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단거리 달리기가 가능하다!

배춧잎 세 장

by 나무엄마 지니


요즘 막둥이한테 푹 빠져서 막둥이 시점으로 식후 막둥이_반려견 타니와 함께 산책을 나간다. 오늘은 오전인데도 날이 더운지 금세 들어왔다. 드디어 내 시간이 되었다. 오랜만에 뒷산을 가기로 마음을 먹고 블루투스 이어폰을 챙겨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들으며 뒷산을 잠깐 올랐다. 그리고 요즘 미니멀리즘에 관심이 많이 생겨 에코 백을 챙겨 잠시 뒷산을 오른 후, 동네 시장으로 향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가는 길에 ATM기를 발견했고 ‘앗싸! 조~아!’ 라고 생각하며 만원 한 장을 뽑을까 싶었는데, '아니지... 두부도 사고 도토리묵도 한 두개 더 사오려면 혹 또 알아? 더 필요할까? 이 만원을 뽑을까? 아니지... 오늘 선심썼다. 배춧잎 세 장이닷! 지갑에 남겨서 만원은 넣고 다녀야지'라고 생각하고 블루투스 이어폰을 껴고 돈을 잘 챙겨서 생선가게로 향했다. 룰루랄라~ 오늘 내가 생각한 내 모습이었다. 아주 마음에 드는 하루의 시작인 거 같아서 내심 뿌듯하고 셀프 칭찬모드로 ‘잘했어. 아주 괜찮아~’ 라며 빠른 걸음을 재촉했다. 집에는 사람 막둥이가 점심밥을 기다리고 있으니 얼른 챙겨줘야지라는 마음으로.




DHA가 듬뿍든 고등어 한손을 샀다. 오늘은 왠일인지 젊은 사장언니가 머리와 꼬리를 안 떼어주고 덩어리채로 주며 "이렇게 먹어야 맛있던데요?"라고 말하셔서 '뭐 나는 쿨하니까 머리야 필요하면 과감히 가위로 잘라주지!'라고 생각하고 "좋아요~"라고 말하며 내 손바닥만한 지갑을 여는 순간!!!


내 지갑에 지폐가 없던 것이다. '아니 내가 뽑은 삼만원은 어디로 날라갔을까?'라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사장언니가 옆에 있어 “혹시... 카드 되나요?”라고 물으니 흔쾌히 된다 하셔서 눈물을 찔끔 흘리며 카드를 긁고 한 손에 생선을 들고 빠른 걸음을 재촉했다. 내가 향한 곳은 방금 전 들렀던 ATM기였다.


지나가는 길에 단골 할머니가 노상에서 호박과 정체불명의 이파리를 팔고 계셨다. "요거 얼마에요? 호박 하나 주세요. 호박 천원. 그럼 요 나물이 뭐에요? 기름나물? 헐... 기름나물???"


들어 본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기도 해서 "어찌 해서 먹어요?"라고 물어보니 할머니께서는 "된장에 고추장 조금에 갖은 양념을 해서 무쳐먹어봐~"라고 말씀하시며 할머니가 검정봉지에 한 웅큼을 더 담아주셨다. '갖은 양념.' 그래 어머니가 예전에 나물을 무칠 때 고추장과 된장으로 버무린 게 기억이 났다.




냅다 한손에 고등어 봉지를 묶고 에코 백에 호박과 기름나물을 넣고 빨리 걷기를 시작했다. 골목을 돌아 걸어가는데 점심시간인지 사람들이 빼곡이 골목길을 채웠다. 모자를 쓴게 다행이었다. '어?' ATM 기가 저 멀리 보이기 시작했다. 요즘 저질체력으로 오르막을 오를 때도 수십명을 다 보내고 천천히 오르는 내가 빨리 걷기 시작하다 냅다 뛰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다 삼만원 찾을 수도 있겠어. 뛰자. 뛰어~~' 열심히 뛰기를 시작했다.


잠깐 뛰다 목구멍까지 찬 숨을 내쉬다 빨리 걷다가 슈퍼 앞에 있는 앰뷸런스를 한번 쳐다보고 다시 뛰어 드디어 3만원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문을 들어선 순간...


내 삼만원은 어디에도 없었다. 혹여나 이어폰을 듣고 있어 돈뽑기 취소버튼을 눌렀을지 몰라 출금내역을 확인했다.


어? 어? 어?


삼만원은 이미 출금되었다.

'삼만원이면 내가 카페에 몇 번을 갈 돈이야. 시장가면 또 뭘 살수 있는데...

할머니네 가서 야채나 더 사올걸... 그럼 할머니는 집에 빨리 가실 수 있으셨을텐데...'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집을 재촉해서 갔다.




홈스쿨링을 하는 막내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니, 막내는 "집중할 때는 이어폰을 쓰지 말아야해요. 돈을 뽑을 때나 횡단보도를 건널 때나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아이 말이 맞았다. 그래서 앞으로는 중요할 때는 이어폰을 빼고 걸어야겠는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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