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훌쩍 여행을 떠나는 용기

여덟 살, 혼자 떠나는 여행

by 북도슨트 임리나
여덟 살, 혼자 떠나는 여행-처음 혼자 떠난 여행에 대한 기억


요즘에는 뭐든지 ‘혼’을 앞에 붙여서 ‘혼밥: 혼자 먹는 밥’, ‘혼술: 혼자 마시는 술’, ‘혼영: 혼자 보는 영화’ 등등, 혼자 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 신조어가 되었다.


어쩌면 ‘혼’을 앞에 붙이기 전에는 우리 문화에는 무엇이든 ‘같이 하는 것’이 기본 전제로 인식되었던 것 같다.


일단 식사만 하더라도 학교를 다닐 때 도시락을 같이 먹는 문화에서 직장에서 같은 팀원들끼리 같이 밥을 먹는 문화까지 밥을 혼자 먹는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문화였다. 심지어 ‘혼자 밥 먹는 사람=왕따’라는 이미지도 강하다.


그래서인지 내가 처음 일본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을 때 일본 직장인들이 혼자 밥을 먹는 문화에 상당히 놀랐었다.

12시가 되면 혹은 되기 전부터 동료들과 무엇을 먹나 얘기하며 12시가 되자마자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는 한국 회사와 달리 12시가 되어도 아무도 밥 먹으러 가잔 소리도 없었고 각각의 시간에 뿔뿔이 밥 먹으러 다녀오는 사람들 속에서 참 묘한 느낌이 들었다. 밥을 먹는 시간이라기보다는 언제나 쓸 수 있는 1시간의 휴식 느낌으로 활용하는 것 같았다.


나보다 먼저 경험한 한국 직원이 이야기해주길 12시가 되어 옆 자리 일본 동료에게 밥을 같이 먹으러 갈 생각으로 언제 밥 먹으러 갈 것인지 물으니 자기는 2시에 먹을 거라 해서 그 대답이 2시에 같이 가자는 얘기인지 아니면 따로 먹자는 얘기인지 헷갈렸다고 하는데 아마 일본 문화에서는 ‘밥을 언제 먹느냐?’는 질문에는 같이 먹자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 않으니 아마도 자신이 먹는 시간을 대답했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처음에는 한국 사람들끼리는 시간을 맞춰가며 밥을 먹기도 했지만 시간이 흘러 ‘혼밥’하는 문화에 익숙해지자 나도 가끔은 어색하지 않게 ‘혼밥’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밥 한 끼 혼자 먹기도 힘든데 혼자 여행을 한다는 건 더 쉽지 않은 일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가끔은 혼자 떠나는 여행을 꿈꾼다. 그중에는 꿈으로만 끝내는 사람이 있고 실제로 혼자 여행을 자주 떠나는 사람도 있는데 나도 혼자 여행을 잘 다니는 편이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여행까지 심지어 결혼 후에도 혼자 여행을 떠날 정도였다.


내가 왜 그렇게 혼자 여행을 어색하지 않게 잘 다닐 수 있게 되었는지 ‘여덟 살, 혼자 떠나는 여행’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열다섯 살에 고향을 떠나 광산에서 일한 자신의 경험으로 아들도 독립적으로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여덟 살 아들에게 산길을 걸어 기차를 타고 이모할머니네 가서 할머니가 두고 온 우산을 가져오라고 한다. 그리고 혹시나 모를 대비로 호랑이 기름을 주는데 기차에서 잠이 들면 역을 지나치면 큰 일 나니까 호랑이 기름을 눈가에 발라 졸음을 쫓으라고 한다.


그렇게 여덟 살에 혼자 떠난 여행.

나의 예상은 혹시 어떤 ‘모험’이 있을까 했는데 예상과 달리 기차 안에서 주인공은 노상을 하는 할머니를 만났고 할머니가 쓰러지는 사건을 겪게 된다. 할머니 옆에 있던 아이는 할머니를 살리기 위해 사람들에게 살려달라고 했고 사람들이 할머니 손자라 생각하고 손자 덕분에 할머니가 목숨을 구했다고 기특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 ‘호랑이 기름’은 할머니를 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만약에 그 할머니는 그 날 혼자 여행을 떠난 이 아이를 만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혼자 여행을 떠난 소년은 결코 다른 사람들에게 의지하는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 심지어 다른 사람을 도와가며 여행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년의 졸음을 쫓을 용도였던 ‘호랑이 기름’도 할머니를 구하는데 쓰게 된다.

