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의 언어>

삶과 죽음의 사회사

by 나무엄마 지니


<자살의 언어>

: 삶과 죽음의 사회사



죽.음.

그리고

자.살.


어제 예배를 다녀왔다.

1년간 매주 빠지지 않고 가려고 한 예배가 있다.

어제 내 눈에도 막둥이 눈에도 보인 모습은 조금 낯설었다.

내가 막내와 자리를 바꿨고, 앞의 여성은 바스락거리는 봉투 소리에도 아주 예민하게 반응했고, 또 자리를 옮겼다가 또다시 제자리로 왔다가, 옆 함께 온 여성도 그녀와 비슷한 행동을 했다.

막내가 들은 또 다른 사람의 목소리는 내게 들리지 않았는데 그 또한 낯설었다고 한다.

내 뒤에도 있었지만, 차를 일찍 빼야 하는지 아니면 일찍 가야 하는지 목소리가 크고 조금은 날카롭지만 청량한 한 청년이라 나갈 때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는데 아무튼 어제는 꽤 낯선 소리들과 모습들이 들렸다.


.


선배가 이런 소리를 한 적이 있다.

“죽을 용기가 있으면 살아야 하는 거 아니야?“


.

.


할 이야기가 많지만 살 용기도, 죽을 용기도 그 모두도 다 힘들었다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남겨진 가족들은 꽤 힘든가 보다.

그래서 조금 더 용기를 내서 살아보면 어떨까 싶다.


누구든 다 힘들다.

뭐 잘 사는 사람도, 못 사는 사람도, 웃는 사람도, 우는 사람도 모두 양상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모두 힘들고 치열하게 열심히 사는 건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죽기까지 그 용기로 함 치열하게 살아보자는 생각을 해본다.


#장례식


나는 죽으면 장례식을 하지 말라고 했다.

부탁이지만 그 아주 겉치레가 심해서 그런 걸 하고 싶지 않고, 또 결혼식도 그리 한 걸 후회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나는 가족들에게 부탁했다.

멀리 뿌려달라고 :)


#종교 #죽음 #자살


예전에 고 000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데 ‘자살’이라는 단어를 쓰시며 그 사후는 우리가 정확히 알 수가 없다고 그게 잘못이다 잘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는 소리를 한 걸 들은 기억이 난다.


크리스천으로 죽음 이후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 그저 한순간 훅! 아니면 수십 번, 수백 번 생각한 그 결심을 끝까지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렇게 젊은 사람들부터 나이 든 사람들까지 무모한 두려운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이 돼야 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오늘도 무덥지만 즐거운 날, 감사한 날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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