐 아니라 소소한 신경전도 항상 일어난다. 남편은 내가 2~3번 정도 무언가 부탁을 하면 왜 자꾸 자기한테 시키냐며 성질을 냈다. 그럼 나는 빈정이 상하며 화가 났고 우리는 또 싸우게 되었다.
사람이 누군가에게 부탁했을 때, 들어주지 않으면 화가 나게 된다. 왜 화가 날까?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은 곧 나를 무시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만든다. 사람들은 특히 내가 무시를 받았다고 생각하면 화가 난다. 그 당시 나는 그랬다.
수 많은 신경전과 큰 싸움을 겪어오며 이제는 알게 되었다. 남편이 나를 무시해서 버럭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 성격이였다는 것을. 그냥 남이 뭘 시키는 걸 싫어하는 사람 그 뿐이였다.(이제는 살살 꼬셔서 시키는 법을 터득함) 누구보다 가깝다고 생각해서 서로의 마음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깊은 늪으로 빠질 수 있는 것이 부부 관계이다.
앞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워킹맘에게 남편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나는 이제 이렇게 대답한다.
“남편 하고 나는 남이야. 나랑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이지. 결혼을 했다고 해서 내가 꿈꾸던 가족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30년을 남남으로 지내오다 만났는데, 처음부터 무엇을 바라야 할까? 그 어떤 희생과 변화를 절대 바라지 마.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나는 나야.”
물론 대화를 통해 부부간 서로의 역할을 분담할 수 있다. 90년생이 오고 있는 지금은 시대가 변했고 이성적으로 문제를 잘 해결하는 똑똑한 친구들이 많다. 하지만 살다 보면 나와 같은 고민과 싸움에 부딪힐것이다. 역할을 맡아 분담을 하더라도, 부탁하고 거절하는 경우는 생기기 마련이니까.
연애를 하던 남자 친구, 여자 친구가 나의 배우자가 되었다고 해서 바로 가족과 같은 관계를 바라서는 안 된다. 나의 기준에서 무언가를 바로 요구하기엔 우리는 너무나 오래 시간을 따로 성장해 왔다. 부부로서 서로의 가치관을 알아가는 시간, 이 사람의 성향을 파악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지내고 나면 내 혈관에 그 사람의 피가 몇 방울 흘러들어왔다는 생각이 들 즈음이 있다. 그때가 우정호를 타는 시점이 아닐까? 피 몇방울 섞인 형제가 되는 시점.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아직 헷갈리지만 말이다.
나와 남편은 이제우정호 승선을 앞두고 있는 듯하다.11년간 각자 맡은 일을 충실히 해 온 것처럼 우정호도 잘 이끌어 나갈 것이다. 한 사람이 배를 조정하면 한 사람은 물고기를 잡는다. 옛날의남편은 배만 조정했을텐데 이젠 물고기도 잘 잡을 것이다. 결혼하고 10년이 되어서 설거지를 하고 빨래도 돌리는 남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