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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 Jan 26. 2023

[손글씨클럽] 면세점 여자들/ 6. VIP

*손글씨클럽: 손모가지 걸고 글쓰는 클럽



 내가 처음 일했던 마케팅팀 옆에는 판촉팀이 있었다. 판촉이란 말 그대로 판매촉진, 파는 행위를 하는 부서인데 주요 업무는 관광객의 면세점 입점을 영업하는 일이다. 2010년에는 중국인 붐이 일기 전으로 주요 고객은 일본인이였는데, 일본인 단체를 취급하는 여행사가 주요 거래처였다.


 판촉팀 소속은 아니였지만 같은 마케팅 부문 소속으로 워낙 자리가 가깝기도 해서 교류가 많았는데, 대부분 일본어 가능자들이였다. 그 당시만 해도 회사 근처엔 일본인 관광객을 겨냥한 이자카야며 일본음식을 파는 곳들이 즐비했다. 점심 메뉴도 자연스럽게 일본 음식을 먹는 경우가 많았고 단골 회식 장소는 일본인 조리장이 있는 이자카야였다. 일본어는 중학교때 방과후 수업으로 들은게 마지막이였지만 그렇게 일본인이 주요 고객인 회사에 다니게 되면서 점점 일본에 가까워진다는 느낌을 받게된 무렵이였다.

 판촉팀은 주로 여행사를 상대했지만 우리가 직접 일본 VIP 고객들을 관리하며 면세 쇼핑을 위해 여행일정을 짜서 초청을 하는 이벤트를 하기도 했다. 일본 VIP 고객들이 한 번 방문하면 그달의 매출 규모가 달라질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외국인은 면세 한도 의미가 없었고 초청하는 조건에 일정 금액 이상 구매조건이 있기도 했다. 행사와 이벤트를 담당하며 관련 업무를 했었지만 그 고객들이 어디서 온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매달 내 통장에 꽂히는 월급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일본에서 온 부자 사모님이겠거니 정도의 이미지가 내 머릿속에 있었을 뿐.

 그런데  어느날, 중요한 VIP 고객이 오지 못했다는 이야기 속에서 그가 동경 파친코 사모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야쿠자도 아니고 파친코였는데 그 말이 왜이리도 충격적이였는지, 일본은 합법적으로 파친코 광고를 버젓이 길에서 하는 나라인데도 말이다. 그때는 뒷통수를 한 방 맞은듯한 충격이였는데 파친코에서 벌어들인 돈이 내 지갑에 꽂힌다는 생각을하자 아찔했다.

 나는 왜 그 전까지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그때 처음으로 내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어떤 가치를 위해 일을 하는지 생각했다. 그 전에도 회사엔 너무나 이상한 일들이 많았지만 어렵게 한 취업에 신입사원의 단 꿈에 젖어 있었다면 그때야 비로소 이길을 가고 싶은게 아니라는 생각이 뇌리에 꽂혔다.

 그럼에도 나는 그 후로도 계속 회사를 다녔다. 열심히 다녔다. VIP 고객이 파친코 사모님이라는 사실은 아무일도 아니였고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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