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에 걸리면 살이 빠지나요?

내가 암?

by 북도슨트 임리나
암에 걸리면 살이 빠지나요?


나는 최근에 살이 많이 빠졌다.

흔히 암에 걸리면 살이 빠진다고 하는데 사람에 따라서는 체중 변화가 없는 사람도 있으므로 꼭 그런 것만은 아닐 수도 있지만 나의 경우는 보는 사람들마다 살이 빠졌다고 한 마디 할 정도로 눈에 보이는 변화도 큰 것 같다. 현재까지 약 6-7kg의 변화로 만약에 3달 정도 다이어트를 한다면 얻을 수 있는 효과와 비슷한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살 빠짐=암'이렇게 바로 대입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여자에게는 '평생 다이어트'라고 할 정도로 살에 대해 민감하니까 살이 좀 빠지더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쉽다.

심지어 '내가 요즘 좀 덜 먹어서 빠졌나? 운동해서 빠졌나? 신경 쓰는 일이 많아서 빠졌나?'이렇게 원인 분석도 다양하다


더구나 체중변화가 바로 다음 날 6-7킬로가 빠지는 게 아니라 한 달에 2-3킬로의 변화를 심각하게 생각할 사람도 드물 것이고 6개월에 5킬로 정도가 빠진다 하더라도 스스로 암을 원인으로 생각하기 어렵다.

나도 암 진단을 받고 나서야 '그래서 빠졌나?'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실제로 암으로 진단받기 전부터 진료를 받기 위해 여러 문진표를 작성할 때 꼭 빠지지 않고 나오는 질문에 최근에 체중변화가 있었냐는 것이다.

아마 그만큼 체중변화를 신체의 큰 변화로 측정할 수 있는 모양인데 문제는 스스로가 체중의 변화를 암과 연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심지어 살이 빠진다는 것은 성인에게는 상당히 긍정적인 신호로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는 '살 빠져서 보기 좋다.'라는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물론 내막을 아는 사람들은 정반대로 안쓰럽게 본다. ‘에고 살이 이렇게 빠지다니...'라고 말이다.


이렇다 보니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었다.


아마 내가 암 진단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내가 암이라는 건 남편밖에 모르던 그 시점이었고 나는 심적인 타격으로 정신이 없을 때이기도 했다.

외출에서 돌아와 집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아마 그날도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었을 것이다.


"살이 빠져서 보기 좋네요."

라며 다른 층 남자가 말을 걸었다.

보통 때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도 인사만 하고 지내는 정도였는데 그 날따라 나한테 말을 거는 게 아닌가. 친하지는 않지만 그 집 아내와 딸 둘은 자주 인사하고 몇 마디 대화도 하는 사이이기는 했다.


"네. 요즘 살이 좀 빠졌어요."

라고 대답하니 그 남자는 대뜸

"부러워요. 저 오늘 의사한테 시한부 선고받았어요."

라고 말을 하는 게 아닌가.


순간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시한부 선고라면 나보다 심각한 건가? 그런데 웃으며 얘기하는 거 보니 농담인가....'

막상 내가 암에 걸리고 보니 그 남자의 말이 농담이라기보다는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어 되물었다.


"시한부요???"

"네. 오늘 정기검진 갔었는데요. 의사가 더 살찌면 위험하다며 약을 한 봉지 처방해 주며 막 협박을 하는 거예요."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되었다.

그 남자는 정기검진을 가서 당뇨나 고혈압에 대해 경고 내지는 고위험군이란 얘기를 들었을 테고 최근에 살이 쪄서 자신의 건강이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나를 만났는데 살이 빠진 모습을 보고 내 건강 상태는 자신에 비해 좋다고 생각되어 내게 말을 걸었던 것이다. 심지어 살이 빠진 내가 부럽기도 했을 것이다. 내가 암환자라는 걸 그 남자는 상상도 못 하고 나에게 가볍게 신세한탄을 한 것이리라.


그럴 만도 했다.

성인이 된 후로 살이 찌면 안 된다는 얘기를 거의 세뇌당하듯이 들어왔고 살이 찌면 당뇨나 고혈압을 걱정해야 하고 주위에 그로 인해 체중 조절하는 사람을 얼마나 많이 봐왔던가.


그러니 살이 빠진 사람을 보고 '저 사람 암인가?'라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나는 그 남자와 대화를 하고 있는 상황이 갑자기 재미있어졌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상태를 모르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 사람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모르지만 당장 낼모레 수술을 해야 하는 나보다는 덜 심각하지 않을까 추측할 뿐이었다.


그 남자는 나보다 낮은 층에 살아서 엘리베이터에서 먼저 내리는데 나는 마지막 인사도 잊지 않았다.


"건강 조심하세요."

라고 말이다.


난 그 상황에서 기분 나쁘기보다 웃음이 나왔다. 그 당시 여러 가지로 심란하던 때에 한 번이라도 웃을 기회를 얻은 게 아닌가 싶었다. 물론 그 남자도 나도 건강을 조심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정말 별다른 노력 없이 살이 빠진다면 기뻐할 게 아니라 한 번쯤은 건강 상태를 의심해봐야 하는데도 참 어리석게도 기뻐했다.


그런데 지금 나도 그렇다.

수술하고 제대로 먹지 못하고 지금도 평소보다 1/2를 먹고 있어서인지 살이 좀 더 빠지는 것 같은데 속으로는 좋아하고 있다.

이 정도로 유지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우리는 '균형'. '적당함'보다 '보기 좋음'에 속고 사는 건 아닐까.

보기 좋다는 게 꼭 '적당한'상태가 아닌데도 말이다.


나는 오늘도 ‘건강’과 ‘식욕’ 사이에서 갈등하며 ‘건강’을 선택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 남자가 걱정했던 이유는 내가 엘리베이터에서 자주 마주쳤던 그 아내와 딸 둘 때문일 것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겠고 나 또한 우리 가족을 위해 ‘건강’을 지켜야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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