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ndenburg Concerto No. 3, 4, and 5
Echoes of Bach
Chamber Music NorthWest 2025 Summer Festival
지난해 까지만 해도 바흐 음악에 대해서 약간은 지루함을 느끼기도 했는데 여러 기회를 통해 실연을 자주 듣고 또 본인이 피아노 연습을 하면서 접하다 보니, 작곡가의 천재성에 대한 감탄과 관심이 이어졌다. 특히나 연주를 들을수록 오늘날의 연주자들이 바흐 음악을 어떻게 전달해 내는가에 대해 흥미가 점차 더해지는 듯 하다. 올 해 포틀랜드에서 열리는 챔버뮤직 페스티벌의 주제는 Echoes of Bach 로 바흐의 음악을 축으로 삼아 바흐 주제와 연결되는 현대곡들도 더해져 풍성한 프로그램이 짜여졌다.그 첫 무대로 6월 28일 Reed College 공연장에서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전곡과 두 여성 작곡가 (Caroline Shaw와 Gabriella Smith)의 현대곡이 더해져 총 8곡을 2번의 콘서트로 (오후 4시와 8시) 연주하였다.
나는 두번째 공연만 참석하였고 6시 즈음 도착하여 공연장 앞 잔디밭에서 가족과 함께 피크닉을 즐기고 와인 한 잔과 함께 8시 공연을 관람했다. 딸아이가 들어간 청소년 오케스트라에서 브란덴부르크 3번을 연주한 적이 있고, 각 곡이 10-20분 정도로 짧아 어린이가 듣기에도 부담이 없었다. (그래도 청중의 95%는 백발의 호호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셨다 ) 프로그램 북을 보는데 겉표지에 바흐의 musical signiture (높은음자리표 두개와 가온음자리표 두개로 사각 모양)가 있었는데 딸아이가 이게 바흐 싸인이라고 알려줘서 나도 처음 배웠다! 어릴적부터 클래식 공연장에 자주 데리고 다니고 본인도 악기를 조금 연주하게 되니 클래식 관련 내용들에 관심을 갖고 곧장 기억해 두고 하는 것 같다.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3,4,5 번 모두 장조의 경쾌한 느낌의 곡들이고 각각의 구성 악기들이 달라서 비슷하면서도 신선한 연출이 가능했다. 현악기는 거의 모두가 바로크 활로 연주하였으며, 어떤 첼로 연주자는 핀으로 고정하지 않고 두 다리로 잡고 (바로크 시대 연주 방식) 연주하였다. 굉장히 아름답고 화려한 하프시코드가 무대에서 살짝씩 자리를 바꾸며 연주되었고, 플룻은 나무로 된 고악기가 등장했고, (플룻은 현재는 거의 금속악기로 연주되지만 원래는 나무로 만들어졌었고, Wind악기군이다) 특히 가브리엘라 스미스 작곡가의 Brandenburg Interstices에서 플룻이 리드를 하며 돋보였다.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은 약 300년 전에 작곡되었지만, 1850년에서야 발견되어 출판 되었고, 1950년대에 들어서 연주자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녹음된 앨범의 수에 비해 제대로 된 실내악 구성으로 연주를 들을 기회가 없어 의외로 실연을 제대로 들어 본 사람들은 많지 않다. 1700년초 바흐가 일자리를 구하며 브란덴부르크 공작에게 헌정하여 작곡된 곡이지만 바흐는 일자리는 결국 못 구하고 바이마르와 레오폴드 궁정에서 음악감독으로 일하다가 나중에 라이프찌히 교회에 취직하여 평생을 열심히 일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험난한 취업시장…)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3번 in G major BWV 1048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각 3대와 콘티누오 (더블베이스, 하프시코드) 구성으로 친숙한 멜로디에 각 파트의 악기와 연주자 개인들이 돌아가며 독립적 연주를 선 보이는 기회가 있어서 각각의 연주자들도 매우 즐겁게 연주했다. 특히나 비올라 음색은 바로크 시대의 곡들에서 돋보이는데, 역시 그 당시에는 더 잘나가는 악기였나 싶다. 종종 현악 앙상블 구성으로 어린이 합주단이 단골로 연주하는 곡 중 하나이다. 프로그램 북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실은 2악장이 단 두마디의 E minor화음만 있다고 한다.. (중간에 작곡 하기 귀찮았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4번 in G major BWV 1049
공연의 마지막으로 연주된 곡이고 원래는 리코더가 있어야 하는데 두 대의 플룻으로 연주 하였다. 3 바이올린, 1비올라, 1첼로, 1 더블베이스, 하프시코드와 2 플룻 구성으로 연주하였고, 슌스케 사토의 테크닉이 매우 돋보인 곡이었다. 플룻 두대의 소리가 매우 조화로웠고, 현악기만으로 채우기 어려운 공간들을 잘 메꿔주는 느낌이었다. 멜랑콜리한 2악장에서는 섬세함이 잘 표현되었고, 마지막 악장은 빠른 프레스토로 바이올린과 첼로가 주고 받는 부분이 꽤나 재밌고 여전히 바이올린 기량을 뽐내며 공연을 마무리 짓기에 최고였다.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5번 in D major BWV 1050
이 곡이 두번째로 연주되었는데 오늘 공연의 단연 하이라이트였다. 왜냐…? 어마어마한 하프시코드의 카덴자 때문에 관객들이 1악장의 하프시코드의 카덴자 마치고 기립박수를 치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 악기 구성은 2 바이올린 1비올라, 1첼로, 1플룻, 1 더블베이스 그리고 하프시코드.
