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생각할 때.
오늘은 좀 불편한 주제.
읽고 싫어하는 사람들이 꽤 있을지도 모를 주제.
하지만 사실인걸. 원래 팩트가 폭격인것이야.
사건이 있었어. 이제는 먹는 양도 제법 늘고 물도 잘 마셔서 건사료를 그냥 오독오독 씹어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화장실에 재우러 들여보내고 나서 건사료를 넣어주고 물을 정말 그릇의 한켠에 몇 방울 떨어뜨린단 기분으로(땅콩이 워낙에 씹는 걸 싫어해서;;) 살짝만 적셔주고 재웠어. 아마 귀차니즘도 한몫 했을 것이야. 왜 갑자기 그랬겠어... 새벽에 중간점검(??)하러 화장실 문을 여는 순간 지독스러운 냄새가 확 내 코를 덮쳐서;; 아, 잘 맞춰서 들어왔는가 보다 하고 아가들 화장실 치우려고 문 뒤를 보니........................... 아주 그냥 화장실 벽에도 똥칠 화장실 주변 바닥에도 똥칠, 화장실 속은 온통 감자옹심이들이 산재해 있더라고.. 확 기분이 상해서 날 밝자마자 H양에게 물었지. 사료 어디꺼냐고.
대충 생긴 게 X얄캔X 키튼으로 보여서
"X얄캔X 키튼 아니에요?"
하고 물었더니, H양도 모른데. H양도 아깽이를 키우지 않기 때문에, 집에도 성묘용 사료밖에 없어서 자묘용을 사려고 하던 차에 순이를 구조한 스토리를 아시는 동네분이 오며 가며 보시고는 필요하지 않냐며 사다주신 사료였데. 꼭 좀 물어봐달라고 부탁했지. 오후에 대답이 왔는데, X즈칸이라고, H양은 그게 뭔지도 모른다면서 처음 들어보는 사료 이름이라고 하더라고. 당연하지. 국산 사료니까. -_ -;
난 X얄캔X 키튼이라고 했으면 아, 좀 기름진 사료라서 애들이 이런 기름진 거에 적응을 못하는가 보다 했을 건데... 하아... X즈칸이라니. 멀쩡한 애들도 장기 급여하면 장이 망가진다는 바로 그... 오죽하면 변비 걸린 냥이에게 먹이라고 할 정도인 바로 그... 물똥을 부르는 사료였어. 국산 사료를 무조건 나쁘다고 하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사람 음식에다가도 장난치고, 안들키려고 겉에다가 말장난하는 게 한국 기업인데, 대량생산으로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사료계의 대기업에서, 거기다가 딱히 법령도 없어서 장난치거나 좋지 않은 거 넣었어도 규제할 방법도 없는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사료라서 절대 불신하는데, 그 넣었다는 좋다는 성분도 절대 신뢰할 수 없거든. 얼마 전에 한번 터졌잖아. 국내산 유명한 사료, 모 연예인도 먹인다며 엄청 홍보하며 무료 프로모션 해대던 그 사료 먹고 아가들 죽었다며. 해외의 유명한 사료들은 최소한 20년간 꾸준히 국민 사료로 인정받고 후기도 신랄하고 성분에 관한 규정도 엄청나게 엄격하지. 지금은 국내산 사료를 먹일 시기가 절대로 아니야. 아니, 진짜 겉봉에 쓰여있는 성분 중에서도 내가 봐도 이걸 왜 넣었지? 하는 게 있다면 말 다한 거 아닌가? 묘주인 H양에게 주문을 부탁하려다가 어차피 H양도 아깽이 사료도 잘 모르고 집에 있는 냥이들도 X얄캔X 먹는다고 해서 내가 주문하겠다고 했지.
