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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exandra the Twinkling Nov 20. 2015

자유로운 시절 일기 08

드디어 벗어난다!

믿어지지 않는다.

말도 안 되는 사이비 집단의 시골 연수원에서 아빠의 소원대로 원시인 같은 생활을 한 달간 마치고 나니 진짜로 아빠는 초청장과 비행기표를 보내주셨다. 드라마에서나 있을법한 일이 나에게도 일어난다는 생각에 일단 죽을 것 같이 슬프던 마음은 까마득하게 날아가 버렸다. ㅋ 나 참.. 단순하네.


나 드디어 한국을 벗어난다. 여느 때 같으면 지금쯤 회사에서 한참 일하고 있을 시간인데... 믿어지지 않지만 이 순간을 즐기자! 하며 공항에서 자유를 만끽하며 일찍부터 와서 면세점을 어슬렁거렸다. 커피를 마시며 책 한 권을 꺼내 읽는 척 하다 깜빡 졸기도 했다.


갑자기 여기저기에서 항공사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막 뛰어다니며 소리를 친다. 무슨 일이지? 가만 들어보니,

Aleksandra 씨를 찾고 있습니다. Miss Aleksandra 씨! Miss Aleksandra 씨!

어? 난데? 왜 그러지 하며 시계를 보니 탑승 시간이 지났다.ㅋ

전데요~~ 제가 Aleksandra입니다.

라고 하자마자 남자 승무원이 내 가방을 낚아채고는

뛰세요! 40번 게이트까지 뛰세요!

떠밀려 뛰기 시작했다. 게이트마다 유니폼 입은 공항 직원들이 소리친다.

Aleksandra 씨입니까?
뛰세요!

지나가는 게이트마다 직원들은 물었고 대답을 열 번쯤 한 것 같고, 뛰세요 하는 말도 수없이 들었다.

드디어 게이트 앞까지 왔다.

한국인인지 아닌지 모르게 생긴 남자가 Aleksandra? 하며 박수를 친다.ㅡㅡㅋ

비행기 기내로 들어왔다. 기내에 항공사 유니폼을 입은 여러 명이 서 있고, 날 보더니 또 이름을 묻고는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우르르 나간다. 모두 날 찾고 있었구나. 창피하지가 않다. 웃음만 난다. 그리고는 비행기 문이 닫혔다. 왠지 안심이 된다. 이미 한국을 뜬 기분이다!


어제 밤 들떠서 짐을 싸며 한숨도 못 잤던 터라 바로 앉아서 잠을 청했다.  행복감에 웃으면서 꿈까지 꿨다.

얼마나 잤을까... 배고픔에 기내식 줄 때는 멀었을까나 하며 슬그머니 눈을 떴다.

응? 비행기가 안 움직이는 것 같은데? 밖을  내다보았다.

헐? 땅이다. 벌써 도착한 건 아닐텐데. 이게 무슨 일이지?

내 옆은 외국인이라 물어볼 수도 없다. 승무원도 안 보인다.  두리번두리번거렸다. 승객들이 모두들 아무 일도 없는 듯이 그냥 그렇게 다들 자리에 앉아서 태평하다.

그러면 그렇지. 너무 신난다 했어. 난 이대로 못 가는 거 아닌가? 왠지 불안해.

혼자 안절부절을 못하다가 물어보기로 했다. 사방이 다 외국인이다. 승무원을 불렀다.

이런. 승무원도 외국인이다. 카자흐스탄 국적기라서 승무원들이 한국인이 없다...

영어로 말을 했지만 잘 못알아듣는다 ;ㅁ ; 더듬거린다. 발음도 괴상하다. 세상에나.. 동남아 애들 영어 하는 거보다 더 끔찍하다. 남아공 사람들보다 더 못 알아듣는 발음이다.

몇 번을 pardon? sorry? 를 서로 반복하며 의사소통을 한 결론은, 비행기가 이상해서 아직 출발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 마이 갓!!! 6시 출발 비행기였는데 지금 이미 오후 8시였다. 괜히 슬프다. 왜 사람들은 모두 태연할까?

내리라고 할까 봐, 오늘 비행기 못 뜬다고 할까 봐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불안해하며 기다렸는지...

한참이 지나고 9시가 돼서야 몇 번의 방송을 하고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공중에 뜨고 나서야 엄청 불안했던 마음이 좀 안정이 됐다.

맛도 없긴 했지만, 마음도 싱숭생숭해서 기내식도 다 먹지도 못했다.

자다가 깨다가 악몽을 꾸다가...

창밖을  내다보았다. 컴컴하기만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비행기 날개에 달린 작은 날개들이 덜렁거린다. -_-ㅋ 출발할 때부터 불안하게 하더니 이 비행기 뭐지..

화장실 문도 잘 잠기지도 않고, 잠그면 열리지를 않아서 한참을 끙끙거리게 만들더니

드디어... 도착했다. 비행기가 땅을 밟는 순간, 엄청 깜짝 놀랐다. 비행기 안에 탄 사람들이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소리를 지르고 박수를 치는 게 아닌가...;;

날개를 쳐다보았다. 날개 브레이크도 서있지 않고 아래로 쳐져서 덜렁거린다;;; 이래서 사람들이 박수 치는가 보다. 기가 막힌다.

개운한 밤공기를 마시며 비행기 밖으로(??) 나왔다....;;; 걸어서 공항으로...;;

공항이... 공항이... 이거 공항 맞나;; 시골 초등학교 같이 생긴 낡은 2층 건물...

어머, 사람들 생긴 것도 동양인도 아닌 것이 서양인도 아닌 것이, 거기다가 입고 있는 옷이... 이제야 실감이 난다. 여기 아직 공산국가인가? 싶다. 다들 북한군 같아 ㅋㅋㅋ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아무려면 어때.

난 이제 날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나라에 왔는데.


공항으로 들어가자마자 한국에서 본 적 있는 아빠 회사 직원이 날 보고 환하게 웃는다. 내 마음도 웃는다. 여권을 달라고 하셨다. 입국심사도 없이 그냥 몸뚱이만 밖으로 나왔다;;

대박 신기하다; 내 짐도 북한군 옷 입은 사람이 밖으로 가져다 준다. 와.. 이건 뭐지?

공항을 나와서 주차장으로 가니 아빠가 기다리고 있다. 좀 있으니 아빠 회사 직원이 내 여권을 들고 왔다.

수고했어. 잘 왔네. 환영한다.
아빠 아빠, 비행기가 엄청 연착이 됐는데, 사람들이 다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다 그냥 앉아있더라. 디게 신기했어.

응. 이나라 비행기가 너무 오래되서 고장도 자주 나고, 연착은 매번 있는 일이야.

참,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난 지금 다른 나라에서 차를 타고 정착을 하기 위해 아빠의 집으로 가고 있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엄청 낯설다. 시골이야;;

사람들도 다 동양인이 아니다.

아는 사람도 하나도 없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왠지 설렌다.

아주 살짝 가슴이 아리다. 어쩌다 여기까지 내가 오게 된 거지?

나.. 여기서는 잘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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