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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 Jan 12. 2023

[손글씨클럽] 면세점 여자들/ 4. 밥짝과 밥값

*손글씨클럽: 손모가지 걸고 글쓰는 클럽



 '밥짝 있어?' 메신저를 통해 묻는다. 


 회사에서 별도로 밥짝이 있을 수가 있나? 밥짝이라는 말도 처음이었다. 인턴을 하거나 일반적으로 보면 특별한 일을 제외하고는 다 팀에서 가던데, 밥짝이 왜 필요한지. 대개는 윗분들의 점심 약속에 따라 정해졌던것 같다. 업무상 약속이 있는 경우가 많은 윗분들이 밥짝이 없는 경우에 눈치껏 맞추고 약속이 없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함께 가게 되는 그런 흐름. 


 면세점은 호텔과 같은 구내식당을 이용하는데 명색이 호텔이니만큼 조리장이 실력도 있고 그래서 밥도 맛있었다. 고객이었을때는 알지 못했던 백화점, 면세점, 호텔이 이어진 뒷길을 파악할 때까진 시간이 좀 걸렸다. 절대 문이 아닌 것 같은 곳이 열리고, 갑자기 호텔로비가 뿅하고 등장했다. 숨겨진 엘레베이터와 계단을 파악해 구내식당으로 가는 가장 짧은 동선을 이용한다 해도 수백명의 직원이 있는 건물에서 엘레베이터를 타는대만도 시간이 꽤 걸린다. 회사에서 허락된 유일한 공식 자유시간, 사람들의 마음과 발걸음은 빨라지고 만원인엘레베이터를 보내면 계단으로 내려가 다른 엘레베이터를 타는 방식으로 요리 조리 머리를 써야 1층에 닿을 수 있다. 거기서 또 지하로 내려가 미로 찾기 하듯 가야만 구내식당에 골인!


 그런데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은 기억은 그리 많지가 않다. 워낙 직장인들이 많은 곳이라 합리적인 가격대에괜찮은 점심식사를 제공하는 식당이 많기도 했지만, 구내식당이 아니여도 공짜밥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법카 (법인카드) 를 가진 밥짝이 있다면.

 팀별로 사정은 좀 달랐지만, 내가 있었던 부서에서는 대부분 매니저나 팀장과의 점심식사에서 법카 사용이 가능했다. 꼭 직책자만 법인카드가 있는것도 아니었기에 나의 밥짝이 법카가 있다면 구내식당이 아닌 외식이 가능했던 것이다. 실제로 결제한 사람에게 '잘 먹었습니다.'를 외치지만 속으로는 모두 '회장님,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하면서.

 모두에게 구내식당 이용권은 동등하게 주어지지만 누군가는 법카로 점심을 먹고 누군가는 개카로 점심을 먹었다. 언니의 밥짝들은 그 법카가 없었다. 그런데도 언니랑 점심을 먹을 때 구내식당에 간 기억은 많지 않다. 언니와 함께 점심을 먹게되면서 우리는 샐러드와 수프를 파는 가게에 자주 갔고, 저녁에는 일식 주점인데 낮에는 식사를 파는 곳도 자주 갔다. 언니와 점심을 먹을땐 언니가 많이 사줬고 나에게 법인 카드가 생겼을 무렵엔 내가 계산했다. 언니는 내가 팀에 발령받은 이후로 가끔 나와 함께 팀 점심을 가긴 했지만, 여전히 따로인 경우가 많았다. 누군가는 법카로 계산을 하는 그 식당에서 개카를 내고 점심을 사먹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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