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가는 세상이 되길

『노 본스』를 읽고

by 나무엄마 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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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한 저녁 되세요 :)




가끔 이웃들과 함께 담소를 나누고 행복한 모습의 사진이나 풍경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곤 한다. ‘이런 게 세상 살아가는 맛이지’라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지금 소개하려는 책은 더불어 살아가는 것과는 조금은 동떨어진 세계를 말하지만 우리 사회와 비슷한 면이 많은 것 같다.


이 책은 창비출판사로부터 가제본을 받은 한 권의 책이다. 정성스럽게 봉투에 담아 보내 주신 편지에는 우리 사회의 분열을 우려하는 편집자의 글이 적혀 있었다. 종교와 신념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나와 다른 의견의 사람들을 ‘적’으로 얼마나 다르게 보고 나누어 버리는가.


이 이야기는 먼 전쟁의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에게도 언제든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6.25 전쟁이 있는데 이 전쟁은 인류 역사상 보기 드문 참혹한 전쟁이라고 한다. 이미 홍콩은 중국화가 되었다. 대만은 전쟁을 걱정하고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다르다며 대만은 절대 혼자 두지 않겠다고 한다. 최근 베이징 올림픽에서 중국의 소수민족 중 한 여성은 한국의 전통의상인 한복을 입고 나왔다. 한국은 중국과 미국의 어느 중간에 애매하게 위치하고 있다.


『노 본스』는 밀크맨으로 2018년 부커상을 수상한 애나 번스의 첫 번째 소설이다. 이 소설은 1969년 영국군이 처음 북아일랜드에 왔을 때부터 1994년 정전 선언 때까지, 벨파스트 안의 안도인이라는 작은 지역 공동체를 중심으로 일어난 이야기다.


트러블은 북아일랜드 독립투쟁을 둘러싼 혼란과 폭력이 이어진 시기를 뜻하는데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천천히 처절하게 파괴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국가의 폭력, 무장단체의 폭력, 학교 선생님들의 폭력, 학생 사이의 폭력, 가족 안에서의 폭력이 전쟁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모습을 투사한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내내 이상하리만큼 한국 사회, 한국 역사와도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게 영 어색하지 않았다.

『노 본스』는 소설에서 여러 가지 중의적 의미로 쓰이는데, 소설에서 ‘본’은 아도인에 있는 어떤 장소의 이름이기도 하고, 여러 차례 등장하는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라는 뜻의 숙어 ‘no bones about it’을 뜻하기도 한다. 또한 bones(뼈)는 이 소설에서 앙상한 몸, 욕구도 희망도 없는 인간의 몸, 섹슈얼리티가 거세된 몸을 뜻하기도 한다. 이 책은 다소 무겁지만 현 사회의 사람들을 투영하기도 해서 흥미롭게 읽혔다.


어린아이의 눈으로 본 전쟁 이야기는 너무 무겁지 않았고 낯설지도 않았다. 오히려 전쟁처럼 느껴지지 않아 편안하게 읽었다. 따뜻한 아버지와 어머니를 바라던 제임시는 부족한 부모의 사랑을 채우려는 듯 전쟁에 소용돌이에서도 옛 친척을 찾고 또 찾았다. 전쟁 중에 따뜻함을 느끼고 싶었는지 그는 그 친척들을 다시 찾아가는 길에 죽었다. 그 친척들은 처음에는 환대했지만 전쟁 통에 적군의 만행을 보고 제임시도 같은 적군으로 취급했다.


