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생각과 방식이 나와 다를 때, 때론 걱정은 비난이 된다.
상대방이 내게 어렵지 않고 친밀한 사람이라면, 말은 필터를 한 번도 거치지 않고 그대로 상대방에게 쏟아진다.
상대방이 내 아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부모는 신생아부터 지금까지 아이를 키워왔기에, 계속 아이를 가르쳐야 한다고 느낀다.
아이에 대한 존중보다는, 잘 키워야 한다는 책임과, 잘 못 크면 어쩌지 하는 불안이 마음을 채운다.
아이가 어릴 때는 아이에 대한 기대가 낮으니 밥 잘 먹고 똥 잘 싸고 잠만 잘 자도 칭찬해 준다.
(물론 슬프게도 이것조차 잘 안 되는 아이들이 너무나 많다)
그렇지만 아이가 커가면 아이에 대한 기대도 함께 커진다.
어른들에게 인사를 잘했으면 좋겠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야 하고 숙제도 잘 해내야 한다.
하루 종일 지적할 것투성이다.
부모의 지적을 받은 아이는 의기소침해진다.
아이의 표정을 보고 문득 미안해질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아이를 그대로 둘 순 없다.
내가 가르치지 않고 키웠다가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 미움받으면 큰일이다.
지금 당장은 아이의 마음에 상처가 될 수 있지만 다 아이를 위한 일이니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어릴 적엔 내 말투만 바뀌어도 눈이 커지며 내 말을 듣던 아이가 이제는 크게 소리를 질러도 시큰둥하다.
아이가 내 말에 반응하지 않으니 괘씸하고 당황스럽다.
아직 가르쳐야 할 것이 한가득인데 벌써부터 이러면 어쩌나 싶다.
점점 목소리가 커지고 비난이 섞인다.
그때부터 엄마의 '걱정의 말'은 '잔소리' 취급을 받기 시작한다.
안타깝게도 이런 말들은 아이에게 아무런 효과가 없다.
'걱정'이 '비난'의 탈을 쓰면 상대방에게는 더 이상 '사랑'이 아닌 '공격'이 된다.
공격을 받은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은 '방어' 밖에 없다.
무시하거나 반박하거나.
이런 방식은 오히려 부모 자식 간의 관계만 망친다.
아이를 비난하지 않으려면 일단 내 불안을 내려놓아야 한다.
아이는 나 혼자 키우는 것이 아니다.
학교에서 만나는 선생님, 친구들, 다른 가족들 등등, 아주 많은 사람이 아이를 함께 키운다.
스스로를 돌아보면 된다.
'나는 엄마 혼자 키웠는가? 엄마의 말은 내 인생에 얼마큼 영향을 주었는가?'를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아이 인생에 대한 부담이 좀 줄어든다.
내가 아이에게 가르친 것들이 아이 인생에 스며들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가 몰라서 '안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도 잘 안돼서 '못하고 있는 것' 임을 인정해 주고 기다려줘야 한다.
그렇다고 가르치지 않고 내버려 두라는 것은 아니다.
내 마음에 있는 말들이 필터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비난이 되어 나가는 걸 필사적으로 붙들어야 한다.
아이를 오래 관찰하고, 전할 방법을 고민하고, 공격하지 않으면서 친절히 알려줘야 한다.
비난은 쉽다.
그렇지만 효과가 없다.
아니 없는 정도가 아니라 관계를 망친다
'아니, 애 키우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말까지 가려하라는 건가!'
이렇게 화낸다면 어쩔 수 없다.
날마다 고성이 오가는 집에서 방문을 꽝! 닫고 들어가는 아이를 보며 '사춘기 탓' 하면서 한숨 쉬고 앉아 있을 수밖에.
이젠 내 말에서 비난의 탈을 벗기고, 친절을 담은 걱정을 조심스레 건네야 한다.
신기하게도 다시 눈을 크게 뜨고 내 말을 들어주는 아이를 만나게 된다.
비난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지만 사랑과 인내는 힘이 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