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lexandra the Twinkling Apr 29. 2016

자유로운 시절 일기 13

파리의 연인

파리의 에펠탑은 파리의 시민들에겐 두번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흉물스러운 건축물에 속한다고 한다. 그래도 이미 파리의 상징인걸. 따로 보면 뜬금없고 기괴한 철골물이지만 묘하게 파리의 분위기에 어울린다고 할 만큼 이젠 그것을 빼고는 파리를 떠올릴 수 없다. 둘다 양면적이니까.  

영국에 살던 시절, 크리스마스를 영국에서 우중충하게 보낼 순 없다고 결정을 내리고 친구들과 유럽 투어를 떠났다. 괜히 해저터널을 지난다는 설레임에 유로스타를 타고 벨기에로 가면서 계속 이어지는 컴컴한 바깥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ㅎㅎ 사실 그 당시 프랑스와 영국이 사이가 안 좋아서 인기가 시들해진 유로스타가 재정적 위기 극복을 위해 엄청 싼 편도 티켓 프로모션을 내놓아서  이용을 하기도 했지만.ㅋ 덕분에 벨기에도 잠시 구경을 하고 프랑스로 갔다가, 바로 열차편으로 독일로 넘어갔다. 뜬금없이 친구가 코치(COACH) 투어를 예약했는데... 출발지가 독일이었다는 ...ㅋㅋㅋ 덕분에 일행과 만나기 전까지 독일 구경도 실컷했다. 독일에 가는 길에 열차에서는 우리가 쿠셋을 예약하지 않았는데 운 좋게도 술에 쩔은 어떤 아저씨가 들어오라고 해서..ㅋㅋㅋ 같은 칸에서 술냄새에 취해서 주절주절 수다를 떨었는데. 그 어린 시절 아저씨가 아량을 베풀어준다는 듯이 우리 일행들 손등에 일일이 덜어준 거무튀튀한 가루를 코로 들이마시라고 시범을 보이는 것을 보며

'아,,, 이거 왠지 티브이에서 본것 같아, 좋지 않은 것 같아.'

라고 생각은 하면서 호기심에 들이마셔보기도 했고, 그 당시에 유럽을 돌아다니는 동양인이 지금처럼 많지는 않았기 때문에 온갖 관심 보이는 사람들과 이리 저리 말상대를 하다보니 오래 걸렸는지도 모르겠고 피곤한지도 모른채 독일에 도착을 했다. 일행들과 합류해서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이태리-바티칸(순서는 까먹었지만..ㅋㅋㅋ)을 돌고 우린 우리끼리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TGV를 타고 프랑스로 돌아왔고, 드디어 새해를 프랑스에서 맞게 되었다. 하염없이 에펠탑도 쳐다보고 사진도 찍고, 몽마르뜨, 개선문, 샹제리제를 마구 쏘다니며 행복해 했다. 아주많이 들뜬 맘으로 술을 마시던 우리는 31일 밤 적당히 취한 상태로 모두모두 개선문 앞으로 뛰어 나와서는 카운트 다운을 외치고 이리 쓸리고 저리 쓸리고 광년이 상태로 ㅋㅋㅋ 너무 즐거워서 붕붕 기분이 떠서는 폴짝 폴짝 뛰면서 'TEN!', 'NINE!', 'EIGHT!',........ 'TWO!', 'ONE!'을 외쳤다. 그 순간 폭죽과 불꽃놀이가 터지고 밤인게 무색할 정도로 하늘이 환해지면서 광장의 모든 사람들은 남녀 할 것 없이 입을 맞추고 포옹을 했다. 컴컴했으면 아마 아무렇지도 않았을것을... 불꽃이 사방에 터지는 그땐 그냥 모든게 다 보여져서 마치 벌거숭이가 된 기분이었다. 광경 사이에서 잠시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며 난 아무도 없단 사실에 주변을 두리번대며 민망하고 뻘쭘해 하려는 찰나, 내 몸이 붕 뜬다 싶더니 짧은 입맞춤과 이어지는 심플 단백한 키스. 그러고는 하늘로 들려올라가서 누군가의 위에 목마를 타고 올라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찰나였지만 놀이기구를 탄 느낌이었다. 누구 위에 올라 가 있는지도 모른 채 ㅋㅋㅋㅋㅋ 그 위에서 소리를 지르고 웃고 'HAPPY NEW YEAR!'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Bonne Année!' 를 외치면서 환호성을 질러댔다. 왠지 모르는 사람들과 서슴없이 입을 맞추고 허그를 하는 내 일행들 영국인, 한국인 친구들처럼 나도 소외당하지 않고 그 모든 단체 키스에 참여했단 뿌듯함과 사람들 머리 위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단 사실에만 마냥 신나서 그 순간은 누구인지 궁금하지도 않았다.ㅋㅋㅋㅋ