바흐가 하프시코드를 솔로이스트로 쇼케이스하며 당시의 작곡 스타일로는 혁신을 일으켰고, 추후 피아노 협주곡 발전에 감히 시발점이었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프시코드는 해머로 현을 때리는 피아노 이전에 널리 사용된 건반을 누르면 현을 튕기는 악기이다. 그래서 다른 현악기들과 조화가 잘되고, 피아노 트리오나 콰르텟에서자주 벌어지는 피아노 사운드가 현의 소리를 잠식해버리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옛날에는 주로 까마귀 깃털 등을 이용해 줄을 튕기도록 만들었고 이 때문에 소리의 강약 (피아노-포르테) 조절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단점이기도 하다. 금속느낌의 챙챙챙 거리는 음색이 있고, 바로크 시대와 그 이전에 작곡된 모든 건반악기의 곡은 하프시코드 소리로 들어야 맞는 것이기도 하다. (피아노라는 악기가 존재하기 이 전이므로..) 영어로는 하프시코드(Harpsichord)라 하고, 독일어로는 쳄발로 (Cembalo) 라고 칭하며, 이탈리어로는 클라비쳄발로 (Clavicembalo)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다시 이 날의 연주로 돌아와서, 킷 암스트롱 (Kit Armstrong)이 하프시코드를 연주했는데 들으며 마치 90년대 팝 뮤직의 전자음 소리 느낌도 났고, 바로크 시대에 태어났음 스타 되었겠다는 생각도 했다. 92년생 영국/대만계 미국인이며 어렸을 적부터 수학과 음악에 천재적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5살 때 작곡을 했고, 9살에는 대학에서 생물, 물리, 수학, 음악을 공부 했다고…. 좀 더 커서는 커티스 음악원에서 피아노를 공부하고 유펜에서 화학/수학을 공부했고,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서 물리학 공부, 영국 임페리얼 대학에서 또 수학, 런던왕립음악원에서 음악 학사, 파리대학에서 순수수학석사(도대체 학교를 몇 개 다닌건지..) Sony레이블에서 바흐와 리스트 음반을 냈고, 도이치그라모폰에서도 음반을 냈다. 심지어 작곡가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라는데… 얼마전 세상을 떠난 알프레드 브렌델에게 정기적으로 멘토링을 받았다는 럭키가이.. 프랑스 작은 마을에 교회를 하나 구매하여 공연, 전시 공간을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역시 세상엔 대단한 사람이 너무 많고, 하나만 잘하기도 어려운 세상에 이렇게 두 분야에서 천재소리를 듣는 사람도 살고 있다는게 신기하고, 어이없다… 어쨌든 이렇게 대단한 사람의 실연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는데 이런 배경을 모르고 연주를 먼저 들어서 사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프시코드 연주로 실력을 증명해 버렸기 때문. 정말 화려한 1악장 후반부의 쏠로 연주에 사람들이 넋 놓고 보다가 하프시코드 연주 끝나자 관객들 모두 다같이 “하아…” 참았던 숨을 쉬며 박수가 쏟아져 나오는데, 나도 여러 연주 공연을 관람해 봤지만 이렇게 곡 중간에 사람들이 찐으로 감탄하며 기립박수가 나오는 건 처음 봤다. (조금 자유분방한 오레건 사람들의 분위기도 분명 영향을 줬을 듯 하다. 일본에서는 안 나올 분위기 ㅎㅎ) 박수가 잦아들고 겨우 1악장 마무리 합주가 이어졌고, 1악장 마치고 다시 한번 기립박수가 터져나왔다. 킷 암스트롱이 일어나서 이러면 안된다고 타일러서 박수 멈춤. 대단한 광경이었다. 2악장에서는 플룻, 바이올린 그리고 하프시코드가 서로 번갈아 가며 주고 받는 연주를 했는데 무대 코 앞에 앉아 있는데도 마치 저 멀리에서 아늑하게 들려오는 소리처럼 연주를 해서 감동적이었다. 3악장은 경쾌하고 밝은 장조의 마무리로 전형적인 고전적 구조를 잘 보여주며 마무리 했다.
이번 페스티벌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전곡 연주는 슌스케 사토 바이올리니스트가 이끌며 가능했다. 일본 태생 바이올리니스트 사토 슌스케는 아주 어릴 적에 미국으로 이주하여 뉴욕 줄리어드와 프랑스, 독일 뮌헨에서 공부하고 어려서부터 콩쿨에서 최연소 우승을 하며 두각을 나타내었다고 한다. 특히 라이프찌히에서 열리는 바흐 콩쿨에서 2등을 했고 바로크 시대의 음악(바흐, 비발디 등)을 자주 연주하며 유투브에서도 네덜란드 바흐 협회의 예술감독으로써 꽤 많은 연주 영상을 찾아 볼 수 있다. 고악기를 매우 유능하게 다루고 각 시대의 음악을 생생하게 표현 하는 것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이자이, 그리그, 파가니니 등 음반 녹음도 활발하게했다. 특히 파가니니 24 카프리스를 역사적 연주 방식으로 최초 녹음했다고 한다. 바로크와 고전 음악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흔치 않은 연주자인데 네덜란드에 살고 있는 슌스케가 오레곤까지 와서 바흐 곡들을 연주해주니 참으로 고마웠다.
여름방학을 맞이한 딸아이와 남편까지 함께 길어진 여름햇살을 만끽하며 맛있는 저녁을 먹고 (우연히 찾은 푸드카트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또 먹으러 가기로 약속까지 했다는!) 너무 좋은 연주를 감상할 수 있어서 행복함이 가득찬 6월 말의 저녁이었다. 앞으로 7월 한 달간 거의 매주 공연을 보러 갈 계획인데 벌써부터 설레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