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한워킹맘 Sep 24. 2019

사오정 워킹맘에게 남은 커리어는 있는가?

내 커리어는 내가 알아서 할께요

며칠 전 팀장님이 광클릭을 유발하는 제목의 메일을 팀 전체에 보다.


(필독) 자매사 전출 관련 희망자 조사


‘자매사 전출’ 말 그대로 회사의 다른 계열사로 조직 이동을 희망하는 수요 조사에 대한 내용이었다. 회사 인원 조정 이야기가 오가는 요즘 팀원들의 지대한 관심을 끌게 하는 키워드다. 나 또한 18년 회사 다니면서 자매사 전출 관련 메일을 받아본 것이 통틀어 2번째이기에 내용이 궁금해서 자세히 읽어 보았다.


모집 분야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요구하는 필수 조건과 우대 사항이 기재되어 있었다. 읽고 나니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집 분야가 현재 팀 업무와 연관성이 떨어져 팀원들의 관심은 낮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1. 필수 조건
 - 직위 : 선임~책임연구원
 - 전공 : OO과, OO과 또는 이공계.
 - OO관련 업무 5년 이상 수행
2. 우대 사항
 - OOOO 실무 경험 우대
 - 외국어(영/일/중) 능력
 ...


그 날 점심쯤 팀장님과 파트리더 3명이 모여 차를 마시면서 메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내가 메일로는 전달 안 한 이야기가 있는데 말이야.”

“뭐예요? 팀장님?”

“나이 45세 넘으면 이번 전출 신청을 할 수가 없다는데. 나이 제한이 있었어.

“헉, 팀장님~. 나이 많으면 이제 신청도 못하는 거예요? 혹시 만으로 45세인가요?”

“보통 만 나이로 따지니 만 45세일 거야. 난 10월이 생일이라 아직 만 44인데 신청 가능할까?(하하)”

“여기서 신청할 수 있는 사람은 안 책임밖에 없네. 안 책임 축하해~”


‘생일이 지났네 안 지났네’ 웃으며 대화를 나누었지만 한국 나이로 45세인 나는 씁쓸함을 느꼈다.

‘이제 다른 회사에 가고 싶다는 희망조차 표시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구나.’ 아직 정년퇴직까지 10년 이상을 남겨두었는데도 말이다. 이런 상황의 40대 중반 직장인을 '45세 정년'이란 뜻으로 ‘사오정’이라 빗대어 이야기한다. 내가 사오정이 되었다는 것을 처음 느껴본 순간이었다.


45세, 회사에 죽도록 충성하며 일했고 이제야 한숨 돌릴만한 나이 아닌가? 앞으로 회사에서 남은 커리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나이이건만 이제는 퇴사라는 무언의 압박을 받게 되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여기에 돌봐야 할 자녀를 둔 엄마, 워킹맘은 탈출구를 표시하는 ‘비상구’ 표시조차 볼 수 없는 상황이 아닐까?





문득 작년 여사원의 커리어에 대해 조언해 주신 담당님 말씀이 생각난다. 예전에 팀장님으로 계셨다가 담당으로 올라가신 분인데 연말 인사를 드리러 찾아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앞으로 나의 커리어에 대해 염려하며 말씀을 해 주셨다.


“박 책임, 나이가 어떻게 되지?

“담당님, 저 나이 많아요. 내년이면 마흔다섯이에요.”

“아이고, 많이 먹었네”

 (담당님과 어느 정도 편한 사이임)

“박 책임한테는 이제 2가지 커리어가 있을 것 같은데. 연구위원으로 올라가던 가 아니면 여사원으로 입지를 다지는 쪽으로 가던가 말이지.”


음, ‘여사원 쪽으로 가는 커리어는 뭐예요?’ 더 파고들어 여쭤보고 싶었지만, 그냥 가벼운 이야기를 하고 돌아 나왔다. 업무나 성품 측면 모두 존경하는 담당님이었기 때문에 분명 나에 대해 걱정하고 계신다는 마음을 알았으니 그걸로 충분했으니 말이다. 앞으로 나는 팀장 되기도 힘들 테고 그렇다면 남은 건 (잘 되었을 때) ‘연구위원’ 이란 카드밖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여사원 커리어?’ 그건 잘 모르겠다. 여사원이라고 특별 우대해 주는 시대가 아니고, 나 또한 그런 것을 바라지 않는다.


회사는 유능하면서도 젊은 세대로 계속 교체하길 원한다. 잘 알고 있다. 이해는 되지만 막상 내가 나이 때문에 떠밀려 나가야 하는 상황이 그냥 싫다.


나는 사오정이 될 줄 알고 예상해서 글을 쓰기 시작한 걸까? 아니면 회사가 나보고 사오정이 되라고 하니 글을 쓰게 된 것일까?


바탕화면에 저장해 둔 '전출희망조사' 엑셀 파일을 드래그해 휴지통에 버 버렸다.


'이딴 건 이제 필요 없어. 내 커리는 내가 만들면 되니까' 


p.s.) 이미 사오정 그리고 곧 사오정이 되실분들에게 힘내시라 외칩니다. 화이팅~

작가의 이전글 책 한권에서 배운 에세이 잘쓰는 4가지 비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