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와 둘째가 수박 게임에 빠졌다.
어릴 때 하던 테트리스와 비슷한데 위에서 블록 대신 과일이 떨어진다.
작은 과일부터 큰 과일까지 있는데, 체리, 딸기, 포도, 귤, 감, 사과, 배, 복숭아, 파인애플, 멜론, 수박 순서이다.
같은 과일들이 만나면 윗 단계 큰 과일이 된다.
체리, 딸기, 포도, 귤, 감까지의 작은 과일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그다음 크기의 과일들은 같은 과일들을 합쳐서 만들어야 한다.
최종적으로는 수박을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첫째가 오랫동안 하던 게임인데 얼마 전부터 둘째가 하기 시작했고 가끔씩 TV에 게임기를 연결해서 가족 간 대결이 펼쳐지기도 한다.
이 게임을 하다 보면 게임에도 인생의 법칙들이 담겨있다는 생각이 든다.
(1) 내가 어느 위치에 과일을 떨어뜨리냐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이다.
같은 조건으로 동시에 시작해도 나의 작은 선택들이 모여 결국엔 큰 차이가 벌어진다.
인생이랑 비슷하다.
물론 실제 인생에서는 출발점도 조건도 다 다르다고 하지만, 모두에게 주어지는 '시간'이라는 작은 블록을 어떻게 쌓아가냐에 따라 나중엔 큰 차이가 벌어진다.
처음에는 별 차이 없어 보이는데 중반부터는 차이가 벌어지다가 마지막엔 큰 차이가 난다.
(2) 열심히 계산해서 둔 수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열심히 작전을 짜고 정확하게 과일을 떨어뜨려도 변수에 따라서 내가 원하지 않은 곳에 떨어진다.
다른 과일들 위에서 미끄러져서 엉뚱한 곳에 가기도 하고 다른 과일들 움직임 때문에 밀려나기도 한다.
과거를 돌아보면 내게도 그런 날들이 있었다.
열심히 계획하고 준비했는데 갑자기 다른 변수가 나타나서 계획이 틀어지면 그게 그렇게 억울하고 속상했었다.
(3) 계획대로 되지 않아 실패한 것 같은데 포기하지 않으면 갑자기 풀리기도 한다.
예상 밖의 변수로 계획이 다 틀어져서 망했구나 싶은데 포기하지 않고 지속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순간, 쌓였던 과일들이 팡팡 합쳐지면서 큰 과일이 된다.
다시 공간이 생기고 숨통이 트인다.
내 삶을 뒤돌아봐도 내 뜻대로 되는 것보다 안 되는 것이 더 많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면서 계속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행운이 더해지면서 계획했던 것보다 잘되는 순간이 있었다.
(4) 의미가 되지 못하고 쌓은 것들이 삶을 답답하고 무겁게 한다
게임의 끝으로 가다 보면 합쳐지지 못한 큰 과일들이 자리를 자치하면서 새로운 과일들이 들어올 자리가 없어진다.
그러다가 어느 선을 넘어가면 게임이 끝난다.
한 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모으고 쌓아놓았던 물건들은 내 공간을 얼마나 답답하게 했으며,
이것저것 해보고 싶다고 벌여놓았던 일들은 삶을 얼마나 무겁게 만들었던가 생각해본다.
중요한 일에 집중하지 않고 삶을 정돈하지 않으면 결국 그것들로 내 시간과 공간은 가득 차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을 지경이 되고 만다.
인생이 담긴 수박게임.
아이들과 즐겁게 웃으며 게임을 하다가 문득 생각에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