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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 Jan 20. 2023

[손글씨클럽] 면세점 여자들/ 5. 진품 명품

*손글씨클럽: 손모가지 걸고 글쓰는 클럽


"너네가 절대 하면 안되는거. 짝퉁 들고 다니지마."


 신입사원 OT, 각 부서별 팀장급이 돌아가며 각 팀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세션에서 가장 마음에 남았던 말이다. 복도에서부터 향수냄새를 풍기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휘감은 그가 한 말. 커다란 명품 브랜드 로고가 박힌 벨트를 한 그를 마주했을 때 내가 생각한 회사랑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했다.


 스물 다섯, 대학생 때 엄마가 사준 명품 가방이 하나 있긴 했는데 출근용으로 들고 다닐 수는 없어서 그나마 엄마의 가방 중에 오래됐지만 괜찮은 가방을 골라 들고 다니던 참이였다. 명품을 취급하는 회사라고 해서 내가 꼭 명품을 사야된다는 생각은 못했고, 관심도 없었고, 그럴 돈도 없었다. 그런데 짝퉁을 들지 말라는 그의 말이 꼭 제대로 된 명품 가방을 하나는 있어야 된다는 말로 들린건 왜일까.


  서울에서 받는 OT가 끝나고 부산과 제주에 있는 점포를 돌기 위해 준비하고 있을 때 엄마가 가방 하나를 내밀었다. 단골 옷가게에서 자주 A급 가품을 사곤 하던 엄마는 이걸 들고 가라고 했고 나는 마침 들고다닐 가방이 없던 차에 잘됐다며 별 생각없이 가방을 받았다. 물론 진품이 아니란걸 알고있었지만 큰 거리낌 없었다. 누가 이걸 알아나 보겠냐는 마음이였고 괘념치않았다.


 그런데 가방을 들고 사람들을 마주했을 때 내 마음이 초조해진건 그때부터였다. '짝퉁 들고 다니지마.' 그의 말이 번뜩 떠올랐다. 이상하게 그때부터 가방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진짜 명품이라면 이 정도까지 나지 않을 새 가방의 냄새, 게다가 지퍼까지 고장이 나는 사단이 났다. 그 지퍼를 고쳐보려고 제주도 호텔 화장실에서 어찌나 낑낑 댔는지 그때의 식은땀이 지금도 생생하다. 지퍼와 씨름하며 생각했다. 다들 알고 있었던걸까. 그래서 새로 산 가방을 가져갔는데도 아무도 아는척 하지 않았던걸까. 날 뭐라고 생각할까. 그리고 그순간 내가 가장 원망했던 사람은 바로 엄마였다. 엄마는 왜 내가 부탁한것도 아닌데 이런 가방을 나한테 줘서는, 이런 수모를 겪게 만드는 것인지. 우리 회사는 OT때 짝퉁 들고 다니지 말라는 교육을 하는 회사라는 것을 왜 엄마는 모르는지.

 그 일이 있고 난 후 나는 다시 엄마의 옷장을 뒤져 괜찮은 가방 하나를 들고 다녔다. 그러다 남자친구로부터 그리고 엄마로부터 진짜 명품 가방을 선물받았다. 그래도 면세점에 다닌다면서 가방 하나는 있어야 되지 않겠냐고 둘 다 같은 말을 했다. 가방이 없는건 아니였는데, 한 켠에는 이 비싼 돈을 주고 가방을 사야되나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다른 한 켠에는 다시는 그 수모를 겪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다.

 면세점 여자들은 대부분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닌다. 일년에 한 두번 월급을 다 털어서라도 가방을 산다. 직원 세일을 하면 두 세개씩 사기도 한다. 할인율을 생각하면 큰 이득이라 생각한다. 사지 않는게 손해라는 생각이 들 만큼 그렇게 모두가 면세 쇼핑을 한다. 그렇게 몇 년을 다니면 자연스레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휘감게 된다. 그거면 된다. 내 옷에 내 신발에 박힌 로고가 주는 위안이 그렇게 크다는 걸 받아들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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