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숙 작가님은 20년 글을 쓰면서, 글쓰기 달인의 경지에 올랐는데, 회사를 18년이나 다닌 나는 잘하는 게 뭐지?'
'18년 회사 다니지 말고 글을 쓸걸, 그럼 나도 남인숙 작가님 만큼은 아니더라도 잘 쓸 수 있었을 텐데...'
'글 잘 쓰는 거 너무 부럽다.'
여러 가지 찌질한(?) 생각을 하면서
남인숙 작가의 '필력 & 생각 & 주제를 관통하는 에피소드' 이 삼박자가 잘 어우러진 글을 만났다.
브런치 작가로 글을 쓰다 보니, 글을 잘 쓰는 작가를 만나면 닮고 싶어 나도 모르게 분석을 하게 된다. 원래 본업이 분석하는 연구원이여서 그럴 수도. 이번에도 직업병이 도졌다.
'에세이 잘 쓰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은 이미 많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잘 씌여진 에세이 한 권에서도 충분히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비단 에세이 잘 쓰는 비법 말고도 마음으로 감동받기에도 훌륭한 책이다. 많은 독자들, 특히 내향인들한테 열렬히 사랑받고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감동을 담아낸 서평은 충분히 많기에 난 특별히 초보 작가의 입장에서 이 책을 이야기 해보고 싶다. 글 쓰는 방식에서 어떤 것이 부러웠고 닮고 싶었는지 말이다.
읽으면서 질투가 났지만, 에세이 잘 쓰는 4가지 비법을 알게되어 마음이 풀어졌음을 미리 고백한다.
술술 잘 읽히는 한 꼭지, 2.4장(A4로 1.5장)
한 손에 아담하게 들어오는 작은 사이즈의 책이다. 여자들 작은 가방에도 쏙 들어가는 사이즈
책 사이즈를 재보니
가로 13cm 세로 19cm
요즘 이 정도의 작은 사이즈 책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보니 유행인가 보다. 표지 디자인도 일러스트 디자인에 알록달록 색감이 여성들 취향 저격이다. 출판계에도 유행이 있는데 꼭 따라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아니, 따라해야 하나?) 알고는 있어야 한다.
책을 읽으며 처음 느낀 것은 책이 술술 읽힌다는 것이었다. 이는 한 개의 꼭지 분량과도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처음 시작하는 글 5개의 장수를 세어 보았다.
2.5장 2.5장 3.0장 1.5장 2.5장
= 평균 2.4장
평균 2.4장, 후루룩 읽기 쉬운 분량이어서 책을 넘기기 편했다.
이 정도 분량으로 글을 쓰면 A4 사이즈로 어느 정도분량일까? 이번엔 한글 파일에 한 꼭지 내용을 직접 입력해 본다. A4 사이즈 한글 파일 기준 1.5장 분량이 나온다.
"그래 결심했어. 하나의 주제로 글을 쓸 때 A4 기준 1.5~2장 정도 분량으로 작성해야겠어!"
군더더기 없는 문장
책이 술술 읽혔던 이유는 한 꼭지 분량도 한몫을 했지만, 무엇보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 때문이었다.
'나도 사이다 같은 사람이면 좋겠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의 첫 단락을 살펴보면
종종 무례한 사람에게 무례한 말을 들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딱히 대처랄 것 없이 어물어물 넘겼다가 나중에 꼭 후회를 하고 만다. 어릴 때부터 나 자신이 머저리 같다고 느낀 감정 뒤에는 꼭 이런 장면이 있었다.
문장의 길이가 짧게는 한 줄, 길어도 두 줄을 넘기지 않는다.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 짧은 문장, 핵심만 담고 있는 단어를 쓰고 있어 담백하면서 잘 읽히게 된다.
며칠 전 읽은 '살이 있는 글쓰기' 책(존 R. 트림블)에서도 동일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독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5가지 방법 중
'두 번째, 핵심을 찔러 독자의 시간 낭비하지 말라'의 주된 내용은 '잘 쓴 첫머리'에 대한 것이다.
