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암?
나도 암에 대해 막연히만 알고 있을 때는 암환자에 대한 이미지는 머리카락이 빠지고 비니를 쓴 모습이 있었다.
내가 암진단을 받았을 때도 앞으로 내 이미지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고 입원을 하기 전에 미장원에 가서 긴 머리를 단발로 잘랐다.
나는 처음에 머리를 자를 생각을 못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입원하기 전에 머리카락을 자르는 게 좋다는 조언을 해주었기에 '지금 이 상황에서 암이 문제지, 머리카락이 문젠가'라고 생각하며 주저없이 잘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암에 걸려 머리카락이 빠지는 게 아니라 '항암치료' 때문에 머리카락이 빠지는 거다.
그렇다면 암에 걸려도 항암치료를 안하면 머리카락이 안빠지는 것인가? 라고 묻는다면 대답은 그렇다, 이다.
그런데 암에 걸리면 대부분은 항암치료를 하기 때문에 암환자=머리카락 빠짐이 이미지로 자리잡은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하나 더 모든 항암치료가 머리카락이 빠지는 게 아니다. 내가 알기로는 독한 약일수록 머리카락이 빠진다고 하는데 유방암은 항암치료약이 독하기로 유명해서 100% 머리카락이 빠진다고 했다
내가 있는 요양병원에서도 머리카락이 없으면 유방암, 아니면 다른 암환자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지금 나는 항암치료도 안하고 살만해지니 또 머리카락을 자른 게 후회가 되기도 했다.
그 이유는 단순히 머리카락이 아까워서도 내 헤어스타일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 아니다.
정말 항암치료를 하게 되어 어쩔 수 없이 빠질 때까지 긴머리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누리는 게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Y는 내가 요양 병원에 입원해 있을 당시 내가 많이 기력을 회복한 후에 입원했다. 그래서 나는 Y가 입원한 것을 알고는 누군가 궁금해서 병실에 일부러 가보기도 했다.
나도 그랬지만 요양병원에 입원하며 '혹시 내가 잘 지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안고 들어오기 마련이었다. 요양병원이란 단어가 주는 느낌 때문에 가족이 아닌 낯선 타인들과 장시간 생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외로움, 불안함, 두려움으로 마음이 복잡한 상태다
그러나 막상 생활해 보면 같은 환자들끼리 의지하고 정보도 얻고 또 상태가 조금 나은 사람이 더 안좋은 사람을 챙기며 지내는 분위기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기숙사'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학교 대신 병원을 다니는 것만 다를 뿐.
요양병원에서 한달남짓 지내면서 초반에 내가 다른 환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았는지 깨닫게 되었다. 특히 같은 방에 묵었던 K는 처음 본병원에서 요양병원으로 오게 되면 수술 직후인데다가 본병원에서 잠을 못잔 탓에 잠만 자게 된다며 최대한 나의 수면을 방해하지 않도록 배려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컨디션이 좋아지면서 나보다 상태가 안좋은 환자들을 챙기게 되었는데 평소에는 먼저 다가가 말을 걸지 않는 스타일인데 Y가 입원을 했을 때는 내가 처음 입원했을 때 배려를 받았던 것처럼 Y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고 어떤 암인지 또 어떤 과정으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물어보고 얘기를 듣게 되었다.
이제 갓 마흔이 된 Y는 자궁암인데 두 종류의 암이었고 수술 후 퇴원을 한 후에 배에 복수가 차서 응급실에 가서 다시 입원을 하고 치료를 받고 퇴원했다고 했다
그리고 Y는 두려움이 많았는데 주사 바늘이 닿지도 않았는데 벌벌 떤다거나 특히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을 가장 많이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도 한달 차 풍월을 읊는다고 유방암이 아니니 머리카락이 안빠질 거라 했는데 Y말로는 의사선생님이 머리카락이 빠질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 항암치료 후 2주째 접어들고 있는데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항암치료후 보통 일주일 후에 머리카락이 급격히 빠진다고 하는데....
우리는 Y에게 안빠질 수도 있지 않겠냐며 당장이라도 마음 편히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희망적으로 얘기했다.
Y뿐만이 아니었다
여성전용 병원이라 유방암 환자가 많았고 머리카락이 없는 환자들도 많아서 머리카락에 관한 얘기를 정말 많이 했다. 처음에는 내 눈에 보기엔 다 비슷한 건 같은데 만나기만 하면 서로에게 머리카락이 많이 자랐다는 둥, 머리카락이 이쁘게 자라고 있다는 둥 건강 상태보다 머리카락 상태를 얘기하기 바빴다.
그러다 어느 날 누군가 나에게 '흰머리가 잘 어울린다'고 했다가 '난 흰머리가 싫다'고 장장 연설을 했는데 이제 와서는 후회가 된다.
