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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중인간 Oct 20. 2019

제주스쿠터여행(1)

마음이 울렁거리는 첫 주행

오랜만에 친구들과의 여행.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 표와 숙소만 예약을 해놓은 상태로 정해진 일정은 따로 없었다. 딱히 구체적인 목적 없이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그때의 분위기 대로 행선지를 정할 요량으로 여행 일정이 다가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이동은 어떻게 하지? 고민이 드는 순간, 오토바이를 타는 친구가 '스쿠터 타고 다니는 건 어때?' 라는 제안을 했고, 꽤 흥미게 들리는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제주공항에 도착하니 미리 스쿠터를 예약해놓은 대여 업체에서 픽업을 위해 마중을 나와있었다. 친구와 나, 둘만 그 차에 타는 줄 알았는데 '뽀솜이'라는 이름의 강아지와 함께 차에 탑승한 분이 계셨다. 하얗고 보송보송하고 작은 강아지는 한껏 들뜬 얼굴로 나와 내 친구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이내 잠이 들려고 했다.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귀여운 강아지와 한 차에 타다니! 여행은 참 별것 아닌걸로 사람을 흥분되게 만든다.

가게에 도착했더니 여기저기 연식이 오래되어 보이는 오토바이들이 많았다. 친구는 이전에도 오토바이로 제주를 여행한 경험이 있기에 바로 대여 계약서를 작성하러 사무실로 들어갔고, 나는 스쿠터 기초교육을 받기로 해서 가게의 직원을 따라 나섰다. 인상과 말투가 호감이 가지 않는 직원을 따라 나서는데 직감적으로 불안한 마음이 떠올랐다. 그냥 렌트카를 빌릴걸 괜히 오토바이를 타자고 했나.. 라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직원은 스쿠터 탠덤석에 앉은 뒤 나보고 자기 앞에 앉으라고 했다. 내가 생각했던 교육 방식과 너무 달라서 흠칫하며 다가가지 못했더니, 뭘 꾸물거리냐며 얼른 오라고 재촉을 했다. 기분이 상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기에 앞좌석에 가서 앉았다.


솔직히 기초교육이라고 했지만 가르쳐주는 건 별게 없었다. 기본적인 주행, 제동, 코너링 정도를 알려주는 정도였는데 어찌나 소리를 지르고 나를 불안하게 닦달하던지, 되려 유튜브 몇개 보고 혼자서 연습하는 게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5분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다시 가게로 돌아와 계약서를 작성하는데 이번엔 사장이 겁을 주는 거였다. 스쿠터 렌트는 자차보험만 되기 때문에 대물/대손/자손은 개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분은 계약서 약관을 통해서도 알 수 있었는데, 불안하게 자꾸 그 부분에 대해서 언급을 했다. 스쿠터는 쓰로틀 당기기만 하면 되는 건데 왜이렇게 긴장을 하냐, 그렇게 긴장을 놓지 못하고 몸이 뻣뻣해서야 탈수 있겠냐는 둥 쓸데없는 소리를 많이 하는 사장이었다. 친구와 얼른 키를 받고 나와서 그 가게를 빠져나갔다.


첫 도로 주행에 아무래도 긴장이 되는데 오토바이 가게에서도 불안한 얘기를 계속 듣다보니 속력을 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는 긴장된 상태에서 숙소까지 스쿠터를 몰았다. 그래도 복잡한 서울의 도로 교통 상황에 비해 거리에 차도 많이 없었고, 숙소까지는 2km 정도로 가까운 거리로 부담을 조금 덜고 운전을 할 수 있었다. 긴장을 놓지 못하고 머릿속으로 여러 생각이 들고 있을 때, 해안도로로 진입을 하는데 처음으로 긴장이 좀 풀리면서 스쿠터를 빌리기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짙은 남국의 바다, 그 색과 기묘하게 잘 어울리는 투박하고 검은 현무암, 하늘을 삼키듯 붉게 타오르는 노을의 모습을 본 순간 긴장했던 마음이 뻥 뚫리고 시원한 바다 바람이 옷깃을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그렇지, 이걸 느껴보려고 했던 거지.


아름다운 바다의 모습을 눈으로 더 담고 싶은 마음을 뒤로 제쳐두고 일단 숙소에 가서 짐을 풀기로 했다. 짧지만 강렬했던 첫 주행을 마치고 숙소에 도착했다. 아까 봤던 노을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친구와 다시 나가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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