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us13 quartet w. Yekwon Sunwoo
필자는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현재는 미국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IT 분야에 있기 때문에 lay off 즉, 정리해고는 종종 일어나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대부분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서 어떠한 이유에서든 해고 통보를 받는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번 주 회사에서 비용 절감을 목적으로 정리해고가 있었고, 우리 팀 10명 중에서는 3명이 해고 되었다. 이러한 해고는 꽤나 매정하게 진행되는데 인사팀에서 제공한 대본같은 내용을 부서장이 전해주고 즉각 모든 온라인 액세스가 차단되며, 당연히 회사 건물에도 들어올 수도 없다. 해고된 인원 중 20년 이상 근무한 사람도 있었고, 업무 성과가 꽤 좋았던 사람들도 있어서 이해하기 어려운 선별이었다. 어쨌든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되고, 가족을 홀로 부양하는 가장의 입장의 사람들은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매우 큰 여파를 받게 된다. 필자는 다행히도 이번에 해고명단에 들어있지 않았지만, 언제든 나에게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자영업을 하던, 월급을 받는 입장이던 대단한 성공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살아남기 위해 혹은 살아내기 위해 버티는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얼마든지 하루 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매우 가까이에서 겪었다.
그렇게 우울한 한 주를 보내며, 챔버뮤직 공연 중 프랑크의 피아노 오중주 곡을 듣게 되었다. 여름 페스티벌 공연 목록과 연주자 명단이 나왔을 때, 사실 이 공연은 선우예권 피아니스트가 온다기에 바로 구매 해 둔 티켓인데, 연주하는 곡을 예습할 겸 미리 들어보니 참으로 우울한 바단조의 곡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진지하고 무거워서 약간 당혹스러운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 주에 회사에서 이런 일을 겪고 나니 그 어떤 곡 보다 내 심정에 딱인 것 같아 공연 자체가 오히려 기대가 많이 되었다. 목요일과 토요일 같은 프로그램을 다른 두 장소에서 듣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는 토요일 Reed college에 있는 Kaul auditorium에서 사운드도 좋았고, 두번째 공연이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선우예권의 피아노와 함께 연주한 Opus13 quartet과의 합이 그 날 훨씬 나았다. Opus13 Quartet (사중주단)은 스웨덴-노르웨이 출신의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된 실내악단인데 무려 올해 4월에는 실내악 콩쿨 중 매우 권위있는 영국의 위그모어홀 콩쿨에서 우승 했고, 5월에는 프랑스의 보르도 현악사중주 콩쿨에서 우승을 했다고 한다. 노르웨이 출신의 1바이올리니스트 Sonoko Miriam Welde소리가 정말 좋았는데 피아노와 동일 선율을 연주하는 유니즌 구간에서도 다들 프로답게 척하면 척스러운 호흡으로 연주했다. 현악 사중주 악단으로 활동하는 팀을 보면 보통 웬만큼 성격이 맞지 않고서야 오래가기 힘든데, Opus13은 리드 바이올리니스트가 참 잘 끌고 나가는 듯 했고, 서로를 잘 살피며 연주하는 모습을 보였다. 개개인의 실력도 중요하겠지만 조화로운 소리와 섬세함을 잘 표현해야하는 현악 사중주/실내악곡들은 아무래도 한 팀으로 오래 함께한 그룹이 페스티벌에서 잠깐 만나서 공연하는 경우보다 소리가 좋은 것은 어쩔 수 없다. 피아니스트 또한 혼자 연주하거나 큰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는 것이 아닌 겨우 바이올린 두대, 비올라와 첼로가 같이 소리를 내기 때문에 강약 조절에 매우 조심해야 하고 사운드가 잘 어울어지도록 현악기의 소리를 들으며 연주해야 한다. 명불허전 선우예권은 역시나 배려심이 가득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선우예권의 낭만주의 곡 소리를 개인적으로 참 좋아한다.
