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북도슨트 임리나 Sep 15. 2020

하나만 뗄까요? 두개 다 뗄까요?

슬기로운 환자생활 14

하나만 뗄까요? 두개 다 뗄까요?

의사는 마치 금방이라도 혹부리 영감에게서 노래를 잘하게 해주는 혹을 떼어갈 도깨비처럼 묻고 있었고, 나는 그 앞에서 어떤 대답을 해야 목숨을 살리고 혹만 뗄지 떨고 있는 혹부리 영감처럼 앉아 있었다.


암수술을 위한 입원 검사를 하던 중에 어느 날 담당 의사가 와서는 난소쪽에 물혹이 크기가 크다며 이번에 수술을 하는 김에 같이 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 당시에는 암수술이 훨씬 더 큰 일이라 생각해서 난소의 혹은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고 의사 말대로 한번의 수술로 다 없애면 좋겠다는 1+1같은 느낌으로 알았다고 했다  

아마도 직장과 난소 등은 아주 가까이 있었고 전이여부를 검사하다 보니 물혹이 발견된 모양이었다  


난소쪽이라 산부인과에 협진을 내겠다고 했고 산부인과 외래를 잡아 주었다.


보통 입원 환자에게는 외래 환자보다 편한 점이 따로 예약을 하지 않아도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라 편한 마음으로 안내 받은 산부인과에서 진료를 기다리는데 정말 대기가 어마어마했다.

그러다 결국에는 외래 시간이 끝나고 몇 군데 출구의 셔터가 닫힌 후까지도 진료가 계속 되었다.

"슬기로운 환자 생활"에서 산부인과 앞에서 엄청난 대기를 하던 상황과 비슷했다.


그렇게 오랜 대기를 한 후에 들어갔더니 의사는 빠른 말로 간단하게 설명을 하고는 왼쪽 난소에 물혹이 있는데 한쪽만 뗄 건지 양쪽을 다 뗄 건지 물었다.


그 순간 어찌나 당황스러웠던지 왼쪽 난소에 혹이 있다는 얘기만 듣고 간 상태에서 한쪽만 뗄지 두개를 다 뗄지 결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내가 기다린 것만큼 내 뒤로 누가 기다린다고 생각하니 나는 빨리 대답해야 한다는 압박도  느끼고 있었다.


나는 그냥 도식적으로 생각했다. 왼쪽에 물혹이 있으니 왼쪽만 떼면 되는 게 아닌가....하고 말이다.

마침 그 때 의사가 말했다.

한쪽만 떼는 게 표준 치료입니다.

마치 내 선택이 잘한 선택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은 얘기를 들으며 그렇게 나는 난소 두개 중 하나를 남기는 결정을 순식간에 하게 되었다  


장차 이게 얼마나 중요한 결정일지는 모르나 불과 몇 분만에 나는 이런 결정을 해야 하는 이유는 나에게 할당된 진료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데 있다고 생각했다.


고질적으로 의사들이 1인당 환자를 보는 진료 시간이 짧다는 것은 매스컴을 통해 많이 들어봤고 실제 병원에서도 체감하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환자의 입장에서는 그 짧은 시간에 아무 사전 정보도 없이 들어갔다가 듣는 얘기는 엄청나게 충격적이거나 어려운 이야기였고 또 나처럼 이런 결정을 해야 하게 되면 정말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진료 시간이 짧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암환자의 슬기로운 병원생활(저자 김범석) 이라는 책을 읽어보니 의사가 환자를 만날 때만이 아니라 환자를 만나기 전에 엄청난 자료로 환자를 이미 진료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읽고나서야 의사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얼마나 많은 자료를 토대로 나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때론 진료를 받으러 들어가면 의사가 얼굴은 안보고 컴퓨터만 들여다 보며 얘기한다고 환자에게 관심 없는 의사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그 글을 읽고 생각하니 의사는 열심히 내 자료를 보며 중요한 얘기를 했던 게 아닌가 싶었다.


얼마 전 동네 병원에 가서 아직도 수술 후 말끔히 낫지 않고 불편한 증상이 있다고 하자 의사는 나에게 수술명을 아냐고 했다. 그래서 내가 모른다고 하자 의사는 내가 전에 가져갔던 소견서에서 수술명을 찾아내서는 정확히 내가 어떤 수술을 했는지 설명을 해주었다.

그 수술명은 보통 일반인들이 말하는 암수술, 절제술, 이런 이름이 아닌 ‘복강경하 저위전방절제술’이라는 다소 어려운 이름이었는데 그 이름 하나만 보고도 의사는 나에게 상세한 설명을 해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때 다시 한번 느꼈지만 의사는 언제나 객과적인 자료를 토대로 말하고 그렇게 환자를 파악하기 위해 환자를 만나지 않는 시간에 상당히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진료 시간이 짧다는 건 '대면 의료'가 짧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그 대면을 위해 의사가 자료를 보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많은 '비대면진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2-3시간 기다려 진료실에 들어간 나에게 대뜸 '하나만 뗄래요? 두개 따 뗄래요?'라고 말하기까지 몇 명의 의사들이 내 자료를 본 것일까, 그 자료를 보며 수술이란 판단을 내리기까지 몇 명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한 것일까....그런 생각을 하니 당황스러웠던 그 순간이 이해가 되었다.


수술 전날까지 따로 산부인과에서 수술동의서를 쓰면서도 워낙 암을 걱정하느라 난소가 하나가 있든 다 없든 무슨 상관이라 싶었지만 막상 수술이 끝나고 나니 이렇게 수술 한번 하는 게 힘들다면 이왕 떼는 거 두 개 다 뗄 걸 하는 후회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야 수술을 할 떼는 범위를 넓게 잡는 게 재발 방지를 위해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나에게 있어 이제 난소가 굳이 없어도 되는 상황이니 그냥 깔끔하게 다 자르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


나와 요양병원에서 방을 같이 쓰던 k도 의사가 유방을 어느 정도 절제할지 결정하라고 했는데 양쪽 다 전절제를 했는데 그 당시는 정말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막상 수술 후 항암치료도 안하게 되자 그 결정이 잘한 결정이라고 했다  


환자로서 많은 정보 없이 결정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 상황에서 조금 더 본인을 위한 결정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그러기 위해서는 여전히 의사의 설명이 많이 필요한 게 현실이다) 오늘도  밤잠을 아끼며 환자의 ‘비대면 진료’ 하고 있는 의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암이 무서울까? 코로나가 무서울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