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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exandra the Twinkling Feb 08. 2016

자유로운 시절 일기 11

첫사랑. 두울

나에게는 첫사랑이지만. 

그리고 아름다운 기억이지만 결국 난 친구가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한 나쁜 년이었다. ㅎ

지금 되돌아서 등 뒤에 있는 기억을 억지로 더듬더듬 끄집어 내 보면 아,,, 왜였지 싶다. 내가 아니 내 친구가 좋아해서 나도 덩달아 좋아하게 된 L이란 아이는 중딩시절 키 순서대로 번호를 정하던  그때 1번이었을 정도로 땅꼬마였고 멸치만큼 마른 친구였다. ㅋㅋㅋ 

열정이란건, 그리고 사람의 감정이란 건 속이기 쉽다는 걸 그래서 난 잘 아는 것 같다. 사람은 믿고 싶은 것만 본다, 그리고 보고 싶은 것만 믿는다. 내 친구 H의 말을 듣고, H를 따라다니고 H의 감정을 느끼다 보니 그게 내 감정 같았고 내 느낌 같았다. 그리고 그 친구보다 더 열을 내서 L이란 꼬마 남자아이를 좋아하게 되었다. 두둥~

그때 우리 반 담임은 체육 선생님 답게 우리들에게 공부보다는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려고 굉장히 노력 많이 하신 분이셨다. 교실에서 함께 앉는 짝을 정하는 것도 몰래 쪽지에 좋아하는 사람을 써서 내라고 하셨다. 우린 그렇게 쪽지를 써서 냈었고, 같이 짝이 되기 위해선 1순위가 서로 좋아한다고 쪽지를 쓴 경우, 2순위가 여자 쪽이 좋아한다고 쓴 경우, 3순위가 남자, 그리고 나머지들은 남자끼리, 여자끼리 앉혀 주셨다. ㅋㅋㅋㅋ 굴욕의 남/남 여/여 커플들도 있었던 것이다. 2주였는지 3주간 이었는지 돌아가면서 짝을 바꾸는 규칙을 만드셨는데, 어쨌거나 난 L과 짝이 되었다. 그것이 우리 둘 다 좋다고 써서 된 건지 내가 좋다고 해서 된 건진 그 순간엔 당연히 알 수가 없었다. 여전히 이해가 안 가는 건 우린 짝이면서 서로 말을 전혀 안했다.ㅋㅋㅋㅋㅋㅋㅋㅋ 부끄러웠겠지..;; 지금의 나였으면 이때다 싶어서 온갖 끼를 부렸겠지만, 나름 완전 순진한 숙맥이었기 때문에, 손이 떨려서 전화도 못했고 내 짝이었던 그의 얼굴도 한번을 제대로 못 쳐다봤다.ㅋ

그런데!!! 그렇게 여름방학이 왔고, 난 편지를 한 통 받았다.  L에게서!!! 그것도 우표가  없는!!!! 미친듯이 가슴이 뛰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친구도 모르게 아무도 모르게 짝사랑을 키워가던 남자에게서 우표 없는 고백을 담은 편지를 받았을 때의 그 기분은. 괜히 우리 아파트 앞에 나와서 청소는 잘 되어 있는지, 우편함이 더럽지는 않은지 한번 더 쳐다보았던거 같다. 그때의 그 편지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뭐. 친구따라 강남 가고 남들 다 하니까 해야만 한다고 생각해서 소위, 친구가 짝사랑하는 것을 모방한 행위였지만...ㅎ 그래도 공식적으로는 먼저 고백을 받은거다!! 그렇다고 자랑을 할 수도 없었다. 뻔히 친구가 좋아하는걸 알면서.. 그래도 답장은 썼다.ㅋ 몇 날 며칠을 고민해서 답장을 썼고, 그 후로도 우린 몇 번 편지를 왔다 갔다 했다. 하도 읽고 또 읽어서 그의 필체는 아직도 기억이 난다. 아마 변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알아볼 수 있을듯 하다.ㅎ 

나와 같은반에 있는 L의 친구들은 L을 놀리느라고 일부러 크게 우리 사이에 대해서 떠들곤 했다. L이 친구들에게 날 좋아하고 있다고 말을 했다는 걸 눈치챘고.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얼마나 흐뭇했는지.ㅋ 우린 공공연한 사이가 된 것이나 다름없었고 남들은 우리가 하도 유명한 커플이 되어버려서 어디 숨어서 데이트라도 하는 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선생님께서 짝을 하고 싶은 사람 써내는 쪽지에 우리 둘 다 서로의 이름을 써서 짝이 된 거라고 쓸데없는 발표까지 하셔서...


수십 년 지난 지금까지  후회되는 사건이 있었다.

