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

by 나무엄마 지니


<우리에게 절망할 권리가 없다>



과연 우리에게는 이 절망할 권리도 없는 것일까.


읽으려던 책을 뒤로하고 책장에서 노란 바탕의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이 시대에 희망을 말하는 자는 사기꾼이다. 그러나 절망을 설교하는 자는 개자식이다.”


항상 김누리 교수를 생각하면 ‘독일‘이라는 단어가 생각나고, 동시에 독일에 사는 지인들이 생각난다.


이 책을 들쳐보며 동시에 ’ 무례’라는 단어와 함께 ’ 방관자’라는 글이 조각처럼 하나씩 들어와 앉았다.


사람들은 고질적으로 병적인 것이 상대를 자신의 수준, 즉 자신이 살아온 환경에 의해서 판단하고 바라본다. 그래서 나는 꽤 사람들은 선별해서 만나고 불필요한 관계를 만들지 않으려 노력한다. 물론 필터링 없이 자신의 시선으로 판단하고 바라보며 말하는 그런 사람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도 그런 무례를 범할지 몰라서 자주 그럴 때마다 기도의 자리로 가려고 노력한다.


사람들이 책을 읽는 이유는 그래서 그런 생각을 떨어내고 중도를 걷기 위해 책을 읽고 바르게 바라보려 노력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꽤 전의 일인데,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초등 고학년에서 중학생으로 되어 보이는 어린 남학생들이 한 학생을 계속 툭툭 치는 걸 봤다. 우리 모두 버스에 앉아 있었지만 바로 옆에 서있던 남성도, 여성도 그들을 방관했다.


나?

나는 제일 뒷자리에서 그 녀석들을 사진 찍었다. 그런 것도 모르는지 그저 한 아이를 때리고 툭툭치고 빰을 치는 행동에 참..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잘못된 것인지, 저 아이는 왜 사지가 멀쩡해서 때리는 것을 하지 말라고 말을 못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그 아이의 항변은 분명 있을 것이다.


자녀가 웃는다고 다 웃는 게 아니고, 자녀가 괜찮다고 다 괜찮은 게 아니다. 옆에서 아이의 입장에서 자주 바라보고 또 바라보는 그런 어른들이 조금은 더 많은 세상이 되길 바란다.



오늘은 쉼이 있는 하루가 모두 되셨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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