그렇게 아이는 할머니를 구해주고 무사히 이모할머니네 도착해서 우산과 풋마늘 다섯 근을 가지고 돌아온다. 할머니를 구하는 동안 호랑이 기름을 잃어버리긴 했지만 졸지 않고 제대로 역에 내렸다.


나에게도 부모님 없이 10살에 혼자 떠난 여행이 있었다.

이 책의 주인공처럼 전철을 타고, 또 버스를 갈아타고 인천에서 서울까지 갔었다.

다행인 건 나는 혼자가 아니라 나보다 3살 어린 7살 동생과 함께였다. 동생이 있다는 건 동반자가 있다는 의미기도 했지만 혼자만이 아니라 챙겨야 하는 더 어린아이가 있다는 의미기도 했다.


방학이면 늘 외갓집에 가서 한 달 가까이 놀다가 오곤 했는데 매번 부모님이 데려다주시다가 10살이 된 나는 혼자 가보겠다고 한 것 같다. 여러 번 간 길이라 나름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동생과 전철을 타고 내려서 버스를 갈아타고 외갓집에 무사히 도착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10살 아이가 무섭지 않았을까 싶지만 오히려 그때는 자신감이 넘쳤다. 시간은 길 수 있지만 영등포역에서 내려 몇 번 버스를 타면 된다는 아주 간단한 여정으로 느껴졌다.


주인공이 기차 안에서 만난 할머니를 도와주며 여행을 했듯이 나는 나만 의지하고 있는 여동생을 챙기며 여행을 했던 것이다.

아마 그 첫 경험으로 그 이후로는 혼자 동생을 데리고 외갓집에 자주 갔던 것 같다. 그뿐만 아니라 중학교 때도 혼자 서울에 가서 연극을 보고 오고는 했는데 집에도 친구한테도 얘기하지 않고 혼자 다녀왔었다.


오히려 부모님에게 말하면 반대를 할 것 같았고 인천에서 서울까지 함께 할 친구가 없을 것 같았지만 연극은 꼭 보고 싶었기에 혼자 지하철을 타고 다녀왔었다. 친한 친구에게 혼자 보고 왔다고 말을 했을 때 그 친구는 놀라며 거짓말이 아니냐고 했었다.

아마 그런 추억 때문이었는지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이 없었다.

그리고 처음 여행이 그랬듯 여행지에서 겪었던 드라마틱한 모험도 없었지만 위험도 없었다. 늘 나에게 여행은 10살에 동생을 데리고 혼자 떠난 외갓집 여행 같은 이미지였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도 아이와 둘이 떠나는 여행을 많이 다닌 편이었다. 30개월에 둘이 후쿠오카를 다녀왔고 38개월에는 일본에서 아이와 둘이 한 달 살이를 했었다. 작년에는 베트남에도 아이와 둘이 다녀왔다.

이 책의 주인공처럼 10살에 동생을 데리고 혼자 여행을 떠났던 아이는 이제 아이를 혼자 데리고 여행을 다니고 있다.


다른 무엇보다 진짜 어른이 된다는 건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의 주인공처럼 8살에 혼자 떠난 여행, 나처럼 10살에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경험을 한 사람과 평생토록 여행을 혼자 떠나지 못하는 사람. 그들의 삶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꼭 혼자 여행을 떠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지만 혼자 여행을 떠나는 건, 여행지에서 부딪히는 많은 일들을 혼자 결정하고 대응하는 ‘독립심’을 기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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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살, 혼자 떠나는 여행>

저자: 우 니엔쩐 출판사: 베틀북, 2004


제목을 보면 반신반의할 것 같다. ‘정말 여덟 살에 혼자 여행을 떠난다고?’ 아마 판타지 장르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런 예상과 달리 작가기 직접 여덟 살에 떠난 여행이라니. 여덟 살 아이는 혼자 한 시간 넘게 산 길을 걸어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는 중에 노점상을 하는 할머니를 만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세 명의 할머니가 있다. 집 안의 친할머니. 목적지인 이모할머니. 기차 안에서 만난 노상을 하는 할머니. 이모할머니에게 우산을 받아오라는 아빠의 심부름으로 떠나는 여행이었다. 아버지가 졸지 않기 위해 바르라고 건네 준 호랑이 기름을 기차에서 만난 할머니를 구하느라 쓰고 잃어버리게 된다. 그렇지만 이모할머니에게서 우산을 챙겨 오고 집에 돌아와 무사히 할머니를 만난다. 출발, 도착 그리고 여정에서 만난 할머니들. 이제 막 인생을 살아나가기 시작한 소년이 집에서 여행지에서 도착지에서 만나는 할머니들은 소년에게 중요한 의미가 된다.