방학이 다가올 즈음 반 친구들이

이 새끼 용돈도 열라 많이 받으면서 맨날 돈 없다고 뻥쳐. 아마 XXX 생일 선물 산다고 돈 모으는 것 같아, 재수없는 새끼 의리도 없는 놈. 대체 얼마나 비싼걸 사주려고 그러는 거야

이런 소리들이 자주 들려왔다. 내심 기대도 했고, 한편으론 아닐 거란 생각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린 학교에서도 말을 안 하고, 전화도 안 하고, 밖에서 따로 만나지도 않는다; 전혀 그 어떤 의사소통도 하지 않았다. 그만큼 난 숙맥에 연애의 연자도 모르고 심지어 이 모든 게  친구 따라 강남 갔다가 얼떨결에 벌어진 빌려 입은 남의 옷 같은 상황이었다. 얼마전까지 남자들과 캔축구를 하고 책상 위를 뛰어다니면서 잡기놀이를 하던 내가 남자를 좋아하는 상태라니.. 진짜 이건 내가 아니었다. 여전히 지금 동창회를 나가면 당시의 내 모습을 남자 아이들과 함께 책상위를 뛰어다니던 천방지축으로 기억하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내 생일은 8월이라 항상 방학중이어서 조금 소극적이었던 난 매번 생일파티를 제대로 하지 못했었는데, 방학중 어느 날 L에게서 전화가 왔다. 남자에게서 걸려온 첫 전화라 엄한 엄마도 신경이 예민해져서 내 근처를 왔다 갔다 하고 있고, 목소리까지 떨려서 대답도 제대로 못했지만 그래도 꼴에 여자라고 도도한 척은 하고 싶었는가 보다. 얼마나 튕겼던지.


방학인데 뭐하고 지내? 오래 못 본 것 같아서 보고 싶다. 학교에선 그래도 매일 볼 수 있었는데. 16일에 특별한 일 없으면 나올 수 있어?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엄청 기대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전화가 와서 만나자고 그러는 거다. L과 제일 친하게 지내는 반 친구 녀석한테 생일 선물이 뭐냐고 조용히 아무리 캐물어도 절대 안 가르쳐주더라. 직접 보라고. 근데 나도 정말 미친 X이지.. 너무 긴장돼서 마음하고 말이 다르게 튀어나가는 현상이...ㄷㄷㄷ 그렇게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전화였으면서 난 마음과 다르게 쌀쌀맞게 굴고 찬바람 쌩쌩 불도록 정나미 떨어지는 목소리로 통화를 했고 급기야는 생일에 나오라는 그의 말에 엄마가 못 나가게 해서 안된다고 거절을 해버렸다. 물론 엄마가 옆에 있다가 무시무시한 저음으로 걔 만나러 나가는 건 절대로  안돼!라고 참견을 한 것도 사실이다. 아마 L도 전화기 너머로 들었을 것이다. 결론은. 난 수십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모른다. 그가 나에게 생일 선물로 산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긴장되면 마음과 다르게 말을 하는 사람들을 아주 잘 이해한다.ㅎ

L은 나의 거절에 엄청나게 자존심이 상했는지 우린 한동안 편지도, 전화도, 물론 그렇다고 말을 할 수도 없는 그런 상태가  오래갔다. 방학이 끝났고, 우리가 짝이었던 기간도 끝났다. 나도 본의 아니게 상처를 준 것도 미안하고 염치도 없는 것 같아 더 이상 같이 앉고 싶은 짝을 써내는 쪽지에 그를 쓰지도 않았고, 아무도 쓰지 않았고, 난 다른, 나와 앉고 싶어 하는 남자아이의 짝이 되었다. 역시 L도 나를 쓰지 않은 것이었다. 그도 아마 자존심이 상했고, 내가 자기를 싫어해서 나오지 않았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서 아마 쓰지 않았을 것이리라.

반 친구들 역시 더 이상 우리 사이를 갖고 큰소리로 놀리는 일은 없었다. 반의 모든 친구들이  눈치챘다. 하지만 L은 선물을 못 줬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는지 간혹 몇몇이 도대체 뭘 받은 거냐며 묻기도 했다.

그렇게 2학기가 되어서는 많은 남자아이들이 L의 관심을 받았던 나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땐 그랬다. 나처럼 그들도 친구의 관심을 따라다니다가 자신도 친구가 좋아하는 같은 사람을 좋아한다는 착각을 하게 되는 것. 그런 것이 비일비재했고, 선생님은 나와 짝하고 싶다고 써낸 남자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겠다고 발표하셨다. 매번 그 어떤 여자들도 짝이 되고 싶다고 쓰지 않고, 그렇다고 본인도 딱히 여자의 이름을 써내지 않던, 그래서 1학기 내내 남자 짝을 해야만 했던 오동통하고 귀여운 꼬마와 남은 기간 내내 난 짝이 되었다. 역시 선생님은 천재였다. ㅎㅎ

그렇다고 이렇게 L과의 관계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허무하게 끝난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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