와... 힘들지도 않나, 뭐 물론 그 당시 아주 어릴적 난 43KG 의 작은 아이(??)였으니까 라고 해도 43키로는 결코 사람에게 가벼운 무게가 아닌데.. 그렇게 한참을 목마를 탄 채로 쏘다녔다.ㅋ 어릴때라 무슨 생각인지도 모르겠고 그저 마냥 즐겁기만 했다. 한참을 그렇게 다니다가 내려왔다. 아,,, 나에게 입을 맞추고 자기 목 위에 날 태우고 다닌 이 사람은 처음 벨기에에서 프랑스로 넘어왔을 때 샹제리제의 노천까페에서 영어도 잘 안통해서 메뉴 고르느라 낑낑대던 우리일행을 도와줬던 프랑스 남자였다. 가스파르 울리엘, 제레미 뒤푸르 같은 남자였으면 한눈에 폭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했을텐데..ㅋㅋㅋ 난 전생에 나라를 구하진 않았는가보다.

하지만, HAUTE COUTURE 에서 막 빠져나온 듯 한 고급스럽고 늘씬한 체격에 꿈꾸는 듯한 옅은 갈색 눈과 곱슬곱슬한 브루넷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까페에서 처음 만나고 너무 튀는 동양인이라 기억에도 강하게 남았는데, 우연히도 오늘 역시나 멀리서도 튀는 날 보고 운명이라 생각했고, 정신없이 사람들 틈을 헤집고 왔다고 하더라.ㅋㅋㅋ 역시 프랑스 남자는 로망이다! 동이 틀때까지 거리를 뛰어다니고 분수대에서 동전을 던지거나 물장난도 치고, 어디가 어딘지도 모른 채 따라다니면서 큰소리로 웃고 소리지르고 떠들었다. 목이 쉬었다.ㅋㅋㅋㅋㅋㅋ 다리도, 발바닥도 너무 아팠다. 목마를 타고 긴장을 해서 그런지 허벅지도 뻐근했다. 둘다 말수가 적어졌다. 힘드니까.ㅋㅋㅋ

한참을 걸어서 어딘지도 모르겠지만 중심가가 아니라는 건 한눈에 알 수 있는 한적한 곳이었고, 아직 문 열지 않은 노천까페의 테이블에 앉아서 마주보고 소곤소곤 속삭이듯 서로 눈을 빤히 쳐다보며 얘기했다. 입이 귀에 걸려 다물어지지 않았다. 아마 마약으로 인한 황홀한 환각상태가 바로 이런 상태이지 않을까 상상했다. 자연스럽게 마주보고 얘기하다가 입을 맞추고, 웃고, 또 얘기하다가 스윽 다가와서 입을 맞추고 웃고...

이대로 시간이 멈춰주면 좋겠다...

날이 밝아오는데 잠을 못자서 어지럽고 술이 깨면서 배도 고파지고, 머리도 아파오고...

오늘은, 조금 있으면, 영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유로스타가 예약이 되어 있다.

남자는 그런 것도 모른 채, 냅킨에다가 자기 전화번호를 적어 주었고, 돌아가서 푹 자라고 늦은 점심을 같이 먹자고, 파리에서 제일 맛있는 갈레뜨와 시드르도 먹자고, 꼭 먹어야 한다고, 저녁엔 극장을 가자며 들뜬 소리로 함박 웃음을 지으며 이따가 호텔로 데리러 오겠다고 하고 날 데려다 주었다. 난 말할 타이밍을 잡지 못해 초조하고 안타까운데... 그렇게 신나서 행복한 얼굴로 작별인사를 하고 뛰어가는 뒷모습을 보는데... 약간 가슴이 저렸다. 말할 타이밍을 놓친걸 어떡해...

트렁크들을 주섬주섬 끌며 일행들과 호텔을 나서는데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고... 혹시나 하며 또 돌아보고... ㅎㅎ 지금쯤 집에서 곯아 떨어졌을걸 뻔히 알면서도...

친구들은 내가 어딜 다녀왔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우린 영국으로 돌아왔다. 12월 31일에 술에 취해서 꾼 달콤하지만 에펠탑같은 꿈이었던 거야...

 


매거진의 이전글 자유로운 시절 일기 1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