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일까?
나는 누구일까?-어른이 된 나는 어떤 모습일까?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는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의 대사이지만 이처럼 자기 자신에 대한 고뇌를 잘 표현한 말이 또 있을까 싶다. 우리는 살면서 ‘나 자신’에 대해서 참 많이 고민하기도 하고 청소년기의 과제를 ‘자아정체성(Identity)’ 확립이라고도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막연히 어른이 되면 자기 자신에 대해 명확히 알겠지, 혹은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아는 것이 어른이 되는 것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나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언젠가는 나 자신에 대해 잘 알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지냈던 것 같다. 막연히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나 자신에 대해 잘 아는 날이 오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이 기준으로 생각하기도 했던 것 같다. 마흔이 되면? 쉰이 되면? 예순이 되면? 하고 말이다.
그럼에도 늘 결론은 ‘아직 나를 잘 모르겠다’였다.
왜 그럴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답을 찾은 것 같다.
<나는 누구일까?> 이 책은 다소 알쏭달쏭한 까망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까망이는 자기 자신에 대해 가장 궁금해하면서 친구들을 보는데 고양이는 발바닥이 푹신푹신하고 부드럽고 얼룩말은 줄무늬가 근사해서 얼굴에 그려 보고 벌새의 깃털이 부럽고 자기 자신이 어떤 좋은 점이 있을까 볼 수 있는 나무에게 들을 수 있는 나비에게 말할 수 있는 파도에게 물었으나 결국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했다. 마침 그때 황금 열쇠를 가진 새 한 마리가 날아와 까망이에게 갖다 대자 보물 상자가 열린다.
까망이는 다름 아닌 열쇠구멍이었던 것이다.
열쇠구멍이 없으면 아무리 상자 안에 보물이 많아도 까망이가 없으면 열 수 없었던 것이다. 까망이는 그냥 작고 까만 아이가 아니라 가슴에 보물을 가득 품은 아이였던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다 읽고 보면 표지의 그림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정체 모를 그 그림은 열쇠 구멍이었던 것이고 열쇠 구멍 속에 온갖 보물들이 그려져 있는 것이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고 참 좋았던 게 내가 <열쇠 구멍>이란 걸 깨닫는 건데 그 열쇠 구멍이란 것이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연결 통로’라는 것이었다.
‘내가 누구인지?’를 고민할 때 남들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뭘 잘하고 뭘 못하고 어디서 태어났고 지금 뭘 하고 있고 등등을 생각하는데 이 책을 읽고 나 자신이 독립적인 존재일 수도 있지만 어떤 연결 통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주 큰 발상의 전환이었다.
나도 내가 누구인지를 고민하면서 한 번도 어딘가와 연결된 존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는데 막상 이 글을 읽고 나니 내가 어딘가를 연결해주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10년 가까이 수많은 여자들의 연애와 결혼 상담을 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나를 통로로 해서 연애와 결혼이란 보물을 얻어간 것이 아닐까. 또 지금 나는 아이를 키우며 부모의 세대와 아이 세대의 중간의 연결 통로가 된 느낌이다. 어쩌면 우리의 존재 의미는 홀로 존재하는 것만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특히 엄마가 되었을 때 ‘누구 엄마’는 의미가 없고 ‘나’를 잃었고 ‘나’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누구 엄마’라는 건 내가 만들었다기보다 아이가 나에게 붙여준 이름이란 생각이 든다. 아이가 없었다면 얻어질 수 없는 소중한 이름이다. ‘누구 엄마’라는 것도 또 하나의 나의 이름인 것이다. 아이라는 건 나란 통로를 통해 얻은 보물이 아닐까.
결혼을 했을 때 어쩌면 어색하지만 새로 얻은 이름들 ‘며느리’, ‘외숙모’, ‘작은 엄마’, ‘새언니’ 등등 마치 내가 아닌 듯 어색했지만 그것 또한 나와 타인과 관계들로 내게 주어진 이름이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어쩌면 이렇게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알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타인들에게 그렇게 조금씩 자기 모습을 투영시켜가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또 하나 깨달은 건 ‘나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은 평생 하게 되는 것이라는 것. 어른이 된다고 ‘나는 누구일까?’의 답을 못 찾았다고 자책할 필요가 없는 게 나이가 들면서 상황이 바뀌면서 ‘나는 누구일까?’란 대답도 바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이였을 때, 청소년이었을 때, 대학생이었을 때, 직장인이 되었을 때, 결혼했을 때, 아이가 있을 때 그때마다 답이 다른 것이었는데 꼭 하나의 답을 찾으려 하니 ‘답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진짜 어른이 된다는 건 ‘나를 아는 것’이 아니라 때와 상황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또 나 혼자만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정의될 수 있다는 것을 알 때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내 주변의 사람들이 한없이 소중한 보물이 아닐까.
다시 한번 내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보내본다. 나는 그들을 연결하는 ‘열쇠 구멍’이니까.
<나는 누구일까?>
저자: 박상은 출판사: 현북스, 2013
제2회 앤서니 브라운 신인작가 공모전 수상작으로 독특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이야기와 과감한 컬러의 그림이 어우러진 멋진 작품이다.
특히 열쇠 구멍이 캐릭터가 될 수 있다는 건 작가의 정말 독특한 생각이 아닐까? 그래서 처음에 까망이를 보았을 때는 누구라도 ‘열쇠 구멍’이라는 것을 생각하기 어렵다.
그래서 진짜 까망이의 생각처럼 과연 까망이가 누굴까? 궁금하다.
그렇게 까망이의 모험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도 까망이가 누군지를 알게 된다.
작가는 장애를 겪고 있는 아이들을 수업에서 만나며 ‘넌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야’를 알려주고 싶었다고 한다. 겉보기에 화려한 친구들 속에서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까망이가 결국은 자신의 속에 보물이 있었다는 깨닫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