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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exandra the Twinkling Jul 01. 2016

자유로운 시절 일기 14

파티 I

CHRISTMAS PARTY I


성인이 되면 누구나 부모님의 간섭 없는 광란의 파티를 꿈꾸게 되지.


난 드디어 그 기회를 스무 살이 되던 해에 맞게 되었다. 부모님이 안 계시는 영국에서ㅋㅋ


여름이 지나갈 무렵 영국에서 새로 사귄 한국 친구 T가 있었다. T는 한국에서 일찍 유학을 와서 한국말보다 영어를 더 잘했고, 영국인들보다 말을 더 빨리 하는 천재였다. 나와 동갑인 스물에 이미 고등학교와 대학을 조기 졸업하고 영국 내 10위권인 최상위권 Bristol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다니고 있는 공대생이었다. 

T가 런던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동생을 돌봐주러 잠시 왔다가 나와 만나게 되었다. T의 동생은 예전에 피투성이 사건이 났을 때 날 도와주러 남쪽에서 올라왔던 두 남자 중 한 남자를 미친 듯이 쫓아다니고 있는 기집애여서 상당히 자주 만났고, 상당히 친해졌고, 상당한 문제아였다.ㅋ  난 그때 촌티가 줄줄 흐르는 서울 촌놈이었고 T는 거의 유럽인이었지만 우린 거의 첫눈에 잘 맞는 사이란 걸 느꼈다. 난 친동생도 초대받지 못한 T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받았다. 두둥~

Bristol로 떠나기 전에 몇 날 며칠을 쇼핑을 하러 다녔다. 깃털 달린 모자, 빨간 타조털, 검은색 이브닝드레스, 하얀색 미니 드레스, 반짝이는 은색 카디건, 깃털이 치렁치렁한 숄, 가죽 베스트 등등... 

파티라곤 영국에서 내가 다니던 국제어학원에서 종강하던 날 각 나라에서 모인 외국인 학생들과, 보호자 자격으로 참석한 울 오빠와 오빠 친구들이 지켜보고 있어서 춤추는 것도 쪽팔렸었던 조촐하고 유치한 핼러윈 파티가 다였었고, 그 이후 처음 가보는 진짜 큰 대학생들의 파티! 

T는 몇 날 며칠 동안 열릴 거니까 옷을 몇 벌 준비해 오라고 했다. 모자라면 자기하고 바꿔 입으면 된다고 너무 걱정은 말라며.

참고로, T는 굉장히 괴짜였다. 그리고 굉장히 세게 생겼고, 굉장히 글래머였고, 굉장히 옷은 야하게 입고 다니면서 머릿속은 굉장히 보수적이었다.ㅋ 보통 학생들은 기숙사를 이용하거나 하숙, 내지는 원룸에서 생활을 하는데 T는 3층 건물을 통째로 빌려서 살면서 학교 내에 구인 광고를 해서 학생들에게서 세를 받아서 건물 임대료를 내고 있었다. 덕분에 T네 집에 놀러 가면 Bristol대학에서 공부하는 법대생, 상대생, 의대생, 문과생, 약대생 등(나머진 기억이...ㅋ) 모두 다른 학부의 7명을 만날 수가 있었다. 부엌을 공유했기 때문에 저녁이 대면 옹기종기 부엌으로 모여들었고, 다들 출신 지역이 달라서 냉장고에서 각자의 음식들을 꺼내놓고 수다를 떨고, 술을 마시거나 차를 마시거나, 요리를 하거나.. 정말 당시의 나에겐 꿈만 같은 솔로 생활을 멋지게 하고 있었다.


드디어 파티 날이 다가왔고... 우린 아니, 나는, 아니 나만 ㅋㅋ 가슴을 두근대며 아이들이 오기로 한 시간을? 아니면 내 생애 첫 진짜 레알 싱글 파티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이건 뭐 ㅋㅋㅋ 7명이 각자 초대한 서로 다른 학부의 아이들이 모여들어서 정말 3층 건물이 비좁을 정도로 꾸역꾸역 끝도 없이 밀려들어왔다. 

금기사항은, 음식물 반입금지, 섭취도 금지였다. ㅋㅋ 오바이트 하면 안된다고. 오로지 술술술, 그리고 음료수와 칵테일, 물만 마실 수 있었다. 

집의 구조를 대충 그려보면 메인 도어를 열고 들어오면 바로 커다란 홀이 있고 2층, 3층으로 통하는 계단이 둥글게 돌아가며 올라가고 1층엔 엄청 큰 거실과 화장실, 작은방 하나, 계단이 있는 홀, 2층에 부엌과 방 4개, 3층에 방 4개와 창고가 있었다. 바닥도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 문들도 모두 원목 느낌 나는 나무문과 틀, 창문도 모두 옛날식 나무 창틀과 창문, 그리고 계단도 모두 나무였다. 


