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통해 잊지 말고 아이들에게 전해야 할 것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

by 나무엄마 지니

도서관 봉사를 시작하고 도서관을 자주 오게 되어 내가 읽고 보고 싶은 책들을 하나씩 읽게 되었다. <금요일에는 돌아오렴>은 그중 하나였다.


SNS에서도 여러 추모 글들이 올라왔다. 벌써 그때가 8년 전인가 보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인지 그때의 기억을 잊고 산 것이 미안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록을 모으고 관리하는 비영리기관인 ‘4.16 기억 장소’ 운영위원인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 9.11 참사 이후 조성된 뉴욕의 ‘그라운드 제로’와 독일 베를린의 유대인 박물관 등의 예를 들며 우리가 세월호 공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보존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위의 명시된 두 곳은 시민의 일상적 생활공간 안에서 참사를 성찰할 수 있는 곳이다. 김 교수는 “시간이 지나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시민의 관심은 식어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삶 전체에서 여러 측면을 변화시킨 사건이다. 인간의 탐욕이 대형 참사를 불러올 수 있었다는 것, 아이들이 주체가 되는 교육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더 이상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가 아닌 아이들이 주체가 되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도 설명했다. 이를 사회적 기억으로 형성하려는 국가적, 시민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우리 모두 알 것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스스로 사고할 기회와 시간을 주어야 한다고도 강조하셨다.




큰 아이는 평소 걷기를 즐기는데 최근 친구와 약속이 있어 안국동부터 덕수궁까지 걷게 되었다고 한다. 그곳에는 세월호 유족들과 코로나 백신 희생자들의 가족들 그리고 그 반대편에 어른들과 젊은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뒤에는 종교집단이 있었다고 전했다. 큰 아이는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저렇게 젊은 사람들이 거기에 앉아 있을 줄은 몰랐다는 말만 했다. 갑자기 세월호 유족들과 목사님이 금식을 하는 곳 앞에서 피자를 시켜 먹고 있던 젊은이들이 떠올랐다.



내가 본 팽목항의 저녁 모습


필리핀 아웃리치를 다녀온 후 내가 보는 관점이 많이 바뀌었고 주변 지인들이 “쟤 왜 저러니? 조금 무섭다...”라는 소리를 들을 때도 있었다. 나는 변한 게 없는데 왜 지인들은 그렇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보니 평생 해보지 않았던 일들을 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우연히 SNS를 켰는데 알고 지내던 선생님께서 사람들을 모집하고 있었다. 자세히 들어보니 무슨 시위를 해야 하는 거 같았다. 그 선생님은 전직 중학교 수학 선생님이셨다. 나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시는데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진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사람들의 말을 잘 믿지 않는 성격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덕수궁 앞에서 버스를 탔고 난생처음으로 팽목항이라는 곳에 갔다. 그리고 안산도 갔다. 아이들을 데리고도 갔다. 영정사진을 보며 기가 막히고 또 기가 막혔다. 아이들의 영정사진이 끊임없이 끊기지 않고 나왔다. 걸어도 걸어도 끊기지 않는 그런 너무 새파랗게 어린 아이들의 사진을 보고 가슴이 먹먹했다. 그리고 나는 그 수학 선생님과 함께 일인 시위를 동참했다.



들었던 피켓

길에서 만난 어떤 분들은 나에게 왜 이런 걸 하느냐고 위험하다고 집에 가라고도 하셨다. 어느 할아버지는 내 코앞까지 와서 “이거 돈 받고 하는 거야?” 라고 묻는데 숨이 턱 막혔다. 모르는 분들이 내 면전에 대고 이야기한 것도 깜짝 놀랄 일이지만, 코 앞까지 와서 하는 말이 너무 낯설고 무서워서 반대 방향인 세종대왕 동상 뒤쪽에 서 있었다. 사복을 입은 경찰 아저씨는 위험하니 집으로 돌아가라는 조언도 하셨다. 하지만 내가 하는 말에 내가 서 있던 장소 근처를 왔다 갔다 해주셔서 그 이후로는 그다지 무섭지 않았다. “아이들이 너무 많이 죽었잖아요. 많아도 너무 많잖아요.....”

보았던 것들

보았던 것들


보았던 것들


아픔을 함께 동참하고 있던 연예인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일인시위와 수학 선생님이 가실 때 몇 번 따라서 세월호 부모님들을 잠시 뵙는 것뿐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중학생이었던 큰 아이는 시청과 안산에 가서 아이들의 영정사진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어린 막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꽃을 놓고 돌아 나왔다. 그리고 큰 아이는 세월호 선장 이준석의 재판일에 대해 포스터를 만들고 공유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막내는 SNS에 외국 친구들에게도, 한국 친구들에게도 세월호 사건이 있었던 4월이면 Remember 0416을 올리곤 한다.






우리는 이런 아픔을 잊지 말아야 하고 더 이상 이런 일들이 생기면 안 될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 것이다. 아무리 어른들이라고 해도 그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를 다시 수백 번 생각해보고 도저히 그 말이 타당성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따르지 말고 나만의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출처: 한겨레 <세월호 ‘기억하겠다는 약속’... 세월 따라 잊히는 건 아닐까>, 2022.04.16. & 한겨레 <세월호 그날부터 3년여... 현장서 겪은 ‘참사의 얼굴’ 일기로 적다>, 2022.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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