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사람 요셉 이야기 <요셉의 회상>

프롤로그를 나누며

by 나무엄마 지니


<요셉의 회상> 이 책의 부제목은 ‘눈물의 사람’ 요셉 이야기다.

프롤로그를 보고 다시금 보게 되는 단어의 조합이다.


‘톨레도트‘라는 단어를 처음 본다.

톨레도트는 족보, 계보라는 뜻으로 마태복음 앞 장을 보면 무지막지한 사람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다. 그 끝은 예수님이다.



요셉과 예술 작품이 이렇게 많이 연결되었는지는 전혀 몰랐다.

문학 작품은 괴테를 필두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토마스 만, 그리고 바로크 시대 작곡가 헨델, 그 외에도 시각 예술 작가인 프랑스 화가 귓타브 도레 등이 있다고 한다.


지금과 요셉 이야기의 간극은 꽤 많이 넓다.

천년에서 삼천 년 까지.


성경을 읽으며 까막눈으로 성경에 쓰인 글을 읽었어도 이렇게 기도한 적이 없다.

앞으로는 성경을 더 이해하게 해달라고 읽기 전에 기도하고 읽어야겠다.


발췌글을 빌리자면,

“성경을 읽기 전에 잘 깨닫게 해 달라는 기도가 중요하다. 하지만 학생이 공부는 하지 않고 펑펑 놀다가 철야 기도를 했다고 해서 좋은 성적이 나올 수 없듯, 몇 달 전에 기록된 글처럼 요셉 이야기를 읽어서는 말씀의 온전한 이해에 도달하기가 요원하다.”


교회 생활도 밀접하게, 밀착하여하지 않은 1인이라 그런지 새로운 내용이 많은데, 다시 발췌글을 인용하자면,

“창세게 37-50장은 요셉을 ‘꿈의 사람‘으로 소개하거나 성공을 위해 꿈과 비전을 가지라고 권한 적이 없다. 그런데 한국 교회 강단에서는 어찌하여 허구한 날 그 소리인가.”


저자가 말한 교회 강단에서의 허구한 날 그 소리란 “요셉을 내세워 성경과 무관한 성공 이데올로기를 강요하고 있다”고 언급한다.


“요셉은 늘 자기가 꾼 꿈이나 비전이 아니라 하나님을 강조했다. 하나님이 악을 선으로 바꿔 주셨고, (형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먼저 이집트로 보냈다고 고백했다.”


저자는 요셉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는데,

“요셉은 현대를 사는 보통 사람들처럼 평생 하나님을 보지도, 그 음성을 듣지도 못했다.“


하나님을 보지 못한 건 나도 마찬가지고 평범한 보통 사람들도 마찬가지 일 것 같다.

그런데 환상을 보고, 들은 게 있고, 기이한 1번의 체험은 어떻게 나 스스로 설명해야 하는 것일까.


교인들에게 하는 저자가 하는 뼈 때리는 말이 있는데 발췌글을 인용하자면,

“소위 예배만 안 빠지고 헌금과 봉사만 잘한다고 좋은 신앙인이 될 수 있는 게 아님을, 하나님은 일상에서 성과 속의 이원론적 가치관을 깨고 다양한 영역을 책임질 사람으로 사용하기 위해 우릴 부르셨다는 사실을 알리는 데 이 책이 기여되길 바란다“라고 말한다.



매번 매 순간 정치는 국민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정치는 그다지 관심이 없지만, 정권이 바뀐 지금의 중요한 시기에 요셉과 같은 정치인이 이 나라를, 그리고 이 세계를 다스리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밑줄을 진하게 친 프롤로그 글을 발췌한다.


”요셉의 시선은 언제나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유업으로 주겠다고 약속하신 가나안에 고정돼 있었고, 하나님이 온 세상을 다스린다는 선명한 역사 의식을 잃지 않았다.“


눈물도 한없이 흘렸을 것 같은 억울한 삶을 하나님과 동행한 요셉은 ”요셉의 바름이 생명을 살리고 용서와 화합을 일구어 냈다“고 말하니 이 책의 프롤로그를 읽는데 나누지 않을 수가 없어서 이렇게 본문을 읽기 전에 나누게 된다.


자주 읽고 기도하고 또 성령의 인도하심을 바라고 기대해야 하는데, 거의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제도 예배당에서 두 손을 모으고 아이들을 위한 기도만 하다가 또 ’아차! 하나님이 내게 주신 그 뜻을 해석하고 이해하길 바란다‘라고 기도했고 여전히 지금도 이 글을 쓰며 한다.


오늘도 무덥지만 행복하고 감사하길 바랄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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