급하게 인터넷을 뒤져서 독일산 유기농 현미를 쓴 사료를 샀어. 웬만하면 무난하게 맛동맛동을 생산하던 똥똥이까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포직 포직 싸는데 정말 너무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고, 당장 다시 유산균과 비타민 B군과 비타민C를 불린 사료에 섞어줬어. 하지만 너무 많이 넣으면 애기들이 당연히 안 먹기 때문에 찔끔찔끔 섞다가 영 차도가 보이질 않아서 습식사료(캔)에 좀 많이 섞어줬는데... ㅠㅠ;; 그걸 먹고나더니 더 심해진 거야. 아주 줄줄줄 츄르르... ㅠㅠ; 저렴이도 아니고 꽤 인지도 있고 꽤 유명한 습식사료였는데... 아니 왜 유명한 사료들이 다 문제를 일으키는 거니... 어쩔 수 없이, 나몰라라 하고 그저 H양이 챙겨주는 사료 먹이며 대충 맡아주다가 보내려는 안일한 생각을 들킨 것 같아서... 아마존 사이트를 뒤지고 해외 사이트들을 돌아다니며 사료 공부를 시작했어. 아이들이 엄마에게로 되돌아 간 후에라도, 아니면 혹시 입양된 후에라도 이 아가들을 데려갈 분에게 이 사료는 좋지 않고 저 사료는 설사하고... 하면서 설명을 해줘야 할 거 아니겠어? 이젠 좀 생각하며 먹여야 할 것 같아.
해외 사이트에서 장이 민감하고 파보바이러스의 후유증이 있는 고양이들의 케이스를 살펴보며, 사료 후기들을 읽어보며, 처음 알게 된 게 사료 등급이더라고. 어쩌면 난 아직까지 몰랐을까? 사료에는 휴먼 그레이드 등급도 있더라고ㄷㄷㄷ 홀리스틱이라고 부른데. 그걸 알고 나니, 급하게 산 사료도 갑자기 먹이기 싫어지는 거야 ㅋㅋㅋ 사람의 마음이란 참.
듣도 보도 못한 X리젠이라는 사료를 다시 주문했어. 고단백질에 탄수화물이 적다고 쓰여있고, 가격도 엄청 비싸고 어릴 적부터 고양이를 키웠음에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료였어. 해외의 후기들을 보며 골랐어. 심지어 해외에선 생산지가 캐나다에서 켄터키로 바뀌었으면서 소비자에게 말도 안 해서 구매 안 할 거다, 켄터키 꺼는 우리 애가 너무 급하게 먹고 토한다, 소용량은 지퍼백에 들어있으면서 대용량은 새 공장에서 패키징 에러 때문에 지퍼백에 만들지를 않는다, 등 굉장히 크리티컬하고 디테일했어. 물론 과반수가 높은 점수를 주었고 이유들도 다 있었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켄터키에서 생산하는 X리젠은 이제 살 생각이 없으니 X리젠은 작별이라고 하면서, 사료 성분까지 다 비교해봤다고 하더라고. 본사에도 항의했다고... 당연히 민감한 아가들을 데리고 사는 사람에겐 그런 작은 성분 차이도 아이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까. 꽤 많은 사람들이 X리젠에서 뒤돌아 섰더라고. 말장난 홍보와 무료 프로모션 만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모을 수는 없는 그런 나라에서 높은 별점과 20년간 리콜 없이, 소송 없이 유통되는 사료를 사야 옳은 거 아니겠어? 이젠 진짜 생각 좀 하자. 사료를 불리고 좋은 유산균을 타 주는 것도 좋지만, 사람도 밥을, 영양분을 제대로 섭취하고 나서 건강보조식품이 있듯이, 아가들도 좋은 건사료를 먹어야 하니까.
자, X리젠을 먹였더니 어떻게 변했을까? 이전에 X즈칸 먹을 땐 단 한 번도 맛동산이 뭔지 몰라요 상태였던 땅콩군이 맛동산을 생산하셨다는 거지. 진짜 신기하지 않아? 그전엔 그냥 땅콩은 장이 별로 좋지 않아서 유산균을 들이부어도 항상 질척질척했었는데? 또르르 굴러가는 변이라니... 감격의 눈물을 흘릴 뻔했지 뭐야? 홀리스틱이라는 등급은 그냥 아무 데나 붙이는 게 아니야. 국내에서는 자기들 맘대로 만들어놓고 홀리스틱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있는데 정말 그 홀리스틱이라는 이름에 책임질 수 있을까?