"제임시는 기분이 무척 들떴는데, 특히 무엇보다 출발하기 며칠 전에 어머니한테 들은 이야기 때문에 더욱 들떴다. _p.17 "제임시는 이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걱정, 혹은 처음에는 좋아하다가 자기가 뜻하지 않게 어떤 실수를 해서 좋아하지 않게 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하며 길을 나섰다." _p.18


"제임스 톤! 설마 외출하나?" 누군가 물었다. ......어젯밤에 스코트랜드 애들 셋이 죽은 거? "시내 밖으로 나가지 마" 제임시는 병영에서 나와 시내 중심가로 이모와 사촌들에게 줄 선물을 사러 갔다. _p. 37 "제임스 톤이에요. 들여보내 주실래요, 이모?" "아니 안돼. 가라. 넌 잉글랜드 놈이잖아. 이제 오지 마." 안쪽 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나고 이어 기도문을 웅얼거리는 소리가 났다. _p. 40


제임시는 비틀거리며 길을 따라 그 구역 중심부로 향했다. 말없이 따라가던 사람들이 제임시를 따라왔다. 그때까지 제임시는 '이모가 야박하게 말한 게 미안해서,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나를 안아주고, 다시 집으로 데려가려고 온 거라고.' 하지만 이모가 아니었다. 잿은 원숭이처럼 제임시 위에 올라탔다. 팔이 올라가고 칼이 들어가고 제임시는 물처럼 바닥에 쏟아졌다. 그의 생에 남은 15초의 시간 동안 흘러가는 구름을 보았다. 잿은 몸을 뒤져 시계를 손에 쥐고 달아났다. _p.41 사방에서 벌어지는 동기 없는 범죄 가운데 또 하나가 일어났을 뿐.


제임시는 왜 죽어야 했을까? 말문이 막혔다. 가족에게서 외로움을 느끼고 전쟁에서 점점 사악하게 변하는 자신을 보며 놀랐지만 그래도 옛 친척들을 찾으며 따뜻함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 제임시는 왜 꼭 저렇게 길바닥에서 죽었어야 했을까.


"그때 그 남자를 발견했다. 마치 아이처럼 조그만 남자였고 라이버러리 스트리트에서 비틀비틀 나오고 있었다. 술에 잔뜩 취했다. ...... 그는 "여보게들, 아이고 친구들......" 남자는 흐릿한 눈으로 담뱃진이 쩐 코트 소매를 젖은 입가에 갖다 대며 군인들을 올려다보았다. 군인들은 남자의 말을 막고 남자가 고개를 들 때마다 뺨을 휘갈겼다. 남자가 떠밀려서 바닥에 쓰러지자 누군가가 군홧발로 밀어서 다시 일으켜 세웠다. 제임시는 그렇게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이라는 걸 깨닫고 조금 놀랐다. 제임시는 자기가 그렇게 하는 걸 보았고 다른 군인들도 따라 하는 걸 보았다. _p.36 남자가 눈앞에서 죽어버리자, 일행 중 두 사람이 시신을 끌고 가 라이버러리 스트리트에 갖다 놓았다. 시신을 으슥한 곳에 엎어진 채로 두고 군인들은 칼과 칼집을 닦기 시작했으나 결국 굳이 그럴 필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_p.36


왜 저리 작은 체구의 코트를 입은 아저씨는 밤 늦은 위험한 저녁, 거리를 거닐며 잔뜩 술에 취해 걸어다녔을까. 왜 저 모습이 어느 독립군들을 묘사한 내용 같다는 생각이 드는지. 글을 읽는 내내 어색하지 않았다. 결국 이 아저씨는 군인들에게 폭행을 당해서 죽었다.

자다가 깬 제임시는 이 말에 먹먹했나 보다.


"......여보게들, 아이고 친구들......"


전쟁의 참상을 이렇게 담담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지금도 지구 어느 곳에서는 전쟁 중이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열심히 자신의 나라 이름을 걸고 경기에 임했던 체육인들은 다시 우크라이나로 향했다. 그리고 죽었다. 한국에 와서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했던 어느 우크라이나 음악가도 전쟁에 참여했다. 뉴욕 타임즈에서 우크라이나 남자들을 무참히 데리고 가서 죽이는 모습을 봤다. 우리나라와도 비슷해 보였다. 사실 전쟁통에 태어난 세대가 아니지만 영화나 드라마, 책들을 통해 그리고 서대문 역사박물관을 통해 나라 잃은 서러움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언제나 힘이 없는 사람들은 죽는다. 여성도 죽고 아이들도 죽는다. 언제나 이건 불변의 법칙이다. 그런데 전쟁에서만 죽는 건 아닌 것 같다.


