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그
그러그-어른이 되면 첫 번째 걱정은 ‘내 집 장만?’
뉴스를 보면 연일 ‘집값’이 중요한 이슈가 된다. 지금 집을 살 때인가, 팔 때인가 혹은 천정부지로 오른다는 ‘서울 집값’ 이야기 등등. 또 나이가 드니 친구들 사이에서도 부동산은 중요한 화제가 된다.
미혼일 때 먼저 결혼한 친구들의 아파트를 주제로 한 대화를 들으며 ‘대학 다닐 때 우리 이런 얘기 안 했는데…’라고 생각하며 친구들이 결혼하더니 속물처럼 변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살아보니 ‘집’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어렸을 때는 몰랐다. ‘집’이란 단어가 가지는 무게감을. 물론 어렸을 때도 집 문제로 고생을 한 사람들도 많이 있겠지만 집이란 부모의 책임이기 때문에 어른이 되어 느끼는 압박감과는 좀 다를 것이라 생각된다.
집에서 부모님과 생활하다가 대학을 집에서 다닐 수 없는 먼 곳으로 간다면, 그 후 취업을 멀리 있는 곳에 한다면, 또 결혼을 하게 된다면 우리는 ‘주거지’에 대한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아무리 혼자라도 인간에게는 내 한 몸 뉘일 공간이 필요하다.
부모 밑에 있던 어린 시절에는 몰랐지만 부모를 떠나 따로 방을 구하게 되면 ‘집’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된다. 생각지도 못한 전기세, 수도세, 가스세, 관리비 등에 대해서 놀라게 된다. 들어가는 비용도 많고 또 관리할 일도 많다.
그러나 또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게 되면 단순히 혼자 살 때와 달리 집은 정말 중요한 문제가 된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집이 있다면야 걱정할 게 없겠지만 스스로 집을 해결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일단 걱정이 앞서는 게 현실이다. 현실적으로 서울에 집을 산다는 건 일반 시민에게는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그런 와중에 또 아이가 생기면 집은 단순히 집이 아니라 어떤 학교와 가까운가 하는 ‘학군’도 중요해진다.
이렇듯 집에 대해서 현실적으로 느끼게 되면 조금 더 일찍 집값이 쌌을 때 집을 사지 못한 자신의 무지함과 무능력에 한탄을 하게 된다.
물론 집이 소유가 아니라 렌털의 개념이고 요즘 같은 세상에 굳이 집을 살 필요가 있냐는 말도 있지만 월세나 전세를 경험하게 되면 ‘내 집’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게 된다.
남편과 이사에 대해서 상의를 할 때 어렸을 때 ‘전세’를 살아봤는데 ‘전세’는 싫다고 좁더라도 본인의 집에 살고 싶다는 얘기를 들으며 ‘내 집’이라는 건 다시 한번 중요한 의미라는 걸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집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
란 가사처럼 ‘안락함’, 나를 비롯하여 내 가족이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가장 큰 의미일까?
그러나 ‘그러그’라는 책을 본 순간 나는 ‘집’에 대해서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호주의 국민 그림책이라는 ‘그러그’ 시리즈의 첫 번째 책 ‘나무에서 태어난 그러그’를 보다가 마지막 장을 보고는 빠져들어 그 자리에서 나머지 9권을 다 읽어버리고 우리나라에 나오지 않은 나머지도 보고 싶어서 34권 세트를 해외직구까지 해서 읽었다.
‘나무에서 태어난 그러그’라는 제목처럼 어느 날 소철 나무 꼭대기가 땅으로 툭 떨어져서 이파리가 변하다니 ‘그러그’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그는 나무에서 태어난 동물(?)인 셈이다.
이 그러그가 태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집을 짓는 거였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그렇지. 살 집을 지어야지’라고 생각하며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집을 다 짓고 나서 질문이 나온다.
‘이제 뭐가 더 필요할까요?’
집을 다 지었는데 뭐가 필요할까? 다음 장을 넘기고 나는 ‘아!’라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우리는 집이라면 집 그 자체만 생각했던 것 같다. 외적으로는 얼마나 근사하게 꾸미느냐, 내적으로는 안락함이 느껴지느냐, 오로지 ‘내 집’이란 관점에서만 생각했다.
그런데 집의 필수품이 ‘편지함’이라니. 물론 집에는 ‘우편함’이 다 있다. 그러나 만약에 내가 그러그처럼 혼자 집을 짓는다면 우편함을 생각할 수 있을까?
이 편지함이 갖는 중요한 의미는 외부와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집은 고립을 위해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이웃과 바깥세상과 연결되는 역할도 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다음 책부터 그러그는 이 편지함을 통해 악기를 받거나 선물을 받거나 외부 세계와 어떻게 연결되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그 시리즈>는 이제 막 태어난 그러그가 아무 사전 정보 없이 세상과 접하는 내용이다. 우연히 놀이터를 접하게 되었는데 놀이터가 무언지 모르는 그러그는 그네를 타다 떨어지고 미끄럼틀을 타다가 뒹굴면서 ‘위험한 곳’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크리스마스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맞이하지만 친구들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쿠키를 굽는다. 세상 처음 길을 잃고는 집이 얼마나 좋은 지도 깨닫게 된다.
집이란 가족을 위한 기능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 집이지만 결국 주변과 외부 세상과 연결되는 홀로 고립된 성이 아니다.
집에 대한 걱정이 없다가 어른이 되고는 생활 장소로서 집을 고민하기도 하고 또 투자 목적으로 생각하기도 하는데 다시 한번 집의 의미를 확장하게 한 ‘그러그’는 나를 진짜 어른으로 만들어 준 그림 책임에 틀림없다.
그러그 시리즈는 1979년에 출간되어 현재 34권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국민 그림책으로 ‘테드 프라이어’ 작가의 단순한 그림과 단순한 문장으로 만들어진 그림책이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위트와 깊이는 감탄스럽다.
그러그처럼 집에 홀로 있는 당신도 우편함이 있는 한 누군가와는 ‘연결’되어 있음에 틀림없다.
<나무에서 태어난 그러그>
저자: 테드 프라이어 출판사: 세용출판, 2011
삶의 모토가 ‘단순하게 살자’인 ‘테드 프라이어’ 답게 아주 간결하지만 그 안에 유머와 위트, 지혜와 감동이 공존한다.
30년 전에 오스트레일리아의 뉴사우스웨일스 북부의 작은 농장에 살며 자신의 세 아이들을 위해 책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일이 세 아이들의 아버지가 된 것이라고 한다.
1979년에 첫 책이 나와 현재까지 34권이 출간되었다고 한다.
각 권의 주제는 아이들이 태어나서 처음 세상을 접할 때 느끼는 상황과 마음들이 그려져 있어서 천진난만함과 순진무구함이 매력적이다.
마치 소철나무에 다리가 달려 돌아다니는 듯한 모습은
보통 동물이 의인화되는 것과 달리 식물이 의인화된 것도 특징이다.
첫 권을 본다면 도저히 다음 권을 보지 않을 수 없는 마성의 그림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