난 몰랐어. 땅콩과 똥똥이가 그냥 장이 너무 안 좋기 때문에 건사료만 먹을 수 없는 게 당연한 거라고 믿어왔었어. 유산균을 끊으면 화장실에서 질척질척대며 살 수밖에 없을 거라고 믿고 있었어. 그런데 사료하나 바꾸고 나니까 건사료만 먹어도 멀쩡하더라고?!?! 또 캔 사료를 먹으면 무조건 설사하는 거라고 믿었어. 근데 홀리스틱 등급의 그레인 프리(곡물 무첨가) 캔 사료는 먹으니까 설사 안 하더라고??? 물론 땅콩군이야 장트라볼타군이라서 질척거리지만. 똥똥이는 홀리스틱급이면 그 무엇을 먹어도 멀쩡하더란 말이지.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 어디에서든 흔히 구할 수 있는 꽤 유명하신 해외 사료들의 대부분이 해외에선 평도 안 좋고 질도 안 좋은 사료라는 건 어쩔 건데? 해외에서 평이 안 좋으니 우리나라 와서 엄청나게 홍보하고 최고급 사료인양 비싸게 팔고 있는 그 행태는 참 헛웃음이 나오더라고. 여전히 우리나라는 홀리스틱 등급의 사료에 대한 홍보가 거의 안되어 있고 홀리스틱 사료를 아는 사람들이 소수에 불구하니까, 그리고 그 홀리스틱 사료를 만드는 회사들은 대부분 해외에서도 가족기업을 경영하고 경영철학이 확실한 사람들이라서 최고의 사료를 만드는데 전념하지 홍보에 전념은 안 하는가 보더라고. 엄청나게 안 알려져 있어. 어느정도냐하면, 어느 고양이 관련 카페에서 아가가 X즈칸 먹고 설사한다고 사료 추천 좀 해달라고 해서 홀리스틱 급 두 가지 정도를 추천해드렸더니,
그건 뭔가요, 사료 이름인가요, 회사 이름인가요, 당최 들어본 적이 없는데 멀쩡한 사료 맞는가요? 하더라고. 더 기가 막힌 건 홀리스틱 등급의 최고 평점을 받고 있는 사료인데 국내에서는 너무 싸서 그 질 나쁜 사료들보다도 더 싸서 어떤 사람들은 그저 싸구려 사료인 줄 알고 길냥이들 먹이는데 쓰고 있을 정도였어. 가격차이가 X얄캔X의 반도 안 되는 것도 있었지. 정말 우리나라는 말장난 홍보와 무료 프로모션으로 거저먹으며 장사하기 쉬운 나라였지 뭐야? 저급 사료회사들에게 한국은 그동안 엄청난 틈새시장이었을 거 아냐?
H양네도 아가들이 X얄캔X만 주구장창 먹어와서 다른 사료는 못먹는 네오포비아(친숙한 음식만 먹으려 하는 성향)라서 홀리스틱 사료를 부어놨는데 2일동안을 굶으면서도 안먹더래. 2일 굶으면 그렇지... 냥이 집사들은 눈 돌아가지. H양의 신랑군이 어마어마하게 화가나서 길길이 뛰면서 그냥 먹던거 먹이라고 했데. 얼마 못사는 묘생 자기들이 먹고 싶은거나 실컷 먹고 가게 해주시겠다면서... 묘주 입장에선 내 새끼가 이틀을 못먹었으니 얼마나 눈이 뒤집어지겠어. 뭐 얼마나 대단한거 먹이겠다고 애를 굶기냐며.
아 정말 속상하고 또 속상하고 또 생각하고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사건이었어.
-뭐. 이제 와서 알았으니 다행인거지. 남은 생이 더 길잖아? 그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