프랑크의 곡들을 들어보면 프랑스에서 낭만주의 시대에 활동한 작곡가이지만 여전히 형식적인 체계를 잘 드러내고 있고, 밀도 있는 구성으로 잘 짜여진 음악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듀오 레파토리로 유명한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A major)를 통해 세자르 프랑크라는 작곡가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머릿속에 오래 남는 선율이 꽤나 인상적으로 남았고, 우연히 들었던 연주자들의 인터뷰 중 결코 연주하기 쉽지 않은 곡이라는 이야기도 기억이 난다. 프랑크 본인이 뛰어난 피아노와 오르간 연주자이었고 프랑스에서 오래 살았더라도 원래 독일계 벨기에 출신이기에 내면에 깔려있는 그리고 바흐와 베토벤의 음악으로 받은 영향이 프랑크의 음악에서도 드러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이 피아노 5중주 바단조 (F minor)곡은 시종일관 어두컴컴한 분위기가 이어지긴 하지만 주제 멜로디가 확실히 드러나고, 모든 악기가 함께 그 주제를 노래하는 부분도 곧잘 등장한다. 도입부는 현악기가 다같이 냅다 내리꽂는 따 따라단…으로 강하게 시작하는데 피아노는 매우 서정적이고 차분한 이야기를 펼치는 대조가 신선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1악장 후반부 5개의 악기가 함께 빌드업 해나가는 부분인데 긴장감을 탁월하게 조성해 나간다. 1바이올린의 활 컨트롤에서 감탄이 나왔고, 바이올리니스트의 얼굴 표정부터 온 몸으로 음악을 느끼고 자신과 동료들이 무대에서 제조해 내는 그 소리 위에 올라타서 춤을 추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프랑크는 이 곡을 동시대의 유명한 작곡가였던 까뮈 생상에게 헌정하고 생상이 이 곡의 초연을 했는데 정작 생상은 이 곡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썰에 의하면 그 당시 많은 예술인들의 뮤즈였던 Holmès를 생상이 많이 좋아했고 심지어 청혼까지 했으나 잘 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와중에 그녀는 프랑크에게 레슨을 받았고 둘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시기에 이 피아노 오중주곡이 작곡되었고, 프랑크가 Holmès로부터 어떤 감정적 영향을 받은것은 자명했나보다. 결국 생상과 프랑크의 와이프, 이 둘은 이 곡을 그렇게 싫어했다고 하니….. 역시 아름다운 음악 뒤에는 인간 사이의 감정, 특히 사랑은 빠질 수 없는 듯 하다.
필자가 일주일 내내 주변인들의 정리해고를 비롯한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괴로워 했음에도, 이렇게 아련한 사랑의 감정이 영향을 준 150년 전에 만들어진 음악이 오늘 저녁 나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있고 나 스스로로 하여금 이 또한 지나갈거라는 작은 토닥거림을 선사해주고 있다.
대부분의 한국인이 그러하듯 나 또한 근면성실함을 기본으로 장착하고 직장 생활을 하는데,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그냥 맡은 일만 열심히 한다고 잘 나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정도 머리도 좋아야 하고, 사교 및 사내정치에도 나 몰라라 하면 안되고,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도태되어서도 안되고, 유연성 있게 살아남는다는 것이 종종 버겁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몇 백년이라는 오랜 시간동안 살아남은 수많은 클래식 음악이 오늘의 나에게 왠지모를 괜한 희망을 준다. 특히 공연장에 가서 실연을 듣는다는 것은, 그 순간, 나를 이 음악에 맡기고, 충분하게 나의 시공간을 그 순간 그 장소에서 연주되는 소리로 나를 채우는 행위이기에 그 무엇보다 심적으로 꽉 채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문득 프랑크에게 영상통화 한번 해서 고맙다고 말 해주고 싶다는 어이없는 상상을 해 보며 하루를 마무리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