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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hanie & Saar

All French program for piano four hands

by Jinny

피아노라는 악기 자체는 참으로 외로워 보인다. 88개의 건반으로 꽉 찬 소리를 내 주기 때문에 피아니스트는 자신의 실력을 갈고 닦아 이 거대한 악기와 보통 혼자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보통 협연이 아닌 피아노 리사이틀에 가면 무대 위에 덩그러니 있는 까만 피아노 한 대와 엎치락 뒤치락 사투를 벌이는 피아니스트를 보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피아노 듀오는 조금은 든든한 팀이 아닐 수 없다. 피아노가 다른 악기와 함께 연주 하며 무대를 공유하는 것이 아닌, 특히 4 hands 경우에는 한 대의 피아노 앞에 피아니스트 둘이 한 팀이 되어 연주 하는 것이기에 동지애가 깊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 활동하는 유명한 피아노 듀오로는 Lucas & Arthur Justen형제가 있고, Khatia & Gvantsa Buniaishivili 자매도 유튜브 영상으로 찾아 볼 수 있다. 두 팀 모두 외모가 출중하고, 어린 시절부터 함께 피아노를 쳤을테니 척하면 척인 호흡을 확실히 보여준다. Anderson & Roe 팀도 유명한데, 파워풀하고 화려한 퍼포먼스를 곁들여 연주를 하는 편이라 꽤 돋보이는 팀이다. 얼마전 반 클라이번 콩쿨 사회를 맡으며 인지도를 높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듀오 팀으로는 외국 콩쿨에서 여러번 우승한 경력이 있는 신박듀오 (신미정 & 박상욱)도 있다. 이렇게 듀오로 결성하여 연주활동을 하는 팀들 중 내가 가장 궁금한 듀오는 보통 연인이거나 결혼한 커플이 듀오로 연주 할 때이다. 최근에 유명한 피아니스트인 랑랑이 결혼한 한국계 피아니스트 아내 지나 앨리스와 여러 곡을 함께 연주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방금 부부싸움을 했는데 바로 옆에 딱 붙어 앉아 함께 피아노를 연주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떨까 혼자 상상해 보기도 했다. 둘의 연주를 보고 있자니 대부분의 곡에서 확실히 랑랑이 리드하는 면이 보였고, 평소에도 랑랑의 오버액션에 익숙한지라 어쩜 당연한 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만약 아내도 피아니스트로써 자기 주장을 더 펼치려고 한다면 랑랑과 함께 연주는 어려울 것 같기도…간혹 지나 앨리스가 멜로디를 이끄는 곡을 치기도 했는데 (쇼팽 녹턴 B flat minor) 매우 아름답다. (그녀의 소리도, 얼굴도….) 이렇게 연인이거나 결혼한 커플이 연주할 때에 서로 눈을 마주치거나 눈짓으로 소통하며 감정을 교류하는 걸 볼 수 있는데, 이것도 연인 듀오 공연을 볼 때에 큰 묘미이다. 어쨌든 음악은 감성을 자극하는 예술이며,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한 누군가와 함께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연주자도 관객도 행운일 것이다.