이때도 학교에서 교사들은 상처를 주는 말을 했나 보다. 전 세계적으로 교사들은 평행선을 이루는 건가. 외국이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는 것인지...


"네 꼴 좀 봐라! 정말 지저분하구나! 대체 어떤 집 구석이길래......" _p.55


전쟁은 사람을 좀 먹는 것 같았다. 집안에서 먹을 것과 성관계를 동일시하며 폭발하듯 관계를 부끄럽지도 않은지 맺는다. 점점 전쟁이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건지. ISIS 대원들이 어린 십 대 여자아이들을 성 노리개로 여기고 마음대로 임신시키고 여성으로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남성들을 위해 청소하고 아이를 낳고 식사 준비하는 어린 청소년들을 뉴스에서 본 기억이 난다.


우리도 3.8선을 사이에 두고 휴전 중이다. 외국에서는 문화의 대중화로, 최근에는 배우 송강호가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타고 한국을 전 세계적으로 알렸으며, 방탄소년단, 싸이 등의 연예인들로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지만, 전쟁 중인 나라라 오기를 꺼리는 외국인들도 있다는 스토리를 미디어에서 들었다. 자칫하면 우리도 주한미군이 나가게 되면 홍콩처럼 변해버릴 수도 있을 것도 같다. 100% 단언할 수는 없지만 가능성을 100프로 배제할 수는 없다. 미중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오늘날 한반도가 재차 이 같은 운명에 처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중국이 대만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반면, 이들 지역에서의 전쟁에 일본과 미국이 한국의 동참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 입장에서는 중국에 대항한 완충지대 역할을 한국이 지정학적인 특성에 의해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도 나토가입을 추진한 이후 러시아와 나토 동맹국 간에 완충지대 역할을 하고 있다가 이런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으리라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우크라이나 남자들을 러시아 군인들이 총을 겨누고 빌딩 구석으로 몰고 가서 다 죽여 버렸다. 그 사실을 외국 신문사는 공유했다. 어느 나이가 지긋하신 우크라이나 아주머니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내 남편을 고문하고 러시아 군인들이 죽였다”는 고백을 한다. 우크라이나에서는 현재 여성들도 간강과 유린을 당한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로 알려졌다. 20대 여성의 자살률도 급증하고 있다. OECD의 2020 발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자살률은 OECD 평균 2배 이상이다. SNS에 악풀을 견디다 못해 자살한 유튜버들도 많고 나이든 노인들도 자살하고 청년들도 자살한다. 우리나라는 불명예스럽도록 자살률 1위다. 그래서 헬 조선이라 불리나보다. 헬_hell은 지옥을 뜻한다. 얼마나 살기가 각박하고 어렵고 삭막하면 지옥이라고 지금 살아가는 이 세상에 이름표를 이리 붙일까.


문화가 발전하는 만큼 사고의 수준도 함께 높아가야 하는데, 경제발전의 속도와 평행선을 이루며 높아져 가지는 않는 것 같다. 청군과 백군이 편을 나누고, 기독교인들조차 성소수자들을 인정하지 않는 듯 하다. 성경적 의미에서는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한 개인이 한 선택을 존중 만큼은 해줘야 하지 않을까. 그것만인가. 아이들을 낳고 혼자 키우는 여성들이 수치심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말도 서슴치 않게 하는 분들을 보며 우리가 누리는 이 윤택한 환경과 통념의 불일치를 느낄 때가 있다.


최소한 우리 주변은 유연한 사고로 상대를 이해하고 다름과 차이를 인정해주는 그런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게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살아가는 맛이 아닐까. 어머니가 예전 할어버지 때를 이야기해주실 때는 동네 사람들이 잔치를 하고 서로 음식을 나눠 먹고 맛있는 음식을 하면 동네 사람들을 불러서 잔치를 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이런 문화가 이젠 찾아보기 어렵고 사실 이런 문화가 어색할 때가 있다.


<노 본스> 책을 제공해주신 창비출판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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