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중요한 일을 미루는 나쁜 버릇이 있다.
미룰 수 있는 한도까지, 아니 한도를 조금 넘어서 아슬아슬해질 때까지 끝내 미룬다.
아주 어릴때부터 시작된 이 버릇이 3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일의 경중보다는 그 때 당시에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무엇이든 그 대상이 된다.
심지어 샤워가 그 대상이 될 때도 있다.
별것 아니지만 지금 당장 꼭 해야 하는 것이 씻기이고 아이를 재우는 것과 겹치지 않으려면 10시 까지는 씻고 잘 준비가 되야 한다고 생긱하면 그때부터 샤워를 미루기 시작한다.
샤워 준비는 8시 반부터 시작한다.
일단 갈아입을 옷을 화장실에 가져다 두지만 갑자기 쌓여 있는 빨래가 보인다.
빨래를 가지고 가서 세탁기에 돌렸다니 세제가 곧 떨어질 것 같다.
핸드폰을 켜서 세제를 주문하다 말고 잠시 메세지를 확인한다.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보니 시간이 꽤 흘렀다.
다시 화장실로 향하다가 테이블 위에 놓인 컵이 보인다.
그 컵을 들고 싱크대로 갔다가 설거지 할 것들이 있는 걸 보고 설거지를 한다.
주의력이 분산되서도 아니고, 할 일이 많아서도 아니고 그냥 미룰 수 있는 합당한 이유를 찾는 것이다.
그러다가 9시 55분이 되어서야 부랴부랴 샤워를 한다.
오늘 해야 할 일이 무엇이든, 그게 마음 속의 가장 중요한 일이 되버리면 그 일은 이런 식으로 계속 밀린다.
마침내 하긴 하지만 결국 못하고 미뤄버리는 일도 가끔 있다.
습관을 바꿔보려고 수차례 시도했지만 결국엔 성공하지 못했다.
'완벽하지 않으면 시작도 하지 않겠어!' 라는 어릴적 완벽주의적 성향이 이렇게 남아 있는 건 아닐까 혼자 추측만 할 뿐이다.
문제는 글쓰기가 요새 내게 중요한 일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화, 목에 글을 하나씩 올리기로 결심하고 초반엔 스스로와의 약속을 잘 지켰다.
시간 날 때 조금씩 쓰기도 하고, 일부러 시간을 빼놓고 쓰기도 했는데 점점 미룬다.
급기야는 잠들기 30분 전까지 미루다 부랴부랴 했는데 이젠 다음날로 슬쩍 넘긴다.
지금이 그 상황이다.
화요일에 올리기로 했던 글을 하루종일 미루다가 결국 수요일에 쓰고 있다.
내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건 결국 '독서와 글쓰기' 라고 결론을 낸 이후로 그런건가 싶기도 하다.
좋은 집, 좋은 차, 명품, 아이의 교육, 그 어떤 것에도 딱히 흥미와 열정이 없는 내 삶에서, 그래도 의미를 찾고 깊이를 더해갈 수 있는 건 '독서와 글쓰기' 밖에 없구나 싶었다.
읽고 써야 내가 잘 살 수 있다.
그랬더니 아이러니 하게도 읽기와 쓰기가 하루의 가장 끝으로 밀리고야 말았다.
작게 쪼개서 시작을 쉽게 만들기도 하고, 시간을 정해놓기도 하고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해 보지만 쉽지 않다
이 오래된 마음의 습관은, 미루는 데 최선을 다하고야 만다.
이건 또 어쩐다...
고민이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