아마 그 사람들은 내 흰머리조차 부러웠을텐데...나는 사치스런 불평불만을 그들에게 했던 셈이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머리카락이 없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어떤 상황인지 잘 못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머리카락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으로 불편한 시선이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되자 암치료만큼이나 머리카락이 신경쓰이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어느 날 임신해서 유방암에 걸린 걸 알고 출산 후에 수술하고 항암치료를 한 30대로 가장 어렸던 S가
나 이제 장애인 심정을 이해할 것 같아. 어느 날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빤히 쳐다보고 간다. 머리카락 없는 것 뿐인데 왜 그렇게 쳐다 보는지 모르겠어.
라는 얘기를 들었던 것과 또 결정적인 건 친해지게 되서 그들과 카톡 친구를 맺고 프로필을 보았을 때 긴머리의 그들을 보게 되었는데 지금보다 백배는 에쁜 모습이라 나 혼자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이렇게 빛나고 예쁘던 사람들이 어쩌다 암에 걸려서 여기 와서.......!
머리카락이 길다는 건 단순히 여성다움이 아니라 갖는 의미가 너무 많다.
누군가에게 머리를 자른다는 건 헤어스타일을 바꾸려는 선택의 문제일 수 있지만 암환자에겐 기르고 싶어도 못기르는 이제는 잃어버린 '애도'해야할 대상이었던 것이다.
Y는 3주가 되도록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손으로 머리카락을 빗어보니 너무 많이 빠진다며 걱정되서 여기 저기 묻고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나도 지금 보통 그 정도는 빠진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Y는 안심이 안되었는지 간호사에게 물어보러 갔는데 간호사도 뾰족한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나는 Y의 머리가 빠지지 않기를 바라며 퇴원을 했다.
며칠 전 아이가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를 자르겠다고 했다.
절대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겠다는 애가 왠일인가 싶었는데 다음 날 미용실을 가자고 하는 것보니 진짜인가보다 싶어서 미용실을 가기 전에 아이에게 설명을 해줬다.
"너 머리카락을 자르면 아파서 머리카락이 없는 아이들에게 기부할래?"
그랬더니 선뜻 그러겠다고 했다.
미용실에 가서 사정을 얘기하고 머리카락을 담아갈 수 있게 고무줄로 묶어 잘라달라고 했더니 좋은 일을 한다고 아이에게 칭찬을 했다.
그러나 막상 아이 머리카락을 자르는데 왜 내가 만감이 교차하던지...
아이는 신이 나서 머리카락을 자르고 이제는 머리가 짧아서 덥지 않다고도 했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기부처에 보낼 편지도 썼다.
아이답게 '내가 힘들게 길러서 잘랐으니까 잘 써줘'라고...
그리고 시잔도 찍었다.
문제는 다음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자기 머리카락 돌려달라고 울기 시작하는 거였다.
예전 머리카락이 그립다고.
나는 아이를 최대한 달래고 착한 일을 해서 산타 할아버지가 올해는 큰 선물을 해줄 거라고 무엇이 받고 싶은지 물어보며 진정을 시켰다.
그런데 또 다시 저녁이 되자 아이는 머리카락이 길었을 때가 좋은 것 같다며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 말이
엄마, 엄마가 머리 빗겨주고 고불고불한 것도 해주고 그런 게 그리워.
그 말엔 나도 눈물이 났다.
나도 매일 아침 정성들여 아이 머리를 묶어주고 따주고 했었는데....
그러면서도 드는 생각은 건강한 아이가 머리카락을 잘라도 부모 마음이 이런데 만약에 아이가 아파서 머리카락이 빠지면 부모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싶었다.
아이의 머리카락은 시간이 지나면 자랄 것이다.
나는 아이에게 머리카락이 자라면 꼭 다시 빗겨주고 꼬물꼬불한 머리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다행히 아이는 그 날 이후로는 머리카락이 그립다고 울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는 아이가 자신의 선행을 후회하지 않도록 주변 사람들에게 아이가 왜 머리카락을 잘랐는지 설명했다. 아직 어린 아이다. 본인의 온전한 생각으로 선행을 실천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번에 깨달았지만 선행도 연습과 경험이 필요하다는 거다.
머리카락을 부치러 우체국에 갔더니 내용물을 묻길래 머리카락을 기부하기 위해 보낸다고 하니 우체국 박스값을 받지 않으셨다.
아이가 울면서 한 말 중에 이런 말도 있었다.
엄마 좋은 일을 하는데 힘들어.
머리카락이 상징하는 건 단순히 아름다움만이 아니다. 건강함과 자신의 자유의지도 포함되어 있는게 아닐까.
Y는 의사의 말대로 본인이 걱정하는대로 머리카락이 빠졌고 삭발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암환자들이 항암치료로 빠진 머리카락이 빨리 다시 자라나기를, 우리 아이의 머리카락도 빨리 자라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도 아이 머리카락이 자라는 동안 건강해서 다시 아이의 머리카락을 빗겨주고 따주고 묶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