'잘 쓴 첫머리'를 쓰려면 어찌 해야하는지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앞문으로 들어가라
2.자연스럽고 단순하게
3.제대로 된 길이의 문단이어야 함
4. 4~5개 단어로 된 짧은 문장이 강렬함
5. 핵심적인 주제를 단락의 맨 끝에 배치
'이렇게 쓰는건 도대체 어떻게 쓰라는 거야?'
이해가 안된다면 남인숙 작가의 이 책을 꼭 읽어보라 추천한다.
뚜렷한 주제와 그것을 담아내는 적절한 에피소드
'글의 주제가 뚜렷해야 한다.'
글쓰기 책을 읽으면 항상 공통적으로 나오는 말이다. 잘 쓴 글은 주제가 뚜렷해야 한다.
남인숙 작가의 글을 읽으면 한 챕터마다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뚜렷하게 알 수 있다.
'이 글의 주제를 써보시오.'라는 질문에, 고민 없이 쓱~ 쓸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이렇게 뚜렷한 주제를 담고 읽는 글은 읽고 나면 시원함을 느낀다. 글을 읽고 나서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지?'라고 느끼는 글은 답답하다.
글의 주제가 뚜렷하다는 특징과 더불어, 더 중요한 것은 그 주제를 담고 있는 에피소드가 너무나 기발하고 주제를 잘 담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기발하고 창의적으로 만든 그릇 안에 '짜거나, 맵거나, 시거나, 쓰거나' 맛이 뚜렷한 음식이 담겨 있는 그런느낌이다.
하나의 예를 들어 보면
Chapter4.에서
무선 청소기를 선택하듯이 (p172)
기대에 가득 차서 무선 청소기를 받자마자 전원을 켜고 바닥에 굴려본 나는 적잖이 실망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흡입력이 원래 있던 유선 청소기만 못했다. (중략)
그런데 그렇게 못마땅한 물건이 들어온 이후, 집안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먼지가 예사로 굴러다니던 바닥에서 머리카락 한 올 찾아보기 힘들어진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무선 청소기가 청소의 '시작'을 휘워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중략) 한때는 작심삼일이라도 자주 하면 된다는 말을 새겨들었는데 이제는 작심 자체를 하지 않기로 했다. 굳이 마음먹고 시작을 하지 않아도 그 과정에서 필요한 만큼 저절로 신경이 쓰일 테니 시작에 드는 힘이라도 줄이고 싶다. '어떻게든 굴러가겠지' 하는 마음으로 무선 청소기를 꺼내 드는 삶이란 얼마나 가벼운가.
'너무 미래를 내다보지 말고, 그냥 아무것도 아닌, 시작 자체를 해보자'라는 주제를 놓고, 무선 청소기를 사용해 본 에피소드에 녹여서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얼마나 기발하면서 마음에 쏙쏙 들어오는지..
사소한 하나의 에피소드가 다이아몬드가 되어 반짝이며 마음에 들어온다.
물론, 이러한 에피소드와 주제를 엮어 글을 쓰기까지 작가의 노력이 얼마나 컸을지 감히 상상할 수 없지만, 이러한 글쓰기를 너무나 따라 해 보고 싶다.
진정성, 내향인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눈
내향인이라면,
책을 읽다가 무릎을 '탁' 칠만큼 내향인의 성향을 세세히 풀어가는 문장을 마주하게 된다.
'어쩜 이렇게 내 맘이랑 똑같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래서 책을 덮으며 마지막으로 든 생각은 '맞네. 남인숙 작가님 100% 내향인 맞으시다.'
내향인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심정을 꿰뚫어 보는 글을 읽으며 그만큼 진정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인숙 작가는 있는 그대로 본인의 모습을 책에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 이렇게 진정성을 진하게 담고 있는 글을 닮고 싶다.
남인숙 작가의 '사실, 내성적인 사람입니다'
이 책은나에게 질투를 불러 일으켰지만, '에세이 쓰는 법'에 대해많은 숙제를던져 주었다.
또한 '에세이 책'의 진수를담아내고 있는 에세이 글쓰기의 정석 같은 책이라이야기하고 싶다.
좋은 참고서를 가졌다고 해서 모든 학생이 공부를 잘하는 건 아니지만, 좋은 에세이를 읽었으니 나의 필력이 조금 나아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