현재 나를 3년째 가르쳐주고 있는 피아노 선생님께서 얼마 전 피아노듀오 콘서트에 함께 가자고 하셔서 처음으로 Lewis & Clark College 공연장에 다녀왔다. 듀오 리사이틀 프로그램으로만 된 공연도 처음이었는데, All-French Program for Piano Four Hands라는 테마로 공연을 했고 (피아노 선생님이 프랑스 음악 좋아하심 : ) Tailleferre, Debussy, Chaminade, Ravel의 곡들을 연주했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 <Six Épigraphes Antiques- 6개의 고대 비문> 이라는 드뷔시의 곡을 연주하면서 이 곡이 Pierre Louys라는 작가의 6개의 시를 바탕으로 작곡된 곡이기에, 연주 중간중간에 프랑스어가 가능한 대학생이 나와서 시낭송을 하고 연주를 이어갔다. 굉장히 새로운 경험이었고, 프랑스어를 전혀 모르는 관객의 입장에서 생소한 이 언어의 소리가 마치 음악의 일부처럼 다가왔다. 딱 들어도 바로 드뷔시 음악이군 느껴질만큼 몽환적이고 아름답게 펼쳐지는 멜로디와 오랜시간 듀오를 함께 해 온 커플의 호흡이 우아함으로 마음 속 깊이 들어왔다. 프로그램의 모든 곡이 내가 이 전에 단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곡들이었는데, 그래서 늘 음악을 들으며 자동으로 곡의 구조이며, 분위기 등 무언가를 애써 분석을 하려고 하는 나의 두뇌는 준비할 틈도 없이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고 약간은 놀란 상태에서 연주를 감상했다. Stephanie & Saar는 지적이고 연륜이 느껴지는 연주를 들려 주었고, 왠지 이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 보면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엄청 많이 알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정신줄 놓으면 꿈나라 속으로 들어가서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찬 풍경과 생명체들이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을 것 같은 드뷔시의 음악들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프랑스 작곡가들 보다는 독일, 러시아 작곡가의 음악을 선호한다. 프랑스 대표 작곡가들의 음악은 손에 잡히지 않을 것 같고, 진한 유화보다는 수채화스러운 느낌의 정형화 할 수 없는 그 세련됨이 조금은 어렵게 느껴진 것도 이유일 것이다. 확실한 기승전결로 선 긋지 못하고 음악을 들으며 마치 형형색색을 가진 블랙홀로 빨려들어가는 기분이 불안함을 자극해서 그런게 아닐까 싶다. 종종 “전 드뷔시 음악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말하고는 했는데 나 스스로의 편견을 좀 깰 필요도 있는 것 같다. 나의 개인적 취향을 바꾸려 노력하지는 않겠지만, 굳이 듣지 않으려 하는 것도 좋지 않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얼마전 탱로그에서 누가 드뷔시 싫어요 댓글 달았다가 엄청 혼나고 드뷔시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탱쌤 이야기를 들으니 마치 나한테 하는 말 같아서 뜨끔 했다는…) 드뷔시 보다는 라벨의 음악을 더 좋아하고 라벨 음악에서는 좀 더 스토리와 체계가 느껴지는 것 같아서 인 듯 하다. 이번 공연에서 Cecile Chaminade라는 작곡가도 처음 알게 되었는데 드문 여성 작곡가이며 나중에 찾아보니 정말 재능이 많았던 작곡가였던 것 같다. 가곡을 비롯하여 300곡이 넘는 작곡을 남겼고, 이번 프로그램에서 샤미나드의 <From Pieces Romantiques>을 듣고 좋았던 기억에 집에 와서 여러번 다시 들었다.


루이스앤클라크 대학교의 채플에서 공연을 한 거였는데 Fazioli 피아노 소리에 홀딱 반해버렸다. 나무로 된 동그란 채플의 어쿠스틱도 한 몫 했겠지만, 그동안 내가 들어본 피아노 top 5에 넣어두고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은 소리였다.

연주자들도 연주 마치고 피아노 소리 너무 좋다고 칭찬했다는…자기 집 피아노 소리보다 너무 좋았다고 말함ㅎㅎ


돈 많이 벌어서 스타인웨이 그랜드 피아노 집에 두고 싶은 직장인 취미연주자 일개미는 괜히 귀만 높아져서 파지올리 피아노도 한 번 구경가고 싶다고 생각만 했다… 너무 비싸서 감히 살 수는 없음…


공연 관람 후, 피아노 선생님과 귀여운 칵테일 바에서 한 잔 하면서 음악 이야기도 한참하고, 늦게까지 인생 이야기도 하면서 즐겁게 마무리 했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 선생님과 4hands 연주 했었는데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또 하고 싶다. (모짜르트 2 피아노 소나타 하고 싶음 ㅎ역시 나는 기승전-모짜르트, 베토벤, 브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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