세 개층 건물이 어마어마한 스피커에서 뿜어대는 음악소리로 귀가 먹먹하였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1층에서 뜨거운 물에 들어간 생선처럼 펄떡펄떡 뛰며 춤을 춰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 최고의 히트송이 마카레나와 Ace of Base 이런 완전 댄스곡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마룻바닥이 삐걱대고 쿵쿵대는 소리도 엄청 컸다. ㅋ 시간이 새벽으로 넘어갈수록 사람이 더 밀려들기 시작했다. 다른데서 놀다가 소문 듣고 온 친구들, 기숙사 친구들, 그리고 파티만 몇탕 뛰고 온 친구들까지.. 그걸 어떻게 헤아린 건진 도통 모르겠지만 나중에 파티가 끝나고 모여서 얘기할 때 들어보니 대략 170명 정도 왔었다고 하더라. ㅋㅋㅋ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한 나이에 술을 내가 잘 마실 리도 없고, 그전에 마셔본 적도 없어 내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불투명한 시트지를 통해 보는 세상 내지는 스테인드 글라스 사이로 본 선명하지 못한 모습으로 남아있었다.ㅋㅋㅋ 아이들 사이에서 같이 뛰고 춤추고 소리 지르고 웃고 떠들고... 그리고는 타조털과 이브닝드레스를 산걸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ㅋㅋㅋ 드레스는 대학 축제 파티 때 입는 거였는데 나 혼자 헷갈리고... 다행히도 그날은 미니드레스에 은색 카디건을 걸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드레스 입고 있었더라면 ㅋㅋㅋ 끔찍해서 생각도 하기 싫다.

누구랑 얘기했는지, 누구를 만났었는지, 누구랑 뭘 했는지 조차도 가물가물해질 무렵 창밖이 반짝반짝거렸다. 경찰이 왔다.ㅋㅋㅋㅋㅋㅋ 우리가 시끄러워서 온건 줄 알고 파티가 끝날 줄 알았다. 궁금해서 마당으로 주섬주섬.. 아니, 흐느적 흐느적이 맞겠구나. 걸어나갔다.

경찰도 이 건물에서 자주 파티를 하는 건지 파티하는 걸로 뭐라고 하는 게 아니었다. 진짜 순간 술이 깰 정도로 난 웃다가 넘어졌다. 

우리 괴짜 T가 언제 나갔었는지, 삼삼오오 친구들과 만땅 취해서 동네방네 시끄럽게 떠들면서 버스정류장에 서있는 Bus Stop 간판 아닌 기둥을 뽑아서 둘러메고 오고 있었다. 이미 정원에는 Coach Stop 간판도 나동그라져있었다. 아 진짜 내 생애 최고로 즐거운 날이었다.ㅋ 더 웃겼던 건 경찰이 전혀 표정이 없는 얼굴로, T가 또 술 취했냐고, 또 뽑아갔다면서 자포자기한 투로 내일 가지러 오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그냥 되돌아 갔다. 헐ㅋㅋㅋ 그리고 사실 딱히 그 후의 기억은 없다. 아니 거기까지도 참 애써서 기억해 낸 것이다.ㅋ 엄청 시끄러웠고, 엄청 더웠고, 엄청 힘들었고, 엄청 웃었고, 다음날 배도 당기고 다리에 알도 배기고 턱관절도 아프고 팔뚝도 아프고...ㅋㅋㅋ

날이 밝아서야 파티는 끝이 났고, 난 오후 4시쯤 정신이 든 것 같다. 다른 아이들도 대략 그 정도 즈음. 퉁퉁 붓고 온몸이 아파서 다들 흐느적대면서 부엌으로 와서 홍차를 마시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아이들 중 한 명이 내려갔고, 엄청 화가 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마어마하게 알아듣기 힘든 사투리로 쏘아붙이는데 우리 모두 눈이 커다래져서는 다 내려가 보았다. 이 건물 지하에 세 들어 살고 있는 중국인 부부라고 한다. 알아듣기 쉽지 않았지만..ㅋ 자기 집 천정이 내려앉았다면서 ㅋㅋㅋㅋ 아이들 중 한 명이 계단 옆에 깔린 카펫을 걷어내니 정말 나무가 꺼져있었다.ㅋㅋㅋㅋ다들 당황하고 황당해서 정신이 확 든 것 같다. 사과를 하고 고쳐준다고 약속을 하고, 그 중국인 부부는 건물 나간다고 ㅎㅎㅎ

지친 몸을 이끌고 청소를 하다가 우린 또 한번 빵 터졌다. 아, 나만 빵 터졌다; 아이들이 1층에 널브러져 다 같이 잤기 때문에 몰랐던 사실인데 용의주도하게 방문을 잠가 둔 T의 침대 말고는 모든 방의 침대에 스프링이 나가있었다.ㅋㅋㅋㅋ 너무 다들 광란의 밤을 보냈는가 보다. 아... 빵 터졌다가 눈총만 받고 ㅋㅋ

청소할 것도, 정리할 것도, 버려야 할 것도, 바꿔야 할 것도, 숙취도, 후유증도 어마어마했지만 지금까지 내 생애 최고의 